'석화 구조개편' 여수‧울산 눈치 싸움 … 정부 "같이 살려면 해답 찾아야"

롯데케미칼과 HD현대케미칼이 충남 대산 석유화학단지 사업 재편 방안을 마련해 정부에 제출하면서 나머지 여수‧울산 석화 단지의 사업재편에도 속도가 붙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석화 산업 구조개편 논의는 글로벌 공급 과잉에 따른 재정 위기설이 올해 불거지면서 본격화됐다. 지난 8월 DL그룹(대림산업)과 한화그룹이 50대50으로 합작해 만든 국내 3위의 석유화학 회사인 여천NCC 부도설이 시발점이 됐다.

"이대로라면 현재 석화 기업의 50%는 문을 닫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지 한참 지났지만, 정부가 기업들의 자발적인 사업재편에만 의존하면서 구조조정 작업이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27일 산업통상부에 따르면, HD현대오일뱅크·HD현대케미칼·롯데케미칼은 전날 석화산업 구조개편과 관련한 사업재편계획 승인 신청을 정부에 접수했다. 

지난 8월 정부가 석유화학산업 구조개편 로드맵을 제시한 이후 3개월 만에 처음으로 석화기업이 구체적인 사업재편방안을 정부에 제시한 것이다. 

현재 롯데케미칼과 HD현대케미칼은 충남 대산 석유화학단지 내 각각 나프타분해설비(NCC)를 중심으로 하는 석유화학제품 생산시설을 운영하고 있다. 

개편안에 따르면, 양사는 기업결합을 위해 우선 롯데케미칼이 대산공장을 물적 분할을 진행할 예정이다. 이후 분할신설법인은 HD현대케미칼과 합병해 HD현대케미칼이 존속하고 분할신설법인은 소멸된다. 그 다음 롯데케미칼이 합병법인 주식을 추가 취득해 최종적으로 HD현대오일뱅크와 롯데케미칼이 합병법인 지분을 각각 50%씩 보유할 계획이다.

양사는 석화산업의 구조적 과잉문제로 지적돼 온 나프타분해시설(NCC) 설비와 범용 석유화학 제품 설비 일부를 합리적으로 조정하고, 정유-석유화학 수직계열화를 통한 효율적인 운영체계를 구축한다는 방침이다.

또한 고부가제품 중심으로 포트폴리오 전환을 가속화해 중장기 수익 기반도 강화할 계획이다. 

롯데케미칼의 대산공장 NCC 생산량은 110만t, HD현대케미칼의 공장은 85만t이다. 이번 구조개편으로 둘 중 한 곳의 공장 운영을 중단하면 최대 110만t 규모의 NCC 감축이 가능하다는 관측이 나온다.

국내 3대 석화 단지 가운데 대산에서 첫 사업재편 시동을 걸었지만, 나머지 여수‧울산 단지의 구조조정 소식은 아직 들리지 않고 있다.

석화 기업들이 전기요금 부담 완화, 석유화학 특별법 조기 시행 등을 요구하며 사업재편에 미온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에 정부는 "12월 말까지 사업재편계획을 제출하지 않는 기업은 정부 지원에서 제외될 것"이라고 최후 통첩을 날린 상황이다. 

김정관 산업부장관은 26일 여수 국가산업단지에서 열린 석유화학기업 사업재편 간담회에서 이같이 말하며 기한 내 사업재편계획서를 제출하지 않은 기업은 "향후 대내외 위기에 대해 각자도생해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김 장관은 "정부는 사업재편 적극 참여기업에 대해 집중적인 지원을 제공하는 한편, 다른 프로젝트도 연말까지 사업재편계획서가 마련될 수 있도록 업계와 지속적으로 소통해 나가겠다"고 했다.

이날 간담회에서도 석화 기업들이 전기요금 부담 완화, 석유화학 특별법 조기 시행 등을 요구했다. 

앞서 산업부는 지난 8월 20일 산업경쟁력강화 관계장관회의를 통해 ▲과잉 설비 감축 및 고부가 스페셜티 제품으로의 전환 ▲재무 건전성 확보 ▲지역경제‧고용 영향 최소화 등 구조개편 3대 방향'을 밝힌 바 있다.

당시 김 장관은 "책임있는 자구노력 없이 정부 지원으로 연명하려 하거나 다른 기업들 설비 감축의 혜택만을 누리려는 무임승차 기업에게는 단호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석화 기업들은 '석유화학산업 재도약을 위한 산업계 사업재편 자율협약식'을 열고 국내 전체 NCC 생산량인 1470만t의 18~25%(270만~370만t)를 줄이기로 했다. 그러나 정부 주도 구조개편이 아닌 기업 간 자율협약이어서 구속력이 없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에 대해 정부 관계자는 "여수와 울산에서도 기업들과 사업 재편 논의를 계속하고 있는 있는 상황"이라며 "지금 석화 업계가 다 어려운 상황이다. 자율협약을 맺은 취지가 '같이 살자'는 것이기 때문에 전체 산업 경쟁력, 그리고 산단 경쟁력 강화 차원에서 어떻게든 해답을 찾아내지 않을까 예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 석화 업계 관계자는 "석화 업계 구조조정이 계속 지연되면 산업 전반에 걸쳐 위기감이 커질 것"이라며 "이번 대산공장 통폐합을 계기로 여수‧울산 석화단지에서도 이른 시일 내에 사업재편계획을 내놔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