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담대 총량 봉쇄·가산금리 인상 겹쳐 실수요자 이중 압박당국 “대출절벽 아니다” 해명에도 현장체감은 사실상 ‘대출 마비’인터넷은행 한도 하루 만에 소진 … 영끌·갭투자 리스크 재부상내년 주담대 위험가중치 상향 등 ‘대출 혹한기’ 이어질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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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말 은행권이 가계대출 총량 관리에 들어가면서 주택 실수요자들의 자금 조달이 사실상 '올스톱' 상태로 얼어붙었다. 일각에서는 "내년 1월만 넘기면 다시 풀릴 것"이라는 기대도 나오지만, 정작 주택담보대출(주담대) 규제가 오히려 더 강화되면서 대출 경색은 계절적 현상에 그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정부가 "충격 우려는 과도하다"고 선을 긋고 있는 가운데, 현장의 체감은 오히려 불안이 증폭되는 모양새다

    8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민은행은 지난달부터 비대면 채널 및 지점 접수 등 올해 실행분 주택 매입 목적 대출 접수를 사실상 종료했다. 하나은행을 비롯한 다른 주요 시중은행들도 모집인 대출 제한, 모기지보험 가입 축소, 점포별 한도 관리 강화 등으로 대출 속도 조절에 들어갔다. 연간 가계대출 증가율이 당국이 설정한 목표치에 근접하자, 은행권은 형식적으로는 문을 닫지 않았지만 실질적으론 '총량 봉쇄' 모드에 돌입한 상황이다.

    제2금융권 역시 사정은 비슷하다. 신협과 수협은 비조합원 대상 대출을 줄줄이 멈췄고, 새마을금고 역시 주담대 취급을 대폭 축소했다. 대출 창구가 일부 열려 있는 인터넷은행으로 수요가 쏠리면서 신청 하루 만에 한도가 소진되는 사례도 이어지고 있다. 한 대출 중개업자는 "전화가 하루 수십 통씩 오지만 뾰족한 해법이 없다"며 "사실상 선택지가 사라진 상태"라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주담대 금리 자체도 빠른 속도로 치솟고 있다. KB국민·신한·우리·하나·NH농협 등 5대 시중은행의 주담대 고정금리는 이달 5일 기준 연 3.91~6.21%로 집계됐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네 차례 연속 동결한 직후인 지난달 말(3.77~6.07%)보다 상·하단이 모두 0.14%포인트 올라갔고, 10월 말과 비교하면 불과 6주 만에 최대 0.52%포인트 급등했다. 통화당국이 기준금리를 묶어둔 사이 은행채 등 시장금리가 오르며 대출금리는 사실상 '자체 인상 국면'에 들어섰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금리 상승은 체감 충격을 더욱 키우고 있다. 은행채 금리 오름세가 이어지면서 주요 은행의 주담대 금리는 이미 6%대를 넘어섰고, 일부 상품은 7% 선에 근접했다. 최근 한 달 사이 고정형 주담대 금리는 0.4%포인트 이상 뛰며, 지표금리인 코픽스(COFIX) 상승 폭(0.05%포인트)의 수 배 속도로 오르고 있다. 은행들이 총량 규제에 대비해 가산금리를 추가로 얹으면서 차주의 부담이 급격히 확대된 것이다.

    이로 인해 이른바 '영끌'과 갭투자 수요층을 중심으로 깡통주택 위험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집값이 횡보하거나 일부 조정을 받는 상황에서 대출 이자 부담만 급격히 늘어나면, 전세보증금을 감당하지 못하는 물건이 늘어날 수 있어서다. 변동금리 차주들의 경우 이자 부담이 연간 수백만 원 단위로 늘어나는 사례도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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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부 매수자들은 잔금일을 내년 초로 미루는 방식으로 시간을 벌고 있지만, 이마저도 안전장치가 되기 어렵다는 관측이 나온다. 내년 1월부터 주담대 위험가중치(RW) 하한이 15%에서 20%로 상향되면서 은행의 자본 부담이 더 커지기 때문이다. 은행 입장에서는 가계대출을 늘릴수록 건전성 부담이 확대되는 만큼, 연초에 대출 문턱을 낮출 유인이 제한적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정부와 금융당국은 "시장 충격을 우려할 단계는 아니다"라며 진화에 나서고 있다. 이찬진 금융감독원 원장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당국은 일부 은행이 가이드라인을 웃도는 수준까지 대출을 늘린 점은 인정한다"면서도 "연초까지 금융시장 전반을 흔들 상황은 아니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정책 기조 자체가 가계대출 억제와 생산적 금융 전환에 맞춰진 만큼, 실수요자들이 체감하는 불안과 당국의 메시지 사이 간극은 쉽게 좁혀지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대출 한파를 단순한 연말 변수가 아니라 구조적 축소 국면의 시작으로 보고 있다. 지표금리보다 더 빠르게 오르는 주담대 금리와 동시에 강화되는 자본 규제가 겹치며 내년 상반기까지는 대출 환경이 쉽게 풀리기 어렵다는 관측이다. 일각에서는 당국이 일정 조정이나 실수요자 보호 장치를 병행하지 않는다면 이번 대출 한파는 단기 쇼크가 아니라 연간 내내 지속될 '장기 혹한기'가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한국경제금융학회 관계자는 "대출 공급 축소는 구조적으로 진행되고 있는데, 시장에서는 여전히 연말만 넘기면 괜찮다는 과거 패턴으로 해석하려 한다"며 "대출 리스크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면 계약금 분쟁 등 피해가 불가피하다"고 경고했다

    또 다른 경제학계 한 교수는 "정부의 낙관과 달리, 시장은 이미 냉각 신호를 곳곳에서 보내고 있다"며 "이번 대출 빙판길이 단기 조정에 그칠지, 아니면 내년 내내 이어질 장기 혹한기로 굳어질지는 이제 정책과 시장의 선택에 달려 있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