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세수 증가분 4.7조 중 1.6조가 '해외주식 양도세' 고환율 주범 지목된 서학개미, 나라곳간 '일등공신'당국, 국민연금·증권사 압박에 ISA 해외 ETF 혜택 축소 검토
  • ▲ ⓒ구글AI
    ▲ ⓒ구글AI
    최근 원·달러 환율이 1500원 선을 위협하자 금융당국이 '서학개미(해외주식 투자자)'를 고환율의 주범으로 지목하며 전방위 압박에 나섰다. 

    하지만 정작 서학개미들은 지난 5월 정부 국세 수입 증가분의 30% 이상을 책임지며 '세수 펑크'를 막아낸 것으로 나타났다. 

    시장에서는 정부가 근본적인 거시경제 해법 대신 애꿋은 개인 투자자들의 희생만 강요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 나라 곳간 채운 건 '서학개미'… 세수 증가분 34% 책임져

    10일 기획재정부와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지난 5월 국세 수입은 전년 동기 대비 4조 7000억 원 증가했다. 

    이 중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해외주식 거래 증가에 따른 양도소득세 수입이다. 해외주식 양도세는 전년보다 1조 6000억 원 더 걷혔는데, 이는 전체 국세 증가분의 약 34%에 달하는 수치다. 

    서학개미들은 매년 5월 지난해 1년치에 대한 해외주식 양도세를 신고 및 납입한다. 

    법인세 부진 등으로 나라 살림이 팍팍한 상황에서 밤잠 설쳐가며 외화를 벌어들인 서학개미들이 사실상 구원투수 역할을 한 셈이다.

    ◇ 환율 급등하자 "너 때문이야" … 증권사 소집해 '군기 잡기'

    1조6000억원을 세금으로 더 낸 서학개미를 바라보는 금융당국의 시선은 오히려 따갑다. 환율이 1470원을 넘어 1500원을 넘보자 외환당국은 국민연금과 수출 대기업에 이어 증권사까지 소집하며 통제에 나섰다.

    당국은 지난달 말 주요 증권사 외환 담당자들을 불러 장 시작 직후(오전 9시)에 집중되는 서학개미들의 환전 수요를 분산해 달라고 요청했다. 증권사들은 시스템 변경의 현실적 어려움을 호소했지만, 당국은 이를 환율 급등의 요인으로 지목하며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압박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금융감독원은 9일 주요 증권사 금융소비자보호 총괄책임자(CCO)들을 소집해 고위험 해외투자 상품에 대한 마케팅 자제와 내부통제 강화를 주문했다. 겉으로는 '투자자 보호'를 내세웠지만, 사실상 해외 자본 유출을 막기 위해 증권사의 영업 행태까지 간섭하고 나선 것이다. 금감원은 특정 상품 쏠림을 막기 위해 성과보상체계(KPI)까지 재점검하라고 지시했다.

    ◇ "해외로 못 나가게 막아라" … ISA 혜택 축소 움직임

    정부는 세제 혜택이라는 '당근'마저 거둬들일 태세다. 최근 매일경제 보도에 따르면 기재부는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의 비과세 한도를 늘려 국내 증시로 자금을 유도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현재 ISA가 해외주식형 ETF 투자의 절세 수단으로 활용되는 것을 '문제점'으로 규정하고, 이를 해소하는 방안을 찾고 있다는 점이다.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국내 증시가 매력이 없어 떠난 자금을 억지로 가두려 한다"는 불만이 터져 나온다. 한 투자자는 "수익의 22%를 세금으로 내면서까지 해외 주식을 하는 건 생존을 위한 선택인데, 혜택을 늘려주지는 못할망정 있는 혜택마저 뺏으려 한다"고 성토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환율 불안의 근본적 요인이 해결되지 않으면 단기 대응에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고환율의 책임을 개인 투자자에게 전가하기보다, 성장률 제고와 국내 증시의 펀더멘털 등 구조적 문제 해결에 집중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