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협, 복지부가 만든 난임 지침마저 부정 '근거 충분' 평가에도 중앙정부 지원 '0'한의약 난임치료 제도화·보험 적용 촉구
  • ▲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 ⓒ정상윤 기자
    ▲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 ⓒ정상윤 기자
    의사 출신인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난 16일 대통령 업무보고 자리에서 한의약 난임치료를 두고 "객관적·과학적 입증이 어렵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을 두고 한의사들이 반발하고 나섰다. 

    복지부가 스스로 마련한 임상 근거와 표준진료지침을 장관 개인의 판단으로 부정한 것은 사실상 한의사 치료 전반을 폄훼한 것이라며 즉각적인 사과와 국가 차원의 한의약 난임치료 제도화를 촉구했다.

    대한한의사협회(한의협)는 17일 성명을 내고 "보건복지부 자료마저 부정하며 한의약 난임치료를 폄훼한 정은경 장관은 즉각 사과하라"며 "난임을 극복하고자 한의치료를 선택한 수많은 난임부부와 한의계에 진솔한 사죄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특히 복지부가 이미 발표한 '여성 난임 한의표준임상진료지침'을 거론하며 장관 발언의 자기모순을 지적했다. 

    해당 지침에 따르면 난소예비력 저하 여성에 대한 한약 치료는 근거 수준 'B/Moderate'로 평가돼 충분한 근거가 있는 치료로 분류된다. 이는 현재 첩약 건강보험 시범사업 대상 질환 선정 기준에도 부합한다.

    보조생식술을 받은 여성에 대해서도 침 치료는 'A/High', 전침·뜸·한약은 모두 'B/Moderate' 등급을 받아 근거가 확인됐다는 것이 협회의 설명이다. 때문에 "복지부가 직접 근거를 인정해 놓고도 장관이 이를 부정한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논리가 형성됐다. 

    현장에서는 이미 한의약 난임치료가 제도권 안에서 작동하고 있다는 점도 강조됐다. 현재 전국 14개 광역자치단체와 72개 기초자치단체가 조례를 통해 한의약 난임 지원사업을 운영 중이다. 경기도의 경우 2017년 5억원 규모로 시작한 사업이 2025년에는 9억7200만원까지 확대됐다. 난임부부들의 수요와 체감 효과가 사업 확대의 배경이라는 설명이다.

    반면 중앙정부 차원의 지원은 사실상 전무하다. 국가 난임 지원 정책은 여전히 체외수정과 인공수정 등 양방 시술에만 편중돼 있고, 한의약은 제도권 밖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 한의협의 인식이다.

    과거 정부 연구 결과도 근거로 제시했다. 복지부와 보건사회연구원이 2015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정부 지원으로 체외수정이나 인공수정을 받은 난임여성의 80% 이상이 한의약 난임치료를 병행한 것으로 추정된다. 또 2012년 복지부 연구에서는 난임부부의 96.8%가 '한의약 난임치료에 대한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법적 근거도 이미 마련돼 있다는 주장이다. 현행 모자보건법에는 난임치료 시술비 지원에 한방난임치료 비용을 포함할 수 있도록 규정돼 있지만, 실제 정책으로는 반영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한의협은 초저출산은 국가적 재난이라며 ▲중앙정부 주도의 한의약 난임치료 지원사업 즉각 제도화 ▲국공립 의료기관 시범사업 및 건강보험 적용 검토 ▲재정자립도가 낮은 지역의 난임부부 의료 선택권 보장을 위한 국가 지원 확대를 강력히 요구했다.

    한의협 관계자는 "근거가 있음에도 이를 부정하고 폄훼하는 것은 정책 책임자의 태도가 아니다"라며 "중앙정부가 한의약 난임치료 제도화에 나서는 것이 국가가 져야 할 최소한의 책임"이라고 강조했다.

    한 개원 한의사는 정은경 장관의 발언을 두고 "의사가 갖는 한의약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과 편견이 그대로 드러난 사례"라며 "과학을 말하면서 정작 정부가 인정한 근거는 외면했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