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시중은행 창구 열고 대출 영업 재개연초에도 '오픈런' 사라지고 한산한 영업점깐깐해진 규제 문턱, 발길 끊긴 상담
  • ▲ 12일 오전 서울 종로구의 한 시중은행 영업점에 대출 상담 대기 인원 '0명'이 표시 돼있다. ⓒ윤세라 기자
    ▲ 12일 오전 서울 종로구의 한 시중은행 영업점에 대출 상담 대기 인원 '0명'이 표시 돼있다. ⓒ윤세라 기자
    연말 가계대출 총량 관리로 꽁꽁 막혔던 은행 대출 창구가 새해를 맞아 다시 열리자, 금융권에서는 '오픈런' 상담을 받으려는 수요가 몰릴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그러나 실제 영업점 풍경은 전혀 달랐다.

    12일 오전 9시, 서울 종로구의 한 시중은행 영업점. 대출 창구 앞 대기석은 텅텅 비어 있었고, 번호표 발권기에는 대출 상담 대기 인원 '0명'이라는 숫자가 선명했다.

    예년 같으면 새해와 함께 리셋된 대출 한도를 문의하려는 직장인과 신혼부부들로 북적였을 시간이지만 이날 영업점 안은 적막하기만 했다.

    A은행 대출 창구 직원 김모 씨는 "대출 상담이 많이 줄었죠. 특히 주택담보대출의 경우 요즘은 규제가 너무 강화 돼서 받으러 오시는 분들이 크게 줄었습니다. 무주택자만 되고 한도도 낮아져서 받기 어렵다는 생각에 포기하거나 기대를 하지 않는 분들이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정부의 고강도 가계부채 관리 기조가 새해에도 강하게 작동하면서 연초 은행의 풍경을 완전히 바꿔놓은 셈이다. 
  • ▲ 한산한 은행 창구 모습. ⓒ윤세라 기자
    ▲ 한산한 은행 창구 모습. ⓒ윤세라 기자
    ◇‘상시 관리 체제’ 들어간 가계대출 … 연초에도 창구 '한산'

    은행원들은 연초 대출 수요가 한꺼번에 몰릴 것이라는 우려와 달리, 영업점이 이처럼 한산해진 배경으로 상시화된 가계대출 규제를 꼽았다. 연말·연초로 이어지는 계절적 수요 변동보다, 대출을 억제하는 제도 자체가 이미 시장의 심리를 눌러버렸다는 설명이다.

    특히 금융당국은 명목 GDP(국내총생산) 증가율 내에서 가계대출 총량을 관리하겠다는 원칙을 내세우고 있지만, 올해 은행들에 더 깐깐한 기준을 적용할 것으로 보인다. 명목 GDP 성장률은 약 4%인데, 시중은행들이 잡은 가계대출 증가율 목표치는 2% 안팎에 그친 것으로 전해진다. 물가 상승분을 감안하면 사실상 가계대출 총량을 줄이겠다는 것과 다름없다는 해석이 나온다. 

    그동안 주택담보대출에 집중됐던 규제가 가계대출 전반으로 확산되면서, 과거처럼 우회 통로를 찾기 어려워진 점도 은행을 찾는 고객들의 발길을 줄인 원인으로 꼽힌다. 작년 하반기부터는 '스트레스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3단계'가 시행되면서 주담대 한도가 부족할 때 신용대출을 끌어다 쓰는 우회로가 차단됐다. 신용대출 산정 시에도 스트레스 금리(1.5%p)가 전액 가산되면서 DSR 40% 한도를 순식간에 채워버리기 때문이다. 소득이 변하지 않았는데도, 계산 방식이 바뀌면서 대출 가능 금액이 크게 줄어들어 체감상 수천만~억 원 단위의 자금 공백이 생겼다는 얘기다.

    은행권에서는 지난 10월 15일 발표된 정부의 부동산 대출 규제 강화 방안도 큰 영향을 미쳤다고 입을 모은다. 서울 전역과 경기도 주요 지역이 '투기과열지구' 및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여 갭투자가 불가능해지고 15억 원 초과 주택에 대한 주담대 한도도 대폭 줄어들면서 아예 상담을 포기하는 대출 포기자들이 늘었다는 설명이다. 

  • ▲ ⓒ윤세라 기자
    ▲ ⓒ윤세라 기자
    ◇현금 부자만 웃는 시장 … "주거 사다리 걷어차였다"

    대출 규제가 전방위로 강화되면서 주택 시장의 풍경도 빠르게 달라지고 있다. 금융권 대출에 접근할 수 있는 수요가 급격히 줄어들면서 시장은 점점 '현금 부자' 중심으로 재편되는 모습이다.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는 맞벌이 부부 이모 씨와 윤모 씨는 "현금 부자인 부모 도움으로 걱정 없이 서울에 집을 산 친구가 제일 부럽다"며 "정부가 투기꾼을 잡겠다고 내놓은 규제가 결국 우리 같은 무주택 실수요자만 옥죄는 것 같다. 현금 없는 사람은 평생 월세만 살라는 얘기냐"고 서러움을 토했다.

    시장에서는 획일적인 대출 규제가 실수요자들의 주거 이동 사다리를 끊어놓고, 결과적으로 자산 시장의 양극화를 더 심화시키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출을 활용한 단계적 주거 이동이 막히면서, 집을 이미 가진 계층과 그렇지 못한 계층 간 격차가 더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