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기업 대상 외환검사 … 증권·금융사 마케팅 단속 근본 대책 마련 대신 책임 전가할 희생양 찾기 급급경제펀더멘털 약화 등 구조적 요인 외면 … 시장 왜곡 키워
  • ▲ 14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에서 직원이 증시와 환율을 모니터하고 있다.ⓒ연합뉴스
    ▲ 14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에서 직원이 증시와 환율을 모니터하고 있다.ⓒ연합뉴스
    연말 외환당국의 고강도 개입도 허사였다. 잠시 눌렸던 원·달러 환율은 다시 1470원선을 돌파하면서 요동치고 있다. 알토란 같은 외환보유액 26억 달러를 쏟아붓고도 방어선이 무너지자, 정부는 화살을 기업과 개인으로 돌리고 있다. 수출 대금 회수를 늦춘 기업들을 '환투기 세력'으로 몰아 외환검사에 착수했고 서학개미를 환율 불안의 주범으로 지목하며 증권·금융사 마케팅까지 압박하고 나섰다. 구조적 해법을 찾기 보다 정책 실패를 가려줄 '희생양'만 찾는다는 비판이 거세다. 

    14일 관계당국에 따르면 관세청은 최근 수출 기업 1138곳을 대상으로 외환검사에 착수했다. 지난해 11월 기준 달러 유입과 관련된 수령 무역대금과 세관 신고 수출액 간 차이가 1685억 달러에 달했다는 것이 명분이다. 

    타깃은 명확하다. 국내로 들어와야 할 무역대금을 신고하지 않거나 실제보다 수출액을 낮춰 신고한 기업들이다. 관세청은 고환율이 고착화되면서 환차익을 노리는 기업들이 늘었다고 판단하고 있다. 

    관세청은 2021년부터 지난해까지 합산 수출입 신고액이 5000만 달러 이상 기업 중 은행 거래 내역과 세관 신고액 차이가 큰 곳을 추렸다. 여기에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현대차 등 국내를 대표하는 초우량 대기업들도 대거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경제계 안팎에선 이를 두고 정부 환율 대책이 먹히지 않자 기업 팔꺾기로 실력 행사에 나선 것이란 볼멘소리가 터져나온다. 관세청은 무역·외환 범죄에 대한 엄정 대응을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실상은 기업들이 보유한 달러를 시장에 강제로 풀게 하려는 '환전 압박'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현재 엄격한 외환시장 모니터링 체계와 상장사의 회계 시스템 하에서 무역 대금을 조직적으로 빼돌리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데도 기업에 재차 압박을 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번 조사는 지난달 김용범 대통령 정책실장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7대 수출 기업 최고재무책임자를 불러 모은 것의 연장선상에 있다. 당시 김 정책실장은 "작은 이익을 보려 하지 말라"며 노골적으로 달러 매도를 압박한 바 있다. 

    정부 화살은 개인 투자자들에까지 향한다. 외환당국은 서학개미들의 미국 주식 매수세가 달러 수요를 부추겨 원화 가치를 떨어뜨린다고 보고 문제 삼고 나섰다. 심지어 증권사에는 해외 주식 마케팅까지 중단하라며 시장 질서에 반하는 압박도 가했다. 각 금융사에도 해외 주식 투자 및 외화 금융 상품과 관련한 판매 마케팅과 이벤트 자제를 주문했다. 

    하지만 이 같은 정부 시각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이재명 정부 들어 코스피 지수가 5000 고지를 바라보는 상황이어서다. 국내 증시가 충분히 매력적인 상황에서도 해외로 눈을 돌리는 투자자들을 외환시장 교란 주범처럼 낙인 찍는 것은 비약이라는 평가다. 

    사실상 환율은 국가 경제의 체력을 보여주는 종합 성적표로 경제 여건을 그대로 반영한다. 단순한 달러 수급 문제를 넘어 국가경제의 본질적 역량이 비춰주는 거울과 같다. 전문가들은 당국의 개입에도 원화 약세 흐름이 고질적으로 이어지는 원인으로, 눈에 띄게 약해진 경제 펀더멘털과 매년 200억 달러·총 3500억 달러에 달하는 대미투자, 확장재정으로 인한 국가채무 급증 등 구조적 요인을 지목한다. 결국 구조적 문제는 외면한 채 벌이는 정부의 '희생양 찾기'는 본말전도라는 비판이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서학개미들은 기업 성장률이 좋고 수익을 많이 줄 것 같으니 높은 환율에도 미국 주식시장에 투자하는 것"이라며 "수출기업도 달러를 시장에 풀기보다는 다음 수출을 위한 투자나 현지 재투자에 나설 가능성이 높아 정부 압박은 효과를 거두기 어려울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사실상 통화정책 실패가 고환율의 배경으로, 한미 기준금리 역전 지속과 미국보다 큰 폭으로 증가한 광의통화(M2) 팽창 등이 근본 원인"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