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화학, 정부 사업재편 없인 벼랑 끝 위기한국 경제의 미래 버팀목 배터리마저 불확실반도체 美 빅테크 러브콜, 배터리 전기차 폐지 직격탄
  • ▲ 블루오벌SK 켄터키주 공장.ⓒSK온
    ▲ 블루오벌SK 켄터키주 공장.ⓒSK온
    “대기업도 극과극이네요.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 반도체는 초일류기업으로 날아가는데, 배터리 SK온은 입사 1년 이상 직원도 구조조정이네요. 배터리 계약학과는 주의가 필요할 듯합니다.”

    최근 약 14만명이 가입된 한 온라인 입시 커뮤니티에는 ‘배터리 전공 주의보’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글쓴이는 삼성SDI 등도 전망이 불투명하다고 덧붙였다. 반도체 슈퍼사이클에 올라탄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와 달리, 전기차 캐즘과 중국 저가 공세로 업황이 악화된 배터리 업종 진로를 우려하는 목소리다.

    26일 배터리업계에 따르면 SK온은 지난 20일 임직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과 무급휴직 프로그램 시행을 공지했다. 희망퇴직 대상은 2025년 1월 이전 입사자로 신청자에게는 근속연수와 연령에 따라 월 급여 6개월에서 최대 30개월치의 위로금을 지급한다. SK온 관계자는 “전기차 수요 둔화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경영 효율을 높이고 시장 환경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조치”라며 “조직 효율화 차원에서 추진했다”고 밝혔다.

    배터리 소재사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LG화학은 지난해 12월 양극재·분리막사업부 등 첨단소재사업부문에서 희망퇴직을 진행했다. 사무직과 생산직을 가리지 않고 1970년생까지 신청대상에 포함됐다. 배터리뿐 아니라 석유화학 사업도 전개 하고 있는 LG화학은 지난해 8월경 업황 악화 탓에 석유화학 부문에서도 희망퇴직을 진행하기도 했다.

    ◆ 배터리, 석유화학 산업 한파

    한국 배터리와 석유화학 산업은 한파를 겪고 있다. 국내 주요 석유화학 9개사의 지난해 합산 영업손실은 1조2082억원에 달한다. 배터리 3사도 지난해 합산 1조3082억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LG화학, SK이노베이션 등 석유화학 기업들은 과거 호황기 포트폴리오 다각화 차원에서 배터리 사업에 뛰어들었고, 이후 이를 독립 성장축으로 분리해 육성해왔다. 그러나 지금은 두 업종 모두 실적 부진에 직면했다.

    석유화학 업계는 정부가 직접 나서 사업재편을 추진해야 할 정도로 벼랑 끝에 몰렸다. 한국 경제를 지탱해온 전통 제조업이지만, 범용 제품의 수출 경쟁력이 약화되면서 고부가가치 중심으로 사업 구조를 전환하기 위해서다. 정부는 1호 사업재편으로 대산산단 내 HD현대와 롯데케미칼 통폐합 추진을 승인했다. 이어 울산, 여수 산단별로 맞춤 재편과 지원 방안을 발표할 방침이다.
  • ▲ 롯데케미칼 대산공장 전경ⓒ롯데케미칼
    ▲ 롯데케미칼 대산공장 전경ⓒ롯데케미칼
    문제는 미래 성장 동력으로 한국 경제를 지탱해야 할 배터리 산업마저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최근 배터리사 임원들과 배터리 산업의 위기 상황을 논의한 자리에서 배터리 3차 체계에 의문을 제기한 것으로 전해진다. 김 장관은 배터리 산업이 석유화학 업계와 같이 흘러가지 않도록 다양한 해결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중국에 치여 … 전망 안갯속

    석유화학과 배터리사의 위기의 공통점은 중국발(發) 저가 공세가 있다. 석유화학은 중국의 저가 대규모 물량 공세에 직면했고, 배터리는 국내 주력인 삼원계(NCM) 대비 가격 경쟁력이 높은 LFP 배터리를 앞세워 한국 기업들의 입지를 잠식해 가고 있다.

    K-배터리 3사(LG에너지솔루션·삼성SDI·SK온)는 이미 글로벌 1위 자리를 중국 CATL에 내줬다. 에너지 전문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배터리 3사의 글로벌 시장 합산 점유율(중국 시장 제외)은 매년 하락 추세다. 지난해 배터리 3사의 합산 점유율은 36.3%로 전년 대비 7.4%포인트 하락했다. 반면 CATL은 홀로 약 30%의 점유율을 차지하며 독주 체제를 굳히고 있다.

    여기에 최대 시장인 미국의 전기차 지원금 종료, 포드·스텔란티스·GM 등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의 전동화 속도 조절까지 겹치며 배터리 업계는 창사 이래 최대 위기 국면에 들어섰다는 평가가 나온다. 굵직한 수주 취소는 물론이고 고객사인 완성차와 몇조원 투입한 합작법인 생산 공장까지 쪼개졌다.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해 12월 포드 등과 맺은 총 13조5000억원 규모의 배터리 공급 계약이 해지됐다. 엘앤에프는 테슬라와의 약 3조8000억원 규모 하이니켈 양극재 공급 계약이 978만원 수준으로 축소됐고, 포스코퓨처엠도 GM과 체결한 양극재 공급 계약 규모를 13조7696억원에서 2조8111억원으로 줄었다.

    스텔란티스는 LG에너지솔루션과 캐나다 합작법인을 종결한데 이어 삼성SDI와의 미국 배터리 합작법인에서 철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포드는 SK온과 지난해 12월 합작법인 블루오벌SK가 보유한 미국 테네시와 켄터키 공장을 각각 운영하기로 합의했다. 이 과정에서 SK온은 지난해 4분기 3조7000억원에 달하는 자산 손상을 인식했다.

    ◆ 반도체 美 빅테크 인재 유치까지 러브콜, 배터리와 희비

    특히 SK온의 경우 같은 SK그룹 내 SK하이닉스와 희비가 극명하게 엇갈린다. 지난해 적자를 기록한 SK온은 성과금이 지급되지 않았지만, SK하이닉스는 1인당 평균 약 1억3000만원의 성과금을 챙겼다. 삼성그룹 내에서도 삼성전자와 삼성SDI의 온도차가 뚜렷하다. 적자를 기록한 삼성SDI는 성과금이 제외됐다.

    한국 메모리 반도체 산업은 미국 등 인공지능(AI) 인프라 확산을 발판으로 최대 호황기를 맞고 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가 최근 SNS에 한국 반도체 인력 채용 공고를 올리며 화제를 모았다. 그는 자사의 AI 칩 디자인 엔지니어 모집 글을 공유하면서 16개의 태극기 이모티콘을 함께 게시했다. 고대역폭메모리(HBM) 역량을 갖춘 한국 인재 영입에 적극 나서면서 반도체 인재의 몸값은 치솟고 있는 모습이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기존에 체결했던 글로벌사와 비구속 MOU와 투자 계획도 업황 악화로 재검토되거나 취소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배터리 업계에서는 길어지는 전기차 캐즘 속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이 가격 경쟁력을 앞세운 중국 배터리 기업과의 협력을 확대할 가능성을 최대 리스크로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