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과급 45조 요구에 번지는 노노갈등·주주 반발AI 슈퍼사이클 속 '투자보다 분배' 몰두한 반도체 노조초호황 과실 둘러싼 탐욕 경쟁 … 내부 균열 '상처'커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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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도체 슈퍼사이클이 한국 경제를 끌어올리고 있다. 인공지능(AI) 시대의 핵심 산업으로 떠오른 반도체는 수출과 증시, 국가 재정까지 좌우하는 존재가 됐다. 그런데 정작 산업 현장에서는 축포보다 불안감이 더 커지고 있다. 초호황의 과실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를 두고 노사 갈등은 물론 노노갈등, 주주와의 충돌, 원·하청 갈등까지 동시다발적으로 폭발하고 있어서다.

    삼성전자 노조가 영업이익의 15% 수준인 최대 45조원 규모의 성과급을 요구하며 총파업을 예고한 것은 단순한 임금 협상의 영역을 넘어섰다. 주주들은 "주주가치 훼손"이라며 손해배상까지 거론하고 있고, 정치권과 재계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쏟아진다.

    심지어 삼성전자 내부에서도 DX(가전·모바일) 부문 직원들을 중심으로 "반도체만을 위한 교섭"이라는 반발이 터져 나온다. 노동조합이 노동자의 연대를 이야기하지만 정작 내부에서는 성과 배분을 둘러싼 균열이 깊어지는 모양새다.

    이번 논란의 출발점에는 SK하이닉스가 있다. 지난해 영업이익의 10%를 성과급으로 배분하는 전례 없는 결정을 내리면서 업계 전반에 '성과급 경쟁'의 불씨를 던졌다. 삼성전자 노조가 더 높은 수준의 배분을 요구하는 것도 결국 이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문제는 이 경쟁이 생산성이나 기술 혁신 경쟁이 아니라 '얼마를 나눠가질 것인가'에 집중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반도체 호황의 중심에는 현장 노동자들의 헌신이 있다. 밤샘 개발과 생산라인 운영, 극한의 수율 경쟁 없이 지금의 실적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성과에 대한 정당한 보상 역시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기업의 성과는 특정 집단만의 결과물이 아니다. 수십조원의 선행 투자와 연구개발, 협력업체들의 공급망 유지, 국민 세금으로 조성된 산업 인프라, 그리고 장기간 회사를 믿고 투자한 주주들이 함께 만들어낸 결과다.

    더 큰 문제는 이런 흐름이 산업 생태계 전체를 흔들 수 있다는 데 있다. 이미 SK하이닉스 하청노동자들은 "원청 직원은 수억원, 하청은 수백만원"이라며 교섭을 요구하고 나섰다. 원청 노조가 성과의 과실을 독점할수록 그 아래 협력업체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상대적 박탈감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결국 성과급 경쟁은 또 다른 갈등의 도화선이 된다.

    AI 반도체 시장은 지금 한국 산업이 다시 도약할 수 있는 드문 기회다. 미국과 중국, 대만이 국가 단위로 반도체 패권 경쟁을 벌이는 상황에서 기업들은 생존을 위한 대규모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이런 시기에 수십조원 규모의 현금 배분 경쟁이 이어지는 모습은 시장과 투자자들에게 불안 신호로 읽힐 수밖에 없다. 삼성전자 경영진과 이사회 의장까지 직접 나서 "미래 경쟁력 손실"과 "국가 경제 충격"을 언급한 것도 이 때문이다.

    성과급은 많이 벌었으니 나눠달라는 단순 계산으로 접근할 문제가 아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누가 더 많이 가져갈 것인가의 경쟁이 아니라 어떻게 산업의 지속 가능성을 지켜낼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다. 초호황의 열매를 모두가 체감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지 못한다면 반도체 호황은 '국가 성장'이 아니라 일부 집단만의 일시적 잔치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극단으로 치닫던 노사 갈등 속에서도 대화의 불씨는 완전히 꺼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초기업노조는 경기지방노동위원회의 사후조정 절차에 참여하기로 했다. 총파업을 2주 앞둔 시점에서 노사정이 다시 협상 테이블에 앉기로 한 것이다. 사후조정은 법적으로도 마지막 타협의 기회로 여겨진다. 

    지금 필요한 것은 누가 더 강경한지를 증명하는 힘겨루기가 아니다. 반도체 산업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위기감 속에서 노사 모두 하루빨리 현실적인 접점을 찾고 사회적 책임에 걸맞은 결단을 내려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