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석희씨 교체예정을 둘러싸고 이른바 외압설이 떠돌고 있다. 또 한편으로는 엄기영 사장이 방송문화진흥회(이하 방문진)를 무력화하려는 ‘역공’이라는 생각도 존재한다. 즉, 방문진을 공격하기 위한 ‘손석희 사석작전’이라는 말이다.

    1. 역공

    역공설의 배경은 이렇다. 그동안 현 MBC경영진과 노조는 방만경영, 무책임경영, 노영방송에 대한 방문진 이사들의 문제제기에 잔뜩 위축되어 있었다. 급기야 엄기영사장은 9월 9일 New MBC Innovation Plan을 발표했다. 책임경영이 될 수 있도록 단체협상안을 개정하고 경영을 혁신하며, PD수첩 조사에 대한 재론, 100토론 시청자의견 조작사건에 대한 재조사를 약속한 것이다. 그러나 이 중 어느 것도 노조의 입장에서는 수용하기 어렵다. 전체적으로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엄기영체제는 살아남기 위해 선택의 기로에 섰다. 노조의 등에서 내려와 MBC를 개혁할 것인가? 방문진 이사회를 무력화시켜 위 개혁약속을 지키지 못해도 유임될 길을 찾을 것인가?

    2. 회심의 카드, 손석희

    이 백척간두의 상황에서 MBC 경영진은 불쑥 손석희 교체 카드를 꺼내들었다. 그런데 이 손석희 교체카드는 그 창끝이 노조가 아니라 방문진을 향해 있다. 이 점에서 엄기영체제가 방문진 이사회 무력화 후 해임불가·유임의 길을 찾기 시작했다고 역공론자들은 분석한다. 실제 손석희 교체 이야기가 나온 직후부터 방문진 이사회가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정확한 정황설명이나 논리없이 손석희씨 교체를 불쑥 제기하니 당연히 국민 다수는 방문진의 개입을 의심하게 되어 있다. 외압설은 단순한 쏠림현상이 아니라 상황적 합리성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손석희씨에 대한 신뢰도, 합리성, 수난자의 이미지 등을 융합시킨 국민여론은 방문진의 방송장악을 질타할 것이고, 그만큼 MBC 경영진은 고단한 개혁과 해임의 공포에서 자유로워질 것이다. 노조는 이 사건을 반격의 기회로 삼아 방문진을 공격하며 엄기영체제를 자신의 영역에 두려고 할 것이다.

    3. 외압설 vs 역공설

    이같은 역공설에 의하면 손석희 사석작전은 노조에겐 회심의 카드요 엄기영체제에겐 꽃놀이패가 된다. 공격을 당함에도 방문진은 이에 대해 거의 아무런 대응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외압설과 역공설 둘 중 어느 것이 현실을 좀 더 잘 설명할 수 있을까? 필자는 둘만 놓고 보면 역공설이 현실적으로 설득력을 더 높게 갖는다고 생각한다.
    외압설에 대해 방문진 최홍재 이사는 전혀 근거없는 낭설이라고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해결해야 할 문제가 중대하고 산적해 있는데 민심이나 흉흉하게 하며 잘못되면 정권의 도덕성이 땅에 떨어질 일을 어느 정신 나간 권력자가 시도하겠느냐는 것이 주요 논지이다.
    앞에서 살폈듯이 급작스런 손석희의 교체는 방문진에게는 독이요, 노조에게는 기사회생의 명약이자 엄기영체제에겐 꽃놀이패에 속한다. 이런 점에서 방문진 이사회나 이사들 중 한 명이 은밀하게 손석희씨의 교체에 대해 압력을 행사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최 이사의 주장은 타당하다. 명백하게 손해나며 명분도 없는 일을 하지 않으려는 것은 인간 불변의 본성이기에 그렇다.

    4. 순리

    그렇다면 엄기영체제는 정말 노조를 활용하여 방문진을 공격하기 위해 손석희 카드를 꺼내든 것인가? 그러나 이렇게 단정하기엔 또 약간의 무리가 있다. 지난 봄 신경민 앵커를 급작스럽게 해임한 것이 이런 관점에서는 또 해석이 어렵게 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일단 손석희씨 교체 문제에 대해 순리적 접근을 해 보자.
    지금 손석희씨를 둘러싸고 두 가지 문제가 있다. 하나가 ‘100분토론 시청자의견 조작사건’(이하 조작사건)이고 MBC의 심각한 경영악화가 그 둘이다. 이 두 가지 핵심 문제를 진단하는 과정에서 손석희씨 문제가 다루어졌다면 그것이 유임이든, 교체이든 어쨌든 설명은 될 것이다.
    조작사건부터 살펴보자. 현 경영진의 방문진 보고 과정에서 조작사건에 대한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다. 반복적으로 이루어진 조작사건에 대해 현 경영진이 그 상황을 전혀 파악하고 있지 못한 것이었다. 누가 조작을 지시했는지, 누가 조작을 실행했고, 그것을 감수했는지에 대해 전혀 진상조사가 되어 있지 않은 것이었다. 기록들을 보면 경영진이 방문진 이사회에 보고한 내용과 100분 토론 제작진이 방통심의위에 진술한 내용이 심각하게 엇갈렸다. 이에 엄기영사장은 위의 Plan을 발표하며 100분 토론 재조사를 천명했던 것이다. 그런데 정작 진상조사는 현재까지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만일 진상조사 결과 손석희씨의 개입이 드러나면 이의 책임을 물을 일이고, 그렇지 않다면 세간의 의혹을 청소할 일인데 이런 규명 과정없이 불쑥 교체 카드를 꺼내드니 모두가 황당한 논란에 휩싸이게 된 것이다.
    경영혁신 문제도 마찬가지다. MBC의 방만경영에 대한 지적은 이번 방문진만의 지적사항이 아니다. 현 경영진을 구성했던 지난 이옥경방문진에서도 핵심적으로 거론되었던 것이다. 방만경영의 결과 현재 MBC는 심각한 상황에 놓여 있다. 2009년 상반기 적자가 392억에 달했다고 한다. 사상 최초, 그리고 최대의 적자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MBC 사원들에게 상여금도 제대로 지급되지 않고 있다. 2~3천만원씩의 상여금이 삭감되었다는 이야기도 사원들을 통해 확인되고 있는 걸로 안다. 이런 조건에서 MBC는 필연적으로 경영혁신을 해야 하며 그 일환으로 외부 고액연봉자에 대한 정책 혹은 지침을 확립해야 한다. 이런 연후에 고액연봉자 손석희씨에 대해 교체든, 연봉 축소 후 유임이든 어떤 지침을 가졌다면 누가 괴소문을 퍼뜨리고 다니겠는가? 물론 누군가는 또 제각각 제기하고 싶은 의혹이 있을 것이지만 그것은 우리 현명한 국민들의 마음을 심란하게 하지 못할 것이다.

    5. 엄사장이 해야할 일

    외압설이든, 역공설이든 이런 흉흉한 소문 중 어느 것이 진실인지 사람마다 각기 제 의견이 옳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자연과학 같은 검증은 불가능하다. 다만 뚜렷한 것은 MBC 경영진이 우선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느닷없이 손석희 교체 카드를 꺼내 들어 이 논란이 발생토록 만들었고 이로 인해 우리 국민들의 목에 핏대를 세우게끔 하고 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100분 토론 시청자조작 사건의 진상을 먼저 규명하라. MBC 경영혁신 계획을 면밀하게 준비하라. 손석희 유임 혹은 교체문제는 그 뒤에 경영진이 판단해도 충분하다. 그것이 지금 엄사장이 해야할 일이며 正道요, MBC와 국민을 위한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