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슬라 모터스 보유한 美, 단연 선두 달려국내 기업들, 분업과 협업, 시스템 통합기술 개발로 대응해야
  • 벤츠, 아우디, BMW, 르노, GM 등 세계적 자동차 업체들은 ‘2010 파리 모터쇼’에 새로운 개념의 전기 컨셉카를 내놓아 관심을 끌었다. 갑작스레 눈앞으로 다가온 전기차 시대. 경쟁 국가들은 어느 정도 수준이고, 우리나라는 얼마나 따라가고 있을까.

    2010 파리 모터쇼 풍경

    지난 30일 프랑스 파리 모터쇼가 열렸다. 이번 파리 모터쇼의 주인공은 ‘전기차’. 우리나라의 현대기아차는 ‘ix20’ 전기차와 컨셉카 ‘POP’을 선보여 눈길을 끌었다. 하지만 다른 나라 업체들의 전기차 성능은 예상 밖으로 뛰어난 편이었다.

    프랑스 르노는 ‘드지르(DeZir)’라는 전기 세단을 내놨다. 이 세단의 성능은 스포츠카 수준. 100km/h까지 도달하는데 불과 5초밖에 걸리지 않는다. 한 번 충전으로 160km를 달릴 수 있다. 효율성을 위해 최고속도는 180km/h로 제한했다.

    프랑스 자동차 그룹 PSA의 주력 기업인 푸조는 ‘EX1’을 선보였다. 세단형인 ‘EX1’은 340마력의 최대출력을 내며, 가속력에 중요한 토크는 24.5kg/m로 고성능 세단 수준이다.

    독일 메르세데스 벤츠는 소형차 ‘A클래스’를 베이스로 한 전기차 ‘E셀’을 선보였다. ‘E셀’은 70㎾의 모터와 리튬 배터리를 장착해 최고속도 150km, 최대토크 29.6㎏.m을 자랑한다. 1회 충전으로 220km나 달릴 수 있다. 벤츠는 ‘E셀’을 올해 안에 유럽에서 500대 한정판매할 계획을 세우고 생산중이다.

  • ▲ 재규어가 발표한 전기 슈퍼카 ‘C-X75’
    ▲ 재규어가 발표한 전기 슈퍼카 ‘C-X75’


    인도 타타자동차가 인수한 재규어는 전기 슈퍼카를 내놔 화제가 됐다. 2인승 4륜구동 전기 컨셉카인 ‘C-X75’가 그 주인공. ‘C-X75’는 2개의 마이크로 가스 터빈과 플러그인 리튬이온 배터리로 전기를 만들어 모터에 공급하는 독특한 시스템을 갖고 있다. 6시간 충전하면 전기 동력만으로도 109㎞를 갈 수 있다. 놀라운 것은 성능. 최고출력 780마력에 최고속도는 시속 330㎞, 100km/h까지 가속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3.4초에 불과하다.

    독일 BMW는 차세대 전기차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미니(MINI) E’에 이어 두 번째로 개발한 컨셉카 ‘액티브 E’를 공개했다. ‘액티브 E’의 전기모터는 최고출력 170마력을 발휘하며 100km/h까지 가속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9초다. 안전 최고속도는 시속 145㎞. 삼성SDI-보쉬의 합작사인 'SB리모티브'가 공동 개발한 리튬이온 배터리를 장착했으며 한 번 충전으로 160㎞ 주행할 수 있다.

    독일 아우디도 컨셉 스포츠카 ‘R4 e-트론’을 선보였다. 엔트리급 스포츠카로 개발 중인 R4의 플랫폼을 사용한 이 컨셉카는 최대출력 204마력에 최대토크는 27.0㎏.m에 이른다. 150㎾짜리 모터를 장착해 최고시속 200㎞까지 달릴 수 있다.

    美슈퍼카 업체 스파이커가 인수한 사브는 왜건형 전기차 ‘9-3 e파워’를 내놨다. 최대출력 184마력에 최고속도는 시속 150㎞, 100km/h까지 가속시간은 9.5초다. 최대 항속거리는 200㎞에 달한다.

    전기차 시대의 변화

    파리 모터쇼에 전기 컨셉카가 넘쳐나자 세계 언론들은 ‘파리 모터쇼의 주인공은 전기차’라고 표현하고 있다. 불과 2~3년 전만 해도 먼 미래의 일인 것처럼 여겨졌던 전기차에 세계 자동차 강자들이 집중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전기차는 20세기형 대량생산 시스템과는 다른 방식으로 제조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전기차의 핵심 요소는 크게 ‘파워 트레인’과 전기전자부품, 그리고 부품 및 시스템 통합 기술로 나뉜다. 전기차의 ‘파워 트레인’은 엔진 대신 배터리와 모터, 출력을 제어하는 시스템이다. 전기전자 부품은 운전자의 편의와 안전을 위해 장착되는 자세제어장치, 네비게이션, 오디오 시스템 등과 이를 통제하는 ECU와 같은, 각종 전자 장비와 시스템을 의미한다.

    부품 및 시스템 통합 기술은 이 같은 부품들이 제대로 작동하도록 배치하고 조립하는 기술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전기차에는 모터와 배터리 등 부품이 중요하지 무슨 조립 기술이 대단한거냐’고 묻기도 한다. 하지만 전기차 원천기술에서 가장 앞선 미국의 사례를 보면 마지막인 부품 및 시스템 통합 기술이 가장 중요하다.

    이유는 이렇다. 전기차 부품을 모두 직접 생산하는 자동차 업체는 거의 없다. 전기차에 들어가는 건 엔진 대신 모터와 배터리, 기계식 스티어링 휠(운전대)과 수동 기어 대신 전자식 스티어링 휠과 모터의 출력 제어장치다. 배터리는 2차 전지를 사용하는데 용량과 출력, 중량 등이 자동차에 요구되는 제원과는 잘 맞지 않는다. 출력 제어에 필요한 캐피시터(생산된 전력을 일시 저장하거나 한꺼번에 공급하는 콘덴서의 일종) 또한 자동차에 맞는 걸 찾기가 어렵다.

    때문에 자동차 업체들은 향후 설계 및 조립 중심으로 변형해 갈 가능성이 높다. 그 미래를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美테슬라 모터스다. 테슬라 모터스는 최고속도 201km/h, 100km까지 가속시간 4초대인, 세계최초의 전기 스포츠카 ‘테슬라 로드스터’를 생산하는 기업이다. 놀라운 것은 1회 충전으로 최대 350km를 달릴 수 있다는 점.

  • ▲ 10만 달러가 넘는 가격에도 1400여 대가 팔린 美테슬라 모터스의 '테슬라 로드스터'
    ▲ 10만 달러가 넘는 가격에도 1400여 대가 팔린 美테슬라 모터스의 '테슬라 로드스터'


    이런 실용성 때문에 ‘테슬라 로드스터’는 가격이 10만 달러 이상임에도 지금까지 예약판매를 포함, 1,400대를 팔았다. 이미 美캘리포니아와 LA등에서는 주행하고 있으며, 유럽에서도 인기를 끌고 있다. 2009년 초에는 박근혜 의원이 이 업체를 방문, ‘테슬라 로드스터’를 시승한 뒤 소감을 밝혀 국내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재미있는 것은 ‘테슬라 로드스터’에 사용되는 2차 전지, 콘덴서 등이 한국산이라는 점. 그럼에도 테슬라 모터스는 외부에서 공급한 부품으로 대형 자동차 업체들을 능가하는 전기차를 생산해냈다. 테슬라 모터스는 ‘기존의 제품들을 통합해 새로운 제품을 만드는, 통합기술에 있다’고 밝힌다. 20세기 ‘컨베이어 시스템’과 같은 방식으로는 더 이상 전기차 시대에 앞설 수 없다는 충고도 곁들인다.

    한국, 전기차 시대 선두에 서려면

    이번 파리 모터쇼에 전 세계 자동차 업체들이 전력을 기울여 전기차를 생산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은 이런 전기차 선두업체로부터 느끼는 위기감도 크게 작용하고 있다. 자칫하면 기존의 자동차 업체는 ‘화석’으로 전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전기차 산업의 특징을 파악한 중국의 전지업체 BYD는 2008년 전기차 분야 진출을 밝힌 뒤 승승장구 하고 있다. BYD社는 세계 휴대전화 배터리 시장의 15%를 점유하고 있는 전지업체다. BYD는 2009년 세계적 투자자 워렌 버핏에게 지분 10%를 넘기고선 2억2000만 달러를 투자받기도 했다. BYD는 2010년 9월 29일 하이브리드 자동차 ‘M6’를 생산해 발표했다.   

    미국이나 일본, 프랑스, 독일 자동차 업체들 또한 전기차 개발에 전력투구하고 있다. 하지만 직접 개발 생산하는 것에 집착하지 않는다. 메르세데스 벤츠는 2009년 5월 테슬라 모터스에 5000만 달러를 투자해 10%의 지분을 얻었다. 도요타는 테슬라 모터스와 양산형 전기차를 공동생산하기로 합의했다. 이처럼 대형 자동차 업체들은 선도 기업과의 합종연횡을 통해 전기차 시대에 도태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한편 우리나라는 2차 전지와 캐피시터 등 핵심 부품의 주요 생산국이면서도 전기차 개발에서는 뚜렷한 성과가 없다. 이는 소형 전기차 개발 업체부터 대형 자동차 업체까지 모든 걸 자체적으로 개발하려 하기 때문이다. 여기다 ‘대기업만 믿고 따른다’는 정부 당국자의 태도로 인해 거시적인 전기차 발전 전략이나 기업별 역할분담은 존재하지도 않는다.

    현재 정부는 2015년까지 세계 전기차 시장의 10%를 점유하겠다는 목표를 밝힌 바 있다. 이에 맞춰 현대기아차 등은 전기차 ‘블루온’을 내놨고, GM대우는 ‘라세티 프리미어 전기차’를 선보였다. 하지만 지금 세계 자동차 업체들은 최고속도 200km, 1회 충전으로 400km 이상 주행할 수 있는 전기차를 5년 이내 판매할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그리고 각국 정부는 대형 자동차 업체와 부품 업체들 간의 합종연횡을 돕고, 자금지원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이런 해외 업체와 경쟁하려면 일본 정부의 전기차 개발 프로젝트와 같은, ‘협업’에 대한 정부와 기업들 간의 합의가 시급하다. 지금처럼 대기업과 중소기업, 전기차 인프라 관련 기업들이 서로 경쟁하면서, 시장을 선점하겠답시고 국내에서의 경쟁에만 치중한다면, 정부 목표가 무산되는 것은 물론 한국 자동차 산업도 영영 뒤처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