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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바 비리' 사건을 수사하는 검찰이 금주 초 강희락 전 경찰청장과 이길범 전 해양경찰청장 등 전직 경찰수장 2명을 소환할 예정인 가운데 벌써부터 이 사건을 '권력형 게이트'라 칭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건설현장 식당 운영권을 놓고 거액의 뒷돈이 오가는 업계의 병폐에 초점이 맞춰졌던 이 사건은 함바집 운영업자 겸 브로커 유모(65.구속기소)씨가 양대 전직 경찰총수에게 검은돈을 줬다는 의혹을 규명하는 쪽으로 수사 방향이 급선회했다.
여기에 유씨가 치안감이나 경무관, 총경급까지 전현직 경찰간부 10여명에게도 돈을 건넸다는 의혹이 이어 나왔고, 현직 국회의원에다 차관급 기관장, 전직 장관과 광역지방자치단체장 등의 이름도 거론되며 연초부터 세간을 떠들썩하게 하고 있다.
대표적인 수사기관의 전직 총수가 얽혀 있고, 각종 정관계 고위급의 이름이 거론되는 것만 보면 대규모 권력형 비리 사건을 뜻하는 `게이트'라 부를만 하다.
하지만 이번 사건에서 연루자 명단에 거론된 인사들이 한결같이 의혹을 전면 부인하는 데다 검찰이 이들의 혐의를 뚜렷하게 잡아내지 못하는 점을 보면 아직 게이트라 칭하기에는 이른 것으로 보인다.
◇역대 게이트와 닮은 점은 = 이번 사건은 대표적 수사기관 가운데 하나인 경찰의 전직 총수가 브로커 유씨와 얽혀 있다는 점에서 충격적이다.
유씨는 이길범 해경청장에게 인천 송도의 건설현장에 함바집을 따내려는데 압력을 행사해주고 각종 편의를 봐달라며 수천만원을 건넨 것으로 알려졌다.
강 전 청장에게는 승진 인사청탁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승진을 앞둔 경찰관이 강 전 청장과 친분을 유지하는 유씨에게 접근했고, 유씨는 청탁용 금품을 받아 이를 강 전 청장에게 건네며 승진을 부탁한 정황과 물증을 잡고 조사 중이다.
이런 인사 로비는 유씨에게 여러 효과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강 전 청장과 관계를 지속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승진에 도움을 준 경찰 인사들을 자신의 확실한 인맥으로 활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형성한 인맥을 발판으로 유씨는 경찰 고위직과 그물망식 관계를 유지한 것으로 추정된다.
경찰 고위간부 한 명을 알면 그를 통해 다른 간부를 소개받고, 자신과 친한 치안감급 간부가 지방청장으로 내려가면 지방청 과장들(총경급)과 회식 자리에 나타나 식사비용을 대납하며 인맥을 넓혔을 개연성도 있다.
경찰총수뿐 아니라 전현직 경찰 고위간부들도 유씨의 로비 대상에 포함됐다는 의혹이 나오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보면 이해가 가능해진다.
이번 사건으로 재판을 받는 한 건설사 간부는 최근 법정에서 "유씨가 경찰 고위직을 많이 안다며 접근했는데 실제로 많은 민원을 해결해줬다"고 진술했다.
◇게이트라 하기엔 아직 일러 = 경찰 이외에 유씨가 뿌린 돈을 받았다고 의혹이 제기된 인물을 보면 유씨가 문어발식 인맥을 구축했다고 볼 수 있지만 이들 인맥을 모두 `검은 커넥션'으로 단정하기에는 너무 이르다는 분석이 나온다.
고향인 호남의 인맥을 보면 현직 국회의원부터 동생과 돈거래 사실이 밝혀진 전직 장관까지 다양하지만 해당 의원은 "후원금에 어떤 대가성도 없다"고 유씨와 연루설을 강하게 부인했다.
전직 장관 동생도 "유씨와 돈거래는 했지만 사업상 이뤄진 것이고 형과는 무관하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부산에서 오랫동안 사업 활동을 한 것으로 알려진 유씨는 부산에서 인맥도 다진 것으로 보인다. 부산 출신으로는 현직 차관급 기관장이 거론된다.
해당 인사는 부산이 고향인 데다 2004년부터 3년간 부산에서 기관장을 한 적이 있는데 역시 유씨에게 돈을 받은 사실을 강하게 부인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처럼 유씨의 인맥을 보면 전현직 권력층이 상당수 등장하지만 이들은 모두 혐의를 강하게 부인하고 있다.
검찰도 이들과 유씨 사이에 `검은돈'이 오간 정황을 뚜렷하게 포착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져 의혹만 무성하게 제기되는 상황이다.
이번 사건으로 가장 먼저 소환되는 전직 경찰총수인 강 전 청장도 유씨를 경찰총수가 되기 훨씬 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유씨가 권력핵심에 의도적으로 접근했다고 보기에는 어려운 상황이다.
이런 점에서 일각에서는 유씨가 중심에 서 있는 `함바 비리' 사건이 국민에게 충격을 안겨준 과거의 권력형 게이트 사건처럼 대형 권력비리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조심스레 나오고 있다.
대통령의 친인척이 연루되고 권력 핵심의 정치인이나 각급 기관장이 줄줄이 엮인 데다 심지어 법조계 인사까지 로비의 대상이던 과거 게이트들처럼 강력한 폭발력이 내포됐다고 보기에는 아직 약하다는 것이 이번 사건을 지켜보는 이들의 중간평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