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한은행의 창업 주역이자 정신적 지주인 이희건 명예회장이 지난 21일 오후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5세.

    일제 식민지 시대이던 1917년 경북 경산군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난 이 명예회장은 열다섯살이던 1932년 현해탄을 건너가 오사카의 한 무허가 시장에서 자전거 타이어 장사를 했다.


  • 갖은 고생 끝에 기반을 다진 그는 1955년 뜻있는 상공인들과 함께 대판흥은(大阪興銀)이라는 신용조합을 설립해 금융업에 뛰어든 뒤 1974년에는 재일한국인 본국투자협회를 설립하고 고국 금융업 진출을 모색했다.

    이 명예회장은 고국 경제발전에 기여하기 위해 1982년 7월 일본 전역에 산재해 있던 340여 명의 재일동포들로부터 출자금을 모집해 국내 최초의 순수 민간자본 은행인 신한은행을 설립했다.

    1988년 서울 올림픽 당시에는 100억엔을 모아 한국에 기부하는 등 고국에 대한 기여도를 인정받아 무궁화훈장을 받았으며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때는 일본에서 국내송금 운동 등을 주도해 재일동포들의 조국돕기운동에 앞장섰다.

    신한은행 회장 시절에는 어려운 경제 여건하에서도 주주들의 힘을 결집해 유상증자를 성공시키고 은행의 조직 및 시스템 전반을 변화시키는 강한 추진력을 보여줬다.

    그는 평소 "재물(財物)을 잃는 것은 조금 잃는 것이고, 신용(信用)을 잃는 것은 많이 잃는 것이다. 그러나 용기(勇氣)를 잃는 것은 전부를 잃는 것이다"라는 좌우명을 들려주며 신한은행 임직원을 독려하는 등 조그만 점포로 출발한 신한은행이 짧은 기간에 국내 최고 금융그룹으로 성장하는 데 정신적 지주 역할을 했다.

    한국 경제사정이 어려울 때 재일동포들의 애국심에 의해 탄생한 신한은행은 2009년 9월 아시아계 은행 최초로 일본 내 현지법인인 SBJ은행을 설립해 일본으로 역진출하면서 마침내 재일동포의 꿈을 실현했다.

    이 명예회장의 유족은 신한금융 주주총회가 끝날 때까지 알리지 말라는 이 명예회장의 유지를 받들어 가족만 참석한 채 영결식을 마쳤으며 개별적인 분향도 받지 않기로 했다.
  • ▲ 이명박대통령이 2008년 도쿄 국제호텔서 민단 고문 이희건씨를 만났을때.
    ▲ 이명박대통령이 2008년 도쿄 국제호텔서 민단 고문 이희건씨를 만났을때.


    신한금융지주는 유족과 협의해 별도 고별식을 준비할 예정이다.

    한동우 신한금융 회장은 "신한의 역사이자 조국을 사랑한 큰 거목이 졌다"며 "고인의 창업이념을 받들어 전 임직원이 심기일전해 신한금융을 세계 일류 금융그룹으로 키우겠다"고 다짐했다.

    서진원 신한은행장은 "대한민국을 사랑한 애국자이자 국내 금융산업 발전에 크게 기여한 이 명예회장이 우리 곁을 떠나 무척 슬프다"며 "그분의 신한에 대한 애정과 가르침은 신한인의 가슴에 영원히 함께 할 것"이라고 애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