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당은 민노당의 하부(下部)                                               

                    양   동   안

      민주당이 지난 4일 자기 당의 원내대표와 한나라당 원내대표 간에 이루어진 한·EU FTA 비준안 국회통과 합의를 무시하고, 민노당의 주장에 따라 한·EU FTA 비준안의 국회통과에 반대 입장을 취한 것은 민주당이 민노당의 정치적 하부임을 확인해주는 의미심장한 사건이다. 

    민주당은 지난해 6·2지방선거의 야권 단일후보 선정과 관련하여 민노당의 주장을 대폭 수용했다.
    지난달에 있었던 4·27 재·보선의 야권 단일후보 선정에서도 민주당은 민노당이 하자는 대로 했다.
    민주당은 민노당의 요구대로 자기 당의 오랜 텃밭인 전남 순천 선거구를 현지 민주당원들의 강력한 반대를 무시하고 민노당에게 넘겨주는 황당한 일까지 저질렀다.  

    민주당이 한·EU FTA 비준안 처리와 관련하여 원내대표 간의 합의까지 파기하며 민노당의 노선에 따라 행동한 것은 최근 1년여 동안 민주당이 민노당의 ‘지침’에 따라 활동해온 궤적의 가장 높은 점이며, 민주당은 앞으로 시간이 갈수록 민노당의 ‘지침’에 더욱 강하게 복종하게 될 것이다. 

    민주당이 이처럼 민노당의 정치적 하부로 전락한 데는 다음 두 가지 요인이 결정적인 작용을 하고 있다.  

    첫째 요인은 민주당의 실질적 헤게모니를 운동권 출신 인사들이 장악하고 있다는 점이다.
    민주당에는 비운동권 출신 인사들이 적지 않지만, 그들 중의 상당수는 당내 권력투쟁의 효율화를 위해 운동권으로 동화되어 버렸다.
    나머지 비운동권 인사들은 민주당의 의사결정에 중요한 작용을 하지 못한다. 그들은 응집력을 가지고 있지 못할 뿐만 아니라, 당의 하부조직으로부터 무시당하고 있다. 그들은 민주당의 운동권 인사들이 호남지역 및 충청지역에서의 민주당 지지기반 와해를 막기 위해서, 그리고 민주당이 운동권만의 정당이 아닌 것처럼 보이기 위해서 붙이고 있는 장식품 같은 존재들이다. 

    그런데, 민주당의 실질적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있는 운동권 인사들은 민노당의 당원들에게 저자세를 취한다. 거칠게 단순화하자면, 민주당의 운동권 인사들은 저품위 운동권 인사들이고 민노당의 당원들은 고품위 운동권 인사들이다. 이러한 품위 격차로 인해서 민주당의 운동권 인사들은 민노당 당원 앞에 서면 몸을 낮출 수밖에 없다. 민주당의 운동권 인사들에게는 자기 당 내의 비운동권 인사들과의 연대의식은 다른 당 운동권 인사들과의 연대의식에 비하면 극히 하찮은 것이다.

    게다가 민주당에는 민노당의 프락치들이 상당히 많이 침투해 있을 가능성도 높다. 민주당 운동권 인사들의 민노당 당원에 대한 저자세와 민주당에 침투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민노당 프락치들은 민주당으로 하여금 민노당의 지침에 따라 활동하도록 만드는 작용을 한다.

      둘째 요인은 민주당에서 대통령이 되려는 꿈을 가지고 있는 정치인들이 전술상 민노당과 친화적 관계를 형성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노력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민주당-민노당-진보신당-국민참여당 4당 선거연대의 틀 속에서 대통령 선거를 치르게 된 현재의 상황 속에서는 민주당의 대통령 선거 예비후보들에게 있어서 민노당의 지지는 매우 중요한 자산이 된다.  

    현재 민주당(나아가서는 야권 4당)의 대통령후보가 되기 위해서 노력 중인 민주당 인사들은 여러 명이다.
    그에 반해 민노당에서 대통령후보로 나설만한 유력인사는 없다. 이런 조건에서는 민노당은 민주당에서의 대통령후보 선정에 ‘몰표 몰아주기’ 식 지지(심리적 지지건 지지투표이건)를 할 가능성이 크다.

    이미 조직의 차원에서 민주당에 대한 민노당의 영향력이 강한 데 더하여 민주당 대통령 후보 선정에서 민노당이 ‘몰표 몰아주기’ 식 지지 가능성까지 존재하는 상황에서는 대통령을 꿈꾸는 민주당의 주요 인사들은 민노당에 대한 친화경쟁을 전개하지 않을 수 없다. 민주당 주요 인사들의 민노당에 대한 친화경쟁은 민주당으로 하여금 민노당의 지침에 따라 활동하도록 만드는 작용을 한다. 

    위에 지적한 두 가지 요인으로 인해 민주당은 민노당의 정치적 하부로 활동하지 않을 수 없다. 이 경우 민주당의 국회의원 숫자가 87명인데 반해 민노당 국회의원 수가 6명에 불과한 두 정당 간의 현격한 당세차이는 별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혹자는 민주당이 민노당의 정치적 하부라면 두 당은 왜 합당하지 않는가 라는 의문을 제기할 것이다. 민노당 당원들과 민주당의 운동권 인사들은 두 당이 나뉘어서 분업적으로 표를 모으는 것이 하나로 합당하여 표를 모으는 것보다 유리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에 합당을 추진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어쨌든, 민주당이 민노당의 정치적 하부로 활동하는 것은 최소한 내년에 차기 대통령선거의 민주당 후보 혹은 야권 단일 후보가 결정될 때까지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