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가 우리금융지주 매각에 다른 금융지주사의 입찰 참가 조건을 대폭 완화키로 것은 이번이 사실상 마지막 흥행 기회라는 심정에서다.

    10년째 끌어온 우리금융 민영화를 올해 안에 성사시키지 못하면 총선과 대선이 있는 내년에는 더 어렵고, 결국 차기 정권으로 넘어가 다시 원점에서 시작해야 할 공산이 크다는 것이다.

    정부가 이처럼 매각 흥행을 위한 유인책을 들고 나섰지만, 정치권과 금융권 일각에선 정부의 이러한 매각 방침이 산은금융지주를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시각이 여전해 `유효경쟁'이 성립되기가 쉽지만은 않을 전망이다.

    정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잇따라 한시적인 예외 규정을 두는 게 바람직한지도 논란의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다.

    ◇우리금융 입찰 흥행 위해 `당근' 제공
    현재 금융지주회사법 시행령은 금융지주사가 다른 금융지주사를 자회사로 두려면 주식을 모두 확보해 완벽하게 지배하도록 하고 있다. 소액주주가 주식을 팔지 않겠다고 하거나 연락이 닿지 않는 등 부득이한 경우에도 95% 이상 확보해야 한다.

    금융위는 그러나 이 시행령을 고쳐 우리금융처럼 공적자금이 투입된 금융지주사를 다른 금융지주사가 자회사로 편입할 때는 지분의 50%만 확보해도 가능하도록 예외를 두기로 했다.

    시가총액이 11조~12조원에 달하는 우리금융 지분을 일괄 매각하려다 보니 마땅한 인수자가 나타나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우리금융에 눈독을 들일 만한 다른 금융지주사의 자금조달 부담을 절반으로 줄여 여러 경쟁자가 뛰어드는 구도를 그리겠다는 게 금융위의 구상이다.

    인수 의향이 있는 사모투자펀드(PEF)의 경우 종전과 마찬가지로 주식을 30%만 확보해도 가능하지만, 주식 보유 하한선을 50%로 낮춘 금융지주사와 경쟁하려면 PEF 역시 주식 매입을 늘려야 해 그만큼 좋은 가격에 팔 수 있다는 것이다.

    다른 금융지주사가 우리금융 입찰에 참여하는 장벽을 대폭 낮추기로 한 것은 우리금융의 민영화를 더는 늦출 수 없다고 보고 금융지주사들에 유인책을 제공하는 차원이라는 게 금융위의 설명이다.

    매각을 주관하는 공적자금관리위원회도 우리금융이 어떤 형태로 매각되든 현재 대주주인 예금보험공사가 우리금융에 공적자금을 수혈한 대가로 각종 재무적·비재무적 규제를 하도록 맺은 경영관리 양해각서(MOU)를 즉각 해지하겠다고 밝혔다.

    예보는 지분율이 50% 아래로 내려가면 MOU를 완화하고, 대주주 지위를 잃어야 MOU를 해지하게 돼 있다. 하지만 금융지주사가 아니라 컨소시엄이나 PEF가 매수해도 MOU를 풀어 새 주인의 부담을 덜겠다는 취지다.

    ◇유효기간 5년..`인수 후 합병' 방식 유력

    금융위는 이처럼 금융지주사의 인수자금 부담을 덜어주는 예외규정을 5년 동안만 유지하기로 했다. 아무리 공적자금이 투입됐더라도 금융지주사에게 사실상 `특혜'를 주는 조항을 오랫동안 유지하는 게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금융지주사가 우리금융을 인수하면 결국 5년 안에 원칙대로 지분율을 100%로 맞춰야 한다. 만약 예보의 우리금융 지분 57%를 모두 인수한다고 가정하면 나머지 43%의 지분을 공개 매집하거나 아예 우리금융과 합병하는 두 가지 시나리오가 가능하다.

    여러 차례에 걸쳐 쪼개 팔린 나머지 지분을 다시 사들이는 게 쉽지 않은 만큼 우리금융 지분을 50% 넘게 인수한 뒤 5년 안에 금융지주사 간 합병이 이뤄지게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게 금융권의 일반적인 관측이다.

    또 우리금융 매각 방식으로 인수와 합병 모두 가능성을 열어두고는 있지만, 인수와 관련된 규제를 손질했다는 점에서 사실상 인수 방식에 더 무게를 두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공자위 관계자는 "합병보다 인수가 3가지 측면에서 더 매력적이다"며 "각자 지분을 합치는 합병과 달리 인수는 즉시 공적자금을 회수할 수 있고, 경영권 프리미엄을 받을 수 있으며, 주식매수청구권 행사가 불가능해져 비용 부담이 줄어든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다만 "가장 큰 전제는 인수든 합병이든 우리금융을 조속히 민영화하면서 공적자금 회수를 극대화한다는 것이다"며 "합병 방식으로 매각돼도 예보와 우리금융이 맺은 MOU는 해지할 것이다"고 덧붙였다.

    ◇`우리+산은' 내정설 부담..잇단 우회로 지적도

    정부로선 그러나 금융지주사에 대한 입찰규제 완화가 산은금융에 초점을 맞춘 게 아니냐는 시선이 여전히 부담이다. 산은금융이 우리금융을 인수할 수 있도록 100% 지분 규제를 풀었다는 비난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여야 의원들은 지난 27일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이 같은 의구심을 짙게 드러냈다.

    민주당 조영택 의원은 "산은금융의 우리금융 인수는 관치금융의 부활이다"며 "운동경기가 진행 중인데 난데없이 규정을 바꾸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반문, 시행령 개정으로 산은금융이 우리금융을 인수할 길을 터 준 셈이라고 주장했다.

    한나라당 고승덕 의원도 "(우리금융) 인수 의사를 밝힌 사람은 강만수 산은지주 회장뿐이다"며 "(정부와 산은지주가) 짜고 치는 것이다"고 따졌다.

    우리금융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임혁 우리은행 노조위원장은 "누구를 위해 시행령까지 고치면서 민영화를 추진하는 것인지 알 수 없다"며 블록세일 방식이 타당하다고 주장했다.

    정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일정기간 원칙에 예외를 두는 우회로를 택하는 것에 대해서도 논란이 제기될 소지가 있다.

    저축은행의 부실채권을 매입하기 위해 오는 7월부터 적용되는 국제회계기준(IFRS)을 상장 저축은행에 한해 5년간 유예하기로 한 데 이어 우리금융 매각 흥행을 이유로 다시 5년간 금융지주회사법 시행령에 예외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그러나 "공무원직의 명예를 걸고 우리금융과 산은금융을 맺어주기 위해 일을 진행하지는 않는다"고 반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