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후죽순 노조 설립 계기될 것" vs "삼성 대표 노조 정당성 의문"
  • 복수노조 허용 이후 삼성에 처음 노조가 설립신고함에 따라 이를 계기로 '무노조' 경영 원칙을 고수해온 삼성에도 노조가 우후죽순 생겨나는 게 아니냐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반면 이 노조가 단위 사업장에 국한된 기업별 노조가 아닌 '초기업단위 노조'를 표방했음에도, 삼성 계열사에 노조가 이미 9개 설립돼 있는데다 조합원 세력으로 볼 때 임직원이 20만명에 달하는 삼성을 대표할 노조로서의 정당성을 갖느냐 등이 향후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13일 삼성과 노동계에 따르면 삼성에버랜드 직원 4명으로 구성된 삼성 초기업단위 노조는 12일 오후 서울 정동 민주노총 사무실에서 설립 총회를 한 뒤 이날 오전 11시께 서울 남부고용노동청에 노조설립신고서를 제출했다.

    이들은 이 과정에서 삼성 해고자 위주의 삼성일반노조(위원장 김성환)의 도움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 직원들이 이달 초부터 복수노조가 허용된 뒤 노조 설립 신고를 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노동 당국은 신고 사항을 검토해 조만간 신고필증 교부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이에 따라 삼성 여러 계열사에서 노조 설립 움직임이 활발해지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삼성은 78개 계열사 가운데 삼성생명, 삼성증권, 삼성화재, 삼성정밀화학, 삼성중공업, 삼성메디슨, 호텔신라, 에스원 등 8곳에 이미 노조가 있고 최근 삼성에버랜드에도 노조가 생겼다.

    그러나 대부분 계열사에 편입되는 과정에서 기존 노조가 유지되고 있거나 노조원이 고작 2명에서 30여명인 경우가 대부분이고, 삼성생명(옛 동방생명)과 삼성증권(옛 국제증권)은 민주노총에, 삼성정밀화학(옛 한국비료)은 한국노총에 가입했다.

    지난달 말에는 복수노조 제도가 시행되기 직전 삼성에버랜드 간부 4명이 노조 설립 신고를 하고 회사 측에 교섭을 요구한 바 있다.

    이채필 고용노동부 장관은 최근 이와 관련해 "삼성 경영진이 무노조 경영 위주에서 이제는 노조와 동반해 경영을 해나가는 여건에 적응할 수밖에 없다"며 "이것이 노무 관리의 정도(正道)가 돼야 한다는 점에서 상당히 기대된다"고 말했다.

    그는 기대감의 구체적 내용에 대해 "노사관계 행정을 맡은 당국자 입장에서 볼 때 노조가 없던 사업장에 노조가 생겼으니 상대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긍정 속에서 발전해 가기를 기대하는 마음이다"라고 부연했다.

    노동 당국과 삼성에 노조 깃발을 꽂으려 했던 노동계 모두 삼성에 어떤 식으로든 노조가 생긴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함에 따라 노조원 수 등 세(勢)를 떠나 삼성 계열사에 크고 작은 노조가 더 생길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는 것이다.

    노동계는 아직 무노조 경영 원칙이 지켜지는 삼성전자 각 사업장과 주요 계열사를 주요 공략 대상으로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이날 설립신고서를 낸 노조가 특정 사업장이 아닌 초기업단위 노조를 지향하고 있음에도 민주노총과 삼성 순환출자 지배구조의 핵심인 삼성에버랜드의 직원들이 상징적으로 '첫 깃발'을 올렸다는 점에서 삼성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삼성에버랜드 주주는 삼성카드(25.64%),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25.1%),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과 이서현 제일모직 부사장(각 8.37%), 한국장학재단 (4.25%), 삼성SDI·삼성전기·제일모직(각 4%),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3.72%), 삼성물산(1.48%) 등이다.

    1대 주주인 삼성카드는 금융산업의 구조개선에 대한 법률(금산법) 규정에 따라 내년 4월까지 지분율을 5% 이하로 낮춰야 한다.

    삼성카드와 장학재단 지분이 없어도 이 회장 일가가 경영권을 행사하는 데 문제가 없지만, 삼성이 처분 방식을 놓고 고심을 거듭하는 상황에서, 또 이를 통해 삼성의 지배구조가 바뀌고 경영권 승계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민주노총과 이 노조가 어떻게 대응할지도 또 하나의 변수로 떠올랐다.

    반면, 이번 설립된 노조가 조합원 4명의 '초미니 노조'라는 점에서 삼성 내에서조차 영향력을 행사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이 노조는 삼성 전 계열사를 아우르는 초기업단위 노조를 표방하는 만큼 설립 필증을 받으면 삼성 전 직원을 대상으로 조합원을 모으고 비정규직도 가입시킬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따라서 결국 삼성을 대표하는 노조로서의 대표성과 정당성을 갖느냐, 삼성 직원들이 호응하느냐, 기존 노조가 인정하느냐 등에 따라 명실상부하게 세력을 더 규합하든지, 아니면 유명무실하게 명패만 가진 역할에 국한되든지 결정될 것으로 삼성 안팎에서는 전망하고 있다.

    삼성은 기업별 또는 산업별 노조가 아닌 이 노조에 대한 노동 당국의 설립인가 여부와 협상 파트너에 대한 유권해석 등에 따라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삼성 관계자는 "법으로 보장된 사항을 강제로 막을 수는 없으며, 노조 설립이 공식적으로 인정되면 교섭 등의 요구에 대해 관련 법령이 보장한 원칙과 절차에 따라 진행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또 복수노조가 허용된 지 보름이 됐지만, 다른 계열사에서는 별다른 설립 움직임이 없다는 점에서 이번 노조의 설립 신고가 '찻잔 속 태풍'으로 끝날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