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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연방정부 부채상한 증액을 둘러싼 정치권의 논쟁은 지난 4월초 여야간 `2011회계연도 예산안 협상'이 타결되자마자 시작됐다.
사상 초유의 연방정부 폐쇄라는 위기 상황에 임박해 예산안 합의를 어렵사리 도출한 정치권이 국가 디폴트(채무상환 불이행)라는 재앙이 현실화할 수 있다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양보없는 `치킨 게임'을 벌인 것이다.
디폴트 시한을 고작 이틀 앞둔 31일 수개월간의 논쟁 끝에 막판 극적인 타결에 성공했으나 이번 부채협상은 세계 최강국 미국에 `치명상'을 남겼다는 지적을 피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이번 타결은 재정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는 가운데 `미봉책'에 불과해 향후 논쟁이 재연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당장 빚을 추가로 낼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했다고 해도 정부 지출의 40%를 차입에 의존하고 있는 근원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한 이런 악순환은 되풀이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가뜩이나 경기회복이 둔화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가운데 이번 논쟁으로 국가신용등급이 하향조정될 경우 금융시장은 물론 미국 경제 전반에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의견이다.
아울러 유럽발(發) 재정위기가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미국의 디폴트 및 신용등급 하향 조정 가능성은 앞으로도 글로벌 경제에 큰 부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 지도자들도 이번 논쟁에서 얻은 것보다는 잃은 게 더 많다는 지적이다.
오바마 대통령의 지지율이 사상 최악(40%, 갤럽 29일 발표)을 기록했고, 의회는 타협 능력과 리더십의 부재라는 비난을 받으면서 국민적 정치불신이 더 심해지는 결과를 초래했다.
더욱이 내년 대선을 앞두고 민주·공화 양당이 앞으로도 사사건건 당파논쟁을 벌일 가능성이 높다는 점도 우려를 키우는 요소다.
사회적으로도 이번 부채상한 증액 협상 과정에서 불거진 세금인상 논쟁이 미국내 계층간 갈등과 반목을 심화시켰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이밖에 이번 부채상한 증액 및 재정적자 감축 논쟁으로 인해 다른 중요한 국가적 현안이 뒷전으로 밀린 것도 경제회복에 힘을 쏟아야 할 미국으로서는 큰 손해가 아닐 수 없다.
실제로 수년째 지연되고 있는 한국 등과의 자유무역협정(FTA) 이행법안 처리는 백악관과 민주.공화 양당이 모두 처리 필요성에 공감하고, 무역조정지원(TAA) 제도 연계 논쟁도 합의점을 찾았으나 이번 부채 논쟁으로 인해 8월 의회 휴회 전 처리가 사실상 무산됐다.
지식층과 언론은 물론 미국의 모든 국민이 이번 사태를 겪으며 한목소리로 정치권의 자성과 정부의 재정건전성 확보 노력을 촉구하고 있으나 막가파식 정쟁으로 추락한 국가 신뢰도를 회복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