맏형 포스코 나서지 않으면 中에 넘어갈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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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평소 친하게 지내던 학교후배들에게 연락이 왔다. "형 싸게 많이주는 고기집이 있는데 애들이랑 같이 식사하시죠?"라며 한 후배가 말했다. 형이라는 이유로 '계산 좀 해주시죠'란 속뜻이 담긴 반협박이었다. 굉장히 많은 고민이 들었다. 월말이라 통장잔고는 바닥을 향해 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갑이 빵빵할때야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상황이 상황이다보니 부담감이 느껴졌다. 유일하게 월급 받는 형으로서 '가오(?)'도 있고 의리를 져버릴 순 없지 않은가. 결국 의리에 못이겨 고기와 술을 샀고 이후 집에서 라면을 먹고 있다.
문득 스케일은 비교가 안되지만 포스코 권오준 회장이 이런 고민을 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최근 포스코는 산업은행으로 부터 동부제철 인천공장과 동부발전당진에 대한 '패키지 매각'을 공식 제안받았다. 인천공장은 당초 1조2000억원으로 가격이 매겨졌는데 인천공장 설비가 노후화됨을 감안하면 너무 세게부른 것 아니냐는게 업계의 평가였다. 그래서 산은은 "우리가 지분의 8을 낼테니 포스코는 나머지 2만 내라"는 파격 제안을 했다.
여기서부터 권 회장의 고민은 시작된다. 인천공장의 메인 인프라는 '칼라강판'이다. 하지만 포스코는 계열사 포스코강판을 통해 칼라강판을 생산하고 있다. 또 칼라강판 시장은 이미 공급과잉 상태다. 싸다고 굳이 살 이유는 없는 것이다. 게다가 무리한 M&A(인수합병)으로 인해 포스코의 재무상태는 악화될대로 악화됐다. 권 회장은 최근 자신의 급여 30%를 반납하는 등 허리띠를 졸라매며 재무상태 개선을 위해 노력 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확실한 수익성을 보장할 수 없는 인천공장 매입에 뛰어들기는 부담이 되는 것이다. 포스코의 한 내부관계자는 "산은의 이러한 제안에 부정적인 기류가 흐르고 있다"고 귀띔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국철강협회장으로서 권 회장은 또 다른 입장이 있다. 철강업계의 맏형 포스코가 나서지 않을 시 바오산 철강을 비롯한 중국업체들의 손에 인천공장이 넘어갈 수 있는 위협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쌍용차가 상하이자동차로부터 기술력만 뺏기고 버려진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했다. 포스코의 수장이 아닌 철강협회장으로서는 이런 상황을 막아야한다는 압박감이 존재한다.
포스코는 산은의 공식 제안을 받아 들이고, 인천공장 매입에 대한 실사에 나선 상태다. 인천공장이 포스코에 득이 될지 실이 될지 결과가 나와봐야 알겠지만 큰 득을 가져다 주진 못할 것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아예 (인천공장을)매입 하지 않는게 포스코 입장에서는 재무구조개선의 지름길이지 않겠나"라고 평가했다.
이런 저런 상황이 권 회장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지만, 결국 최종 결정은 권 회장 몫이다. 어떠한 이유로 어떤 결정을 하든 권 회장이 포스코와 철강협회 사이에서 '소신'있는 선택을 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