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EU-REACH 대응 선례 있지만 영업비밀 노출 우려"중기, "유럽보다 더 강한 규제…대응 부담 커 사실상 무방비"
  • ▲ 화평법 제정에 따른 관리체계 변화 @화평법도움센터
    ▲ 화평법 제정에 따른 관리체계 변화 @화평법도움센터

    내년 1월 1일부터 시행되는 화평법(화학물질등록및평가법)과 화관법(화학물질관리법) 때문에 국내 화학업계가 깊은 시름에 빠졌다.

    LG화학, 롯데케미칼, 한화케미칼, 금호석유화학과 같은 대기업뿐만 아니라, 중소 화학업체들도 새롭게 시행되는 화평법에 대응하기 위해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

    화평법 시행으로 인해 가장 큰 타격을 입는 곳은 중소규모 업체가 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대기업의 경우 화학물질을 수출하는 곳이 많아 이미 유럽연합의 환경규제인 EU-REACH에 대응한 선례가 있으며, 독성 물질 연구 자료 등을 풍부하게 보유하고 있어 화평법에 비교적 효율적으로 대응할 수 있지만 중소업체의 사정은 다르다.

    화학물질 수입업체의 경우에는 협력사나 거래처로부터 독성 물질 실험 연구 자료를 건네 받거나 연구 비용을 분담하는 방식으로 부담을 줄일 수 있지만 화학물질 생산업체의 경우 모든 부담을 혼자서 감당해야 한다.

    특히 흔하게 쓰이지 않는 특수 화학 물질을 취급하는 업체일수록 그 부담은 커지게 된다. 독자적으로 위해성 평가 물질에 대한 독성 실험 연구 자료를 환경부에 제출해야하는데 국내에 이를 담당하는 전문기관과 전문가 수가 극소수로 제한적인데다 비용이 만만치 않아 큰 부담을 느끼는 것이다.

    한 중소 화학업체 관계자는 "당장 내년부터 화평법을 시행한다는데 우리같은 영세 업체에서 큰 비용이 들어가는 독성 물질 연구를 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면서 "솔직히 화평법의 내용도 자세히 모를뿐더러 시행된다고 하더라도 별다른 대응책이 없어 손 놓고 발만 동동 구르는 꼴"이라고 답답함을 호소했다.

    실제 중소기업중앙회가 지난 2월 27일부터 3월 13일까지 중소기업 300곳을 대상으로 '중소기업 환경규제 대응 실태조사'를 진행한 결과, 화평법·화관법 등 2015~2016년 내 시행되는 신규 환경규제에 대해 67.5%의 중소기업이 '들어본 적 없다'고 답했다.

    대기업 또한 중소기업과 그 이유는 다르지만 화평법으로 인한 속앓이 중이다.

    화평법이 시행되면 자사가 다루는 화학물질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야 하는 의무조항이 있어 자칫 영업비밀이 새어나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화학업계 한 관계자는 "화평법이 시행되면 취급하는 화학물질은 물론, 그 물질의 특수한 용도와 협력사, 거래처 정보까지도 공개해야한다는 부담이 있다"면서 "이는 영업비밀과도 같은 민감한 정보이기 때문에 공개될 경우 사업에 큰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 화학 컨설팅 업체인 켐토피아 관계자 역시"화평법이 시행되기 전 자사에서 사용하고 있는 화학물질이 무엇인지, 그 물질의 연간 사용량은 얼마정도인지를 먼저 정확하게 파악해야하며 정부에서 유해성 심사 물질 리스트를 고시했을 때 즉각적인 대응 방안을 마련해 놔야 한다"면서 "그 물질의 독성 데이터 자료를 확보하는 것은 물론 우려되는 물질의 대체 물질을 마련해 놓는 것도 하나의 방안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한편, 환경부는 화확물질 시장 유통 전, 잠재적으로 국민건강과 환경에 위해 요인이 되는 화학물질을 사전에 파악하고 유해성·위해성정보를 확보하기 위해 내년 1월 1일부터 화평법을 시행한다고 밝혔다.

    이미 유럽에서는 화평법과 비슷한 내용의 EU-REACH를 지난 2007년부터 도입해 화학물질에 대한 관리를 정부 차원에서 해 오고 있으며 일본과 중국도 화학물질에 대한 관리를 강화하고 있다.

    국내 화평법이 EU-REACH와 다른 점은 폴리머(Polymer. 고분자)에 대한 사항이다. 유럽은 폴리머에 대해 별도의 등록을 받지 않고 폴리머를 구성하는 원료에 해당하는 모너머(monomer. 단량체)만 등록하면 됐지만 국내 화평법에 따르면 폴리머도 모너머와 마찬가지로 별도로 등록해야 한다. 국내 화평법이 EU-REACH에 비해 더욱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이다.

    환경부는 화평법 시행에 앞서 오는 10월 유해성 평가 물질 예상 리스트를 발표한다. 화평법 시행 전, 기업들이 미리 대응 방안을 강구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차원이다.

    1차 발표되는 유해성 평가 물질은 CMR(발암성, 돌연변이성, 생식독성)과 PBT(잔류성, 생물농축성, 독성이 강한 물질) 등이 될 것으로 전해졌다.

    아울러 환경부는 위해성 자료 제출 기준인 화학물질의 제조·수입량을 2015년 연간 100만t 이상에서 단계적으로 강화해 2020년에는 연간 10t 이상으로 조정한다는 방침이다.

    즉 오는 2020년부터는 개별 화학물질 당 연간 10만t 이상을 제조하거나 수입할 경우 의무적으로 해당 물질에 대한 위해성 자료를 제출해야 한다.


  • ▲ ⓒ LG화학 여수공장 (사진출처=연합뉴스)
    ▲ ⓒ LG화학 여수공장 (사진출처=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