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산시스템 교체 문제로 불거진 갈등, 결국 금감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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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금융지주와 국민은행의 내부 갈등이 심상치 않다. 전산시스템 교체 문제를 놓고 지주와 은행이 서로 날을 세우고 있다.
급기야 국민은행 경영진들이 은행의 경영 과정에 문제가 있다며 금융감독원에 보고하는 사건까지 발생했다. 금감원은 '셀프 신고'까지 이루어질 정도면 은행 내부통제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인식해, 국민은행에 대한 긴급 검사에 착수했다.
KB지주와 국민은행 경영진 사이의 갈등이 자칫 '신한사태'의 재현으로 이루어질 것인지 금융권은 주시하고 있다.
◇ 전산시스템 교체 갈등, '셀프 신고'까지
이번 갈등은 국민은행의 주 전산시스템 교체 문제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불거졌다. 국민은행과 국민카드는 지금까지 IBM의 메인프레임 시스템을 써왔다. 이 시스템은 개발 시간이 오래 걸리고 시스템 간 연계가 어려우며 유지·보수 비용도 상대적으로 많이 든다는 문제점이 있었다.
이에 따라 두 회사는 지난 2012년부터 시스템 교체를 검토해 왔고 지난해 11월 은행 경영협의회, 올해 4월 은행·카드 이사회 결의를 거쳐 유닉스(Unix) 시스템으로의 변경을 확정했다. 예정대로라면 유닉스 시스템 도입을 위한 입찰을 오는 21일까지 마감할 예정이었다.
이 과정에서 이건호 국민은행장과 정병기 국민은행 상임감사위원은 감사위원회·이사회 등에 재논의를 건의했다. 기술검증 과정에서 시스템의 문제가 발견됐다는 내부 감사보고서를 근거로 시스템 결정과정이 깨끗하지 못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은행 감사팀은 내부감사를 통해 주 전산기 결정을 위한 보고서 작성 과정에서 유닉스 기반 시스템의 가격 경쟁력과 잠재 리스크 요인을 의도적으로 축소·누락한 정황을 발견했다는 내용을 감사보고서에 담았다. 은행 시스템에 사용할 수 없을 정도의 성능이 떨어지는 하드웨어 조합을 기반으로 가격을 책정하고, 시스템 전환 이후 나타날 수 있는 여러 위험 요인들을 알고서도 보고서에 누락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두 사람의 건의는 사외이사들이 주축이 된 이사회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이들은 즉각 금감원에 감사를 요청했다. 이사회 결정사안에 대해 경영진이 감독기관에 감사를 요청한 것은 극히 드문 일이다.
KB금융은 은행 측의 이런 행동에 대해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KB금융 관계자는 "국민은행 전산시스템 선정과 관련해 이사회에 앞서 충분한 내부 조율이 안 된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금감원에 검사를 요청한 것은 부부싸움을 시어머니에게 알린 격"이라고 말했다.
이번 갈등과 관련, 금감원은 19일 특별 검사에 들어간 것과 별도로 내달 말 대규모 검사인력을 투입해 국민은행 전체에 대한 경영 진단에 나설 방침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자세한 내역은 조사해봐야겠지만 전산시스템 선정 절차상 상당한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이사회 결정 과정에서 충분한 의견수렴을 거치지 않은 것도 문제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 임영록 vs 이건호 대리전… '신한 사태' 재현?
금융권에서는 이번 사건의 이면에 임영록 KB금융 회장과 이건호 행장의 주도권 다툼이 있다고 해석하고 있다. 정 감사위원은 이 행장을, 국민은행 이사회는 임 회장을 각각 대리한다는 것이다.
KB금융은 이 행장, 정 감사위원이 이사회와 갈등을 보이자 "이사회 의견을 존중해 달라"는 취지를 국민은행 경영진에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정 감사위원이 이 행장 지시로 사실상 금감원에 조정을 요청하면서 국민은행이 지주의 요청을 무시한 모습이 됐다.
임 회장과 이 행장은 모두 외부 출신이다. 재정경제부 2차관 출신인 임 회장은 KB금융 사장을 거쳐 회장으로 선임됐고 이 행장은 금융연구원 출신이다.
일각에서는 임 회장과 이 행장의 주도권 다툼이 자칫 2011년 '신한은행 사태'와 같은 극단적인 갈등 양상으로 커지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신한은행은 당시 모회사인 신한금융지주 경영진이었던 라응찬 전 회장과 신상훈 전 사장의 다툼으로 인해 내상을 입으면서 조직 추스르기에 상당한 시간을 소요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