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업계, 대형 조선사는 무탈하나 중소조선사에 직격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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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자동차업계를 중심으로 전 산업계에 퍼져나가고 있는 '엔저 공포'가 철강·조선업계에까지 들이 닥쳤다. 중국산 철강재가 무분별히 수입되던 것을 신경쓰던 사이 일본산 철강재 수입이 급증하고 있고, 전 세계에 발주되는 선박 물량을 중국이 값싸게 수주해가는 것에 신경쓰던 틈에 어느덧 일본도 국가별 선박수주량에서 우리나라를 앞지르기 시작한 것이다.
13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일본에서 들어오는 철강재 수입이 6개월 만에 증가세로 돌아섰고, 국가별 선박수주량에서도 우리나라는 일본에 뒤쳐졌다.
한국철강협회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달 일본에서 국내로 수입된 전체 철강재는 총 67만8000t이다. 이는 지난 8월과 비교해 11.4%, 지난해 9월과 비교해서는 10.7% 증가한 수치다. 품목별로 살펴봐도 열연강판, 중후판, 강반제품 등 너나할 것 없이 큰 오름폭을 보였다.
철강업계가 특히나 위기감을 느끼는 것은 중국산 철강재의 경우 국내에서 생산된 제품과 비교해 품질에서 큰 차이를 보이고 있으나, 일본산 제품의 경우 우리나라와 동등하거나 그 이상의 품질을 자랑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저가 물량공세를 펼쳐와도, 고부가가치 제품군의 시장만큼은 사수해오며 일정 수준의 수익성을 담보 받아 왔지만 이 마저도 위협받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엔저 쓰나미'가 영원히 지속될 수는 없듯, 이같은 상황도 언제까지 계속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에서 위안을 삼는 모습이다.
철강업계 한 관계자는 "국내 철강 수요 산업이 장기적인 불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엔저로 인한 일본산 철강재 수입마저 급증해 철강업계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엔저가 장기적으로 이어질 경우 업체 피해가 더욱 늘어날 수 있기 때문에 환율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선업계에도 '엔저 공포'는 확산되고 있다. 영국의 조선·해운 시황 분석기관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지난달 우리나라는 중국(92만2800CGT), 일본(55만1850CGT)에 이어 국가별 선박수주량에서 3위를 차지했다.
CGT는 선박 부가가치를 감안한 수정환산톤수로, 제조가 어려운 배일수록 높은 계수를 반영한다. 우리나라가 월별 수주실적에서 일본에 뒤진 것은 지난 4월과 6월에 이어 올들어서만 벌써 세번째다.
철강업계와 차이점이 있다면 철강업계는 회사의 규모가 크고 작은 것과 무관하게 모두 '엔저 공포'에 노출되어 있다는 것이고, 조선업계의 경우 중소 조선사들이 엔저의 집중포화를 맞고 있다는 점이다.
대형 조선사들의 경우 해양플랜트나 드릴십을 비롯해 고부가가치 제품을 건조하는데 있어 아직까지 일본과의 기술 격차를 유지하고 있지만, 일본업체들과 직접적인 경쟁을 펼치고 있는 중소 조선사들은 '엔저 쓰나미'를 피해가기 힘들다는 것이다.
국내 대형 조선사에 근무하는 한 관계자는 "대형 조선소의 경우 일본과 주력 선종에 차이가 있어, 엔저에도 크게 우려할만한 상황은 아니다"며 "액화천연가스(LNG)선과 같은 경쟁선종 분야에서도 국내 조선소들은 에너지 시장 개편에 맞춰 새로운 선종을 개발하고 있으나, 일보 업체들은 고부가가치 선박인 파생선종 분야의 기술력을 여전히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조선소와 선주사가 쌓아온 신뢰 또한 가격 못지않게 수주에 영향을 끼치는 것이 조선업계의 특성"이라 덧붙였다.
이어 그는 "문제는 엔저를 계기로 일본 정부가 조선업 부활을 적극 지원하는 경우"라며 "기술력 확보를 위해 대규모 투자를 한다든지, 현재 수준의 선박금융 지원 규모를 유지할 경우 5~10년 후에는 장기적으로 우리 조선업체들을 위협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