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성 두고 대표회의 지자체 의견 엇갈려주거환경 열악…빠른 대책 필요해
  • ▲ 서울 노원구 백사마을 전경. 이곳의 역사는 196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뉴데일리경제
    ▲ 서울 노원구 백사마을 전경. 이곳의 역사는 196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뉴데일리경제



    "봉사활동 오시는 분들이야 당연히 고맙죠. 그런데 중요한 것은 따로 있어요. 비가 세고 쥐가 나오는 곳에서 어떻게 살 수 있겠어요. 이제는 한숨 밖에 안나옵니다."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라 불리는 노원구 백사마을. 불암산자락 중계동 산104번지에 있는 이 곳은 겨울이 되면 어김없이 따듯한 온정이 담긴 봉사활동으로 언론에 오르내린다. 그러나 그것은 백사마을의 단면일 뿐이었다.

    27일 찾은 백사마을은 낭만과 그늘이 교차한 삶의 현장이었다. 재개발 사업을 두고 백사마을은 길을 잃고 방황하고 있었다. 마을 곳곳엔 주민대표회의에서 붙인 호소문, LH(한국토지주택공사) 공문, 과거 주민대표회의를 규탄하는 벽보 등 갈등이 담겨져 있었다. 아름답게 그려진 벽화속에 숨겨진 정반대의 모습이었다.

    백사마을의 역사는 196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마을은 도심 개발에 의해 청계천, 창신동, 영등포 지역에서 내몰린 철거민들이 이주해오면서 형성됐다. 이후 1971년 개발제한구역으로 묶였다가 2008년 1월 해제됐다. 그러다 2009년 5월 재개발 구역으로 지정됐다.

    서울시에 따르면 백사마을은 지난 2009년 5월 전면개발방식으로 지구단위계획 및 재개발 정비구역으로 지정됐다. 이후 1960∼1970년대 주거·문화 모습과 도시흔적을 보전하기 위한 계획을 밝혔다.

    이에 따라 2012년 백사마을 주택재개발 구역 18만8900㎡ 중 4만2773㎡를 저층 주거지보전구역으로 변경하는 주택재개발 정비계획 변경(안)을 결정했다. 즉 서민의 숨결을 그대로 간직한 집과 골목길, 계단길, 작은마당 등 일부 주거지는 원형을 살리는 방식으로 개발한다는 것이다. 이는 유네스코 역사마을 보전원칙에 따라 기존의 지형, 골목길 등을 유지하면서 리모델링 또는 신축을 통해 다양한 임대주택이 들어선다는 계획이다.

    계획대로라면 2016년 완공됐어야 했지만 현재 사업은 첫삽조차 뜨지 못하고 있었다. 문제는 사업성을 두고 지자체와 주민 대표회의간 의견차가 커서다.

  • ▲ 백사마을 곳곳은 벽화로 꾸며져 있었다.ⓒ뉴데일리경제
    ▲ 백사마을 곳곳은 벽화로 꾸며져 있었다.ⓒ뉴데일리경제



    현재 백사마을 주민대표회의는 사업성이 없다는 이유로 서울시 개발 방식을 반대하는 입장이다. 그 근거로 제시한 것이 LH(한국토지주택공사)가 내놓은 사업성 분석 자료다. 자료에 따르면 서울시 개발 방식으로 진행될 경우 백사마을 권리자 분담금은 최대 3억원에 달한다.

    대표회의 관계자는 "시가 개입하지 않을 경우 분담금 1억원 가량이 줄어든다"며 "기존 재개발 방식대로 추진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현재 대표회의는 사업성 개선을 위한 절충안을 구청측에 제시한 상태다. 그러나 노원구청은 대표회의의 요구가 과하다는 입장이다.

    구청 관계자는 "용적률 상향 등은 수용이 불가능한 내용"이라며 "서울시와 현재 협의 중"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LH의 사업분석 자료와 관련해 논란은 현재 진행 중이다. 구청 관계자는 "LH 분석자료는 객관성이 떨어진다"며 "분양가는 낮추고 공사비는 과다하게 책정됐다"고 주장했다.

    즉 구청과 서울시는 이 자료가 적절치 못하다는 주장이다. 구청과 시청은 LH에 관련 자료 제출를 요구했지만 LH가 지연시키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 LH를 여러차례 고발했다.

    시청 관계자는 "공공기관이라면 더 많은 정보를 공개해야 한다"며 "시 입장에서 충분히 요구할 수 있는 자료"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LH 관계자는 "백사마을 재개발 사업과 관련한 자료와 답변은 모두 제출했다"며 "시와 구는 이번 사업과 관련 없는 자료를 요구 있어 곤란한 상황이다"이라고 반박했다. 이어 "수차례 고발을 받았지만 법적 조치가 진행된 것은 없다"고 덧붙였다.

    구청과 시가 주장하는 사업성 분석자료와 관련해 LH는 "객관성 확보를 위해 외부 전문업체에 의뢰해 분석자료를 내놨다"며 "백사마을은 암반지역으로 공사비가 높을 수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 ▲ 백사마을 주거환경은 열악했다. 빈집은 물론 곳곳이 무너지기 직전의 모습이었다.ⓒ뉴데일리경제
    ▲ 백사마을 주거환경은 열악했다. 빈집은 물론 곳곳이 무너지기 직전의 모습이었다.ⓒ뉴데일리경제



    이 같은 사업지연으로 세입자들도 어렵긴 마찬가지다. 이들은 월세 10만원으로 살아가는 극빈계층이 대다수다. 그러나 그들이 요구할 수 있는 권리는 없는 것이 현실이다. 세입자 중에서도 2007년 6월 이전 거주가 확인된 가구에만 주거이전비가 지급된다. 여기에 임대주택을 분양받을 수 있는 권리가 더해진다. 때문에 그들은 하루빨리 사업이 진행돼 주거환경이 개선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때문인지 마을에서 만났던 주민들의 표정 속에선 재개발의 꿈을 버린지 오래된 모습이었다. 한 60대 주민은 "구청장, 국회의원이 찾아와 재개발을 약속 한 게 한 두번이 아니다"라며 "이제 누구의 말도 믿지 않는다"고 말했다.

    30년을 백사마을에서 살았다던 한 주민도 "사위 내외가 온다고하면 말릴 정도로 주거 환경은 형편없다"며 "천장에선 비가 세고 쥐가 살고 있다면 믿겠느냐"고 한숨을 내셨다.

    재개발이 차일피일 미뤄지면서 집주인들은 하나둘씩 이 곳을 떠나기 시작했다. 이제 대부분 세입자들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실제 많은 집들은 사람의 손길이 닿은지 오래됐다. 백사마을은 약 1500가구 정도가 들어서 있다. 현재 약 500가구는 빈집으로 남아 있다. 현 거주자 중에 700가구 정도가 세입자로 추정된다. 그나마 거주자가 있는 집 지붕은 파란 천막이 덧씌어 있었다. 파손 지경에 이른 지붕이 방수 제 역할을 못하고 있어서다.

  • ▲ 1500가구 중에 약 500가구가 빈집으로 남아있는 것으로 전해졌다.ⓒ뉴데일리경제
    ▲ 1500가구 중에 약 500가구가 빈집으로 남아있는 것으로 전해졌다.ⓒ뉴데일리경제



    취재를 위해 마을을 오르자 12월 한겨울 날씨에도 몸에선 땀이 났다. 60∼70대 어르신들도 가파른 언덕길을 힘겨운 발걸음으로 내디뎠다. 오르막길 양쪽으론 허름한 기와집들이 다닥다닥 늘어섰다. 건물 외벽은 갈라져 있었고 금방이라도 쓰려질 것 같은 위태로운 모습이었다.

    서울에 마지막 남은 달동네 향수때문인지 사진으로 추억을 담으려는 20대들도 눈에 띄었다. 또 불암산 둘레길로 조성돼 있어 관광객의 모습도 보였다.

    한 20대 여성은 2∼3달에 한번씩 백사마을을 찾는다고 설명했다. 그는 "폐가가 늘어나는 것을 볼 때 원주민들이 마을을 떠나는 것 같아 씁쓸하다"며 "건물도 조금씩 부서지고 페인트칠이 벗겨지는 모습을 보면 주거환경은 더 나빠지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어둠이 스며드는 오후, 취재를 마치고 돌아서는 길에서 번개탄을 한아름 들고 언덕을 오르는 70대 어르신을 만났다. 환하게 웃는 벽화와 그의 모습이 기자의 머리속을 교차해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