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프타 제조용 원유 1% 할당관세, 화평법-화관법, 탄소배출거래제 등 '규제 폭탄'지난해 4분기 재고평가손실액만 '1조' 넘을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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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 정유사들이 최근 국제유가 급락으로 인해 정제 마진 하락은 물론, 기름값 인하 압박이라는 이중 부담을 떠안고 나홀로 가시밭길을 걸어가고 있다. 유가 폭락으로 누구보다도 힘든 경영환경에 처해 있지만 정작 국민과 정부 양쪽 모두에게 눈치를 받고 있는 형국인 것이다.

    2015년 새해가 밝았지만 유가는 바닥이고, 화관법·화평법, 탄소배출권 거래제, 나프타 제조용 원유 할당관세 등 무거운 짐만 되려 늘었다. 때문에 정유 업계에서는 '아직 정유사의 새해는 밝지 않은 것 같다'는 푸념들이 쏟아지고 있다. 

    25일 정유업계에 따르면, 최근 글로벌 수요 부진과 국제유가 폭락으로 국내 최대 정유사인 SK이노베이션이 지난해 37년만에 적자를 기록하는 등 사상 최악의 길을 걷고 있다.

    GS칼텍스와 에쓰-오일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작년 1∼3분기 업체별 정유부문 실적을 보면 SK이노베이션 4060억원 적자, GS칼텍스 4016억원 적자, 에쓰-오일이 3923억원 적자를 냈으며 유일하게 현대오일뱅크만 1792억원의 흑자를 기록했을뿐이다.

    증권업계에서는 올 4분기 SK이노베이션이 약 7000억원의 재고평가손실액을 입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에쓰-오일과 GS칼텍스도 마찬가지로 수천억원대의 재고평가손실을 입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재고평가 손실이란 정유사들이 기존에 보유하고 있는 석유와 석유제품 등의 재고 가치가 떨어지는데서 오는 손실을 말한다.

    쉬운 예를 들면, 원유 1리터를 1000원에 구입했는데 원가가 떨어져 현재는 원유가 1리터에 500원에 팔린다면, 기존에 사뒀던 원유는 모두 500원의 가치로 평가되기 때문에 가치 손실이 생긴다. 이같은 재고평가 손실은 최근 국제유가의 급락이 크게 작용했다.

    지난 3분기만해도 평균 100달러대를 웃돌던 국제유가는 서서히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2015년에 이르자 40달러대까지 뚝 떨어졌다. 국제유가의 상승과 하락은 항상 돌고 도는 순환을 거치기 때문에 정유사들도 어느 정도 예상했던 부분이지만, 도무지 유가가 상승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에 컴컴한 터널 안에 갖혀 있는 셈이다.

    출구가 없는 어두운 터널 속을 걷고 있는 정유사들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정부의 '공급가 인하' 압박에 의해 더욱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정부는 국제유가가 뚝뚝 떨어지자 휘발유 공급가를 내리라고 정유사에게 강요하지만, 정작 자신들이 징수하는 '유류세'는 내리지 않고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통상 정유사는 원유를 들여와 정제과정을 거쳐 휘발유를 만든 뒤 비용과 영업이익 등을 더해 세전 공급가를 결정하며 이에 더해 정부는 800~900원대의 세금을 부과한다. 이러한 과정을 거친 후 주유소가 비용과 영업이익 등을 고려해 최종 소비자가격을 결정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국제유가가 낮아져도 고정 세율이 적용되는 국내 유류세 때문에 정유사들이 아무리 공급가를 낮춰도 소비자들은 기름값 하락을 체감하기 어려울뿐더러, 공급가를 낮추면 낮출수록 정유업계는 '마이너스'만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실제 국내 휘발유 판매가에서 세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1월 49%에서 12월 말에는 56%로 증가했다.

    소비자들 입장에서는 당연히 기름값이 내려가는 현상에 대해 두 팔 벌고 환영하지만, '기업'이라는 체제를 갖추고 있는 정유사 입장에서는 이익은 없고 손실만 커지는 정유사업이 부담으로 작용할 뿐이다.

    정유업계의 한 관계자는 "유가 급락으로 인해 재고평가손실이 만만치 않다보니 지난해 정유부문이 가장 어려웠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라고 한숨 섞인 목소리를 냈다.

    정유업계 입장에서는 국제유가가 올라도 쓴소리를 듣는 것은 마찬가지다. 유가가 올라가게 되면 이에 맞춰 자연스레 공급가를 높이게 되는데 이때 소비자들에게는 기름값 상승이 부담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기 때문에 또 다시 정유사들은 뭇매를 맞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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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히나 지난 1일부터 적용된 나프타 제조용 원유 1% 할당관세, 화평법(화학물질등록및평가법)과 화관법(화학물질관리법), 탄소배출거래제, 등의 3중고가 겹치면서 국내 정유·석유화학 업계는 '진퇴양난'의 길을 걷고 있다.

    석유화학 제품의 원료로 쓰이는 나프타는 원유를 기반으로 만들어지는데 정부는 그간 수입 나프타에 대해 무관세를 적용해왔다. 그러나 이번 관세 부과 시행으로 인해 정유사들과 LPG사들은 나프타용 원유와 LPG에 각각 1%와 2%의 관세를 추가로 내야 하게 됐다. 이를 환산하면 연간 1800억원에 이른다.

    그러나 나프타 완제품 자체를 수입해 올 경우는 관세가 붙지 않기 때문에 이번 안이 통과되면서 오히려 정부가 나서서 수입을 장려하는 꼴이 돼버려 정부의 정책이 올바르지 못하다는 비난의 파도도 일렁이고 있다.

    또한 온실가스 배출 거래제(탄소배출거래제) 시행으로 정유사뿐만이 아니라 다른 기업들도 큰 부담을 얻게 됐다.

    탄소배출거래제는 정부가 정해준 할당량보다 온실가스를 적게 배출한 기업이 남는 양을 판매하고, 할당량보다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한 기업은 초과한 양만큼 배출권을 구입하는 거래다. 만약 할당량을 초과한 기업이 배출권을 구매하지 못하면 과징금이 부과된다.

    이를 두고 업계에서는 1차 계획기간인 2105년부터 2017년까지 3년동안 최대 28조원 규모의 추가 부담이 발생할 것으로 예측했다. 정부가 각 기업에게 할당한 배출량이 실제 배출량보다 지나치게 적어 초과분에 대한 과징금 폭탄을 맞게될 것이라고 바라보고 있다.

    화관법/화평법 또한 정유사의 발을 잡기는 마찬가지다. 화평법은 산업계의 화학물질 취급 지침을, 화관법은 화학사고 시 이에 대한 처벌 내용을 각각 담고 있으며 기업들은 취급량 1t이 넘어가는 화학물질에 대해서는 신고와 유해성 심사 등을 해야 한다.

    특히 석유화학산업은 화평법과 화관법의 대표적인 규제 업종으로 분류돼 있기 때문에 과징금을 피하기 쉽지 않다. 화관법에 따라 만약 유해 화학물질 유출사고가 발생하게 되면 사업장 매출 최대 5%를 과징금으로 내도록 돼있다.

    국내 정유업계 한 관계자는 "유가 하락이 멈춘다고 해도 그동안의 손실을 어떻게 보완할 지 막막하다"며 "2015년 새해가 밝았지만, 지금같은 최악의 상황으로 아직 정유업계에는 해가 뜨지 않았다"고 말했다.

    한편, 최근 국내 정유사들이 새해 들어서만 공급 기준가를 ℓ당 120원 안팎 인하함에 따라 1300원대 주유소는 물론이고 1200원대 주유소 또한 속속 확산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