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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송파구 풍납동에 위치한 풍납토성은 평지성으로, 지금으로부터 54년 전인 1961년 첫 발굴조사가 시작됐다. 이후 1963년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제11호로 지정됐다. 서북쪽으로 한강에 직면하고 있고 강 건너에는 아차산성이 있다. 남쪽으로 성내천을 사이에 두고 직선거리 약 800m 떨어져 몽촌토성이 있다. 서남쪽으로는 석촌동 고분군과 대모산성 삼성동토성이 있으며, 동쪽으로는 이성산성, 동남쪽으로는 남한산성이 자리잡고 있다.
풍납토성은 1925년 대홍수 때 토성의 서벽이 유실되면서 청동제 초두 2점과 금제귀걸이 백동경 금동제 허리띠장식 유리옥 수막새기와 등 중요 유물이 발견돼 1934년 일본인 아유까이가 "풍납토성은 백제 하남위례성이다"고 주장했다. 그렇지만 별로 주목을 받진 못했다.
이후 진단학회 이사장을 지낸 고(故) 이병도 전 서울대 교수는 풍납토성을 삼국사기 백제본기에 보이는 사성으로 판단했다. 즉 9대 책계왕 때 고구려의 침입에 대비해 아단성과 사성을 고쳐쌓았다는 기록과 개로왕 21년(475년)에 고구려의 첩자 승려 도림의 건의에 의해 성곽을 쌓고 궁실을 지으며 부왕의 능을 보수하고 사성(蛇城)의 동쪽으로부터 숭산(崇山)의 북쪽까지 제방을 쌓았다는 기록이 있다. 그 제방은 없어졌지만 사성은 한강 남안에 있어 강북의 아차성과 함께 나오는 것을 보면 이것이 바로 풍납토성임을 암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성은 배암드리인데 이것이 음변해 바람들이 되고 한자화하면서 풍납(風納)이 됐다는 것이다.
1964년 서울대 발굴단에 의해 북벽 근처 일부가 시굴 조사됐었는데 출토된 유물량이나 성격으로 봐 백제시대 중요성임에는 틀림없으나 아마도 군과 민이 함께 살던 성으로 사성일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그러던 중 1980년대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몽촌토성을 발굴하면서 몽촌토성을 하남위례성으로 보는 주장이 대두해 풍납토성은 하남위례성으로부터 더욱 멀어진 듯 했다.
그러다 1997년부터 풍납토성 재건축 부지에 대한 발굴조사가 이뤄지면서 지금까지 지표 아래 4m에서 백제초기의 집자리를 비롯 3중환호 토기가마 폐기장, 수혈유구, 제사와 관련된 특수 건물지, 연못지, 해자, 우물, 포장도로 등 중요한 유구와 기하학무늬와당, 전돌, 주초석, 꺽쇠, 건축자재, 기둥, 서까래, 불탄, 목재, 연질, 경질무문토기 등 수많은 유물이 출토되면서 "풍납토성이 백제왕성이다" 주장이 다시 대두되기 시작했다.
풍납토성의 평면 형태는 북서쪽으로 한강을 끼고 약간 동쪽으로 치우쳐 남-북방향으로 길게 형성된 타원형을 이루고 있다. 북벽과 남벽은 짧은 벽으로 직선에 가까우나 각기 동벽과 서벽으로 둔각을 이루며 꺾이고 그 중 동벽은 중앙부가 완만하게 휘어 있다.
1999년에 행해진 동벽 발굴조사로 기저부가 43m, 높이 11m 이상의 대규모라는 것을 알 수 있었을 뿐 아니라 여러 번에 걸쳐 흙을 다져 쌓은 판축토성이었으며, 판축과정에서 나뭇잎을 10겹이상 깔아 성곽을 견고하게 했다는 것이 알려졌다. 멸실된 서벽을 포함하면 둘레 3.5km인데 이 정도의 성을 쌓으려면 연인원 100만명 이상의 대규모 인력이 동원됐을 것으로 추산됐다.
성벽은 중심토루와 5개의 덧붙여 쌓은 토루로 축조된 내벽과 외벽으로 돼 있다. 중심토루는 생토층을 고르게 한후 약 50cm 두께의 뻘을 깔아 기초를 다지고 하부 폭 7m, 높이 5m 정도의 사다리꼴 모양으로 중심부를 쌓았다는 것을 알아냈다. 다음 안쪽으로 사질토와 모래, 점토다짐흙, 뻘흙을 위주로 한판축토루를 비스듬하게 덧쌓았다.
또 풍납토성은 철저한 계획에 의해 정교한 측량술로 쌓아졌고, 총 길이와 폭은 1500년 동안 흘러낸린 것을 감안하면 15m 이상에 달하는 거대한 판축토성이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하지만 '풍납토성은 백제 왕성이 아니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그런 만큼 '풍납토성은 백제 왕성인가'를 놓고 한동안 논란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풍납토성은 백제 왕성이 아니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내세우는 근거는 '7가지 미스터리'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첫번째가 주춧돌(초석)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왕궁 정도의 건물을 지으려면 상당한 굵기의 기둥이 수백개는 필요한 데 이를 받쳐줄 주춧돌이 발굴에선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발견된 주춧돌은 가운데 구멍이 뚫린 둥근 형태의 흙 주춧돌인데 이는 왕궁급 기둥을 받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또 풍납토성에서 발견된 기둥이 왕궁 수준의 기둥이 아니라 움집 수준이고, 규모 또한 왕성치고는 너무 작다는 것.
아울러 풍납토성 안에 건설된 도시구조가 계획조차 없이 무질서하게 세워져있다는 것도 이들은 '풍납토성은 백제 왕성이 아니다'는 근거로 내세워고 있다.
이 외에도 △홍수가 잦았다는 점 △엄청나게 많은 유물이 나온 점 △옛 기록에서의 위치 등을 근거로 들고 있다.
한편, '풍납토성 사적지 및 환경대책위원회' 주최로 오는 7월2일 오후 2시 서울 중구 세종대로 한국프레스센터 19층 기자회견장에서 열리는 '서울 풍납토성 백제왕성 심포지엄'에서는 '풍납토성은 백제왕성인가?' 여부를 놓고 다양한 의견이 제시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