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빅3' 안일함으로 선제적 구조조정 시기 놓쳐
  • 불황 무풍지대로 불렸던 국내 대형조선사에 대규모 감원바람이 몰아치고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선박발주 자체가 크게 줄은데다, '황금알 낳는 거위'로 통하던 해양플랜트 사업에서 각종 부실이 생겨 '조(兆)'단위의 천문학적 적자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이에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 등 업체들은 앞다퉈 인력감축, 조직슬림화, 비핵심자산 매각 등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IMF 사태도 빗겨갔던 조선사들의 인적 구조조정이 워낙 급격히 진행되는 탓에 조직 내 혼란, 긴장감은 커져만 가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위기의식 부재가 불러온 참담한 결과"라고 입을 모은다. 사실 대형조선사들의 구조조정 필요성은 한창 호황이던 시절부터 꾸준히 제기돼왔다. 타업종 대비 높은 근속연수, 고연봉, 항아리형 인력구조 등이 향후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그러나 '글로벌 조선 빅3'라는 타이틀에 안주해 선제적 조직 정비에 나서지 못했던 것이 지금의 대규모 구조조정으로 연결됐다는 지적이다.

    12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대형 조선3사는 임원 및 고참급 직원에 대한 감축작업을 이미 마쳤거나, 진행 직전에 있다. 이들 업체가 동시다발적으로 대규모 인력조정을 실시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먼저 지난 2분기 3조원이 넘는 대형 적자를 기록한 대우조선은 이달 내로 조직슬림화, 자원재배치 등 질적 구조조정을 단행하는 동시에 임원 숫자의 30%를 감축한다. 또 부장급 이상 직원 1300여명을 대상으로 희망퇴직 및 권고사직 등도 조만간 시행할 계획이다.

    대우조선 전체 근로자 1만3000여명 중 사무직원의 숫자는 약 6000여명 수준으로 알려졌다. 부장, 전문위원, 수석위원 등 최고참급 직원들의 숫자가 전체의 25% 가까이를 차지하는 '역피라미드형 인력구조' 또한 개선할 부분이라고 대우조선 경영진은 판단한 것이다. 특히 1050여명의 부장들 중 별다른 보직이 없는 인원만도 800명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올 2분기 1조5000억원의 적자를 기록한 삼성중공업 또한 임원감축을 공식 예고했고, 조만간 직원대상 희망퇴직이 이어질 것이란 풍문이 나돈다. 지난해 3조2000억원의 적자를 쏟아낸 현대중공업의 경우 인력조정을 이미 완료했다. 임원 수의 31%를 줄였고, 과장급 이상 사무직원 1300여명이 희망퇴직을 통해 회사를 떠났다.

    이들 업체도 대우조선과 같이 역피라미드 인력구조의 비효율성이 경영쇄신에 저해된다고 보고 이같은 결정을 내렸던 것으로 보인다. 실무자는 적고 관리자는 과도한 인력구조 불균형 개선과 이로 인한 승진적체 해소를 위해서는 인력조정이 불가피하다는 설명이다.

    대형조선사들의 이같은 구조조정에 업계 관계자는 "1970년대 정부의 중화학공업 육성 정책에 힘입어 대형조선사들이 잇달아 설립됐고, 2000년대 까지 고속성장과 동시에 해마다 많은 인력을 뽑아왔다"면서 "IMF 사태 때도 별다른 구조조정이 없을 정도로 고용 또한 안정됐었는데, 시간이 흐르며 정년은 연장되는 반면 신규채용은 상대적으로 줄어간 것이 이같은 문제를 불러왔다"고 전했다.

    당장 대우조선의 경우만 봐도 2012년, 2013년 400여명 수준으로 유지하던 신규 사무직 채용인원을 지난해 약 220명으로 줄인 상황이다.

    이어 그는 "조선업은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기점으로 정점을 찍고 내려오는 국면인데, 당시만 하더라도 4년치 이상의 일감을 확보하고 있는 등 미래에 대한 위기의식이 부재했다"며 "선제적인 조직정비의 시기를 놓친 것이 지금의 대규모 구조조정으로 귀결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 번에 대규모 인력조정이 진행되는 만큼 사무직 노조 설립 등 조직원들의 집단반발도 우려되는 상황이다. 실제 현대중공업의 경우도 희망퇴직을 거부한 인원 40여명이 창사 이래 최초 사무직 노조를 만들어 사측에 대응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