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사 요청 3개월째…금융당국 '묵묵부답'현대證 임시주총도 미뤄지고 향후 일정 안갯속
  • 현대증권의 대주주 적격성 심사가 또 연기됐다. 지난 7월 1일 오릭스그룹이 금융당국에 대주주 적격성심사를 신청한 이후 3개월이 지났지만 당국은 여전히 응답하지 않고 있다. 현대증권의 새 주인에 대한 금융당국의 심사가 계속해서 지연됨에 따라 업계의 의구심은 커지고 있다.


    24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전일(23일) 열린 금융위원회의 증권선물위원회에서 현대증권 대주주 적격성심사건은 안건으로 올라가지 않았다. 위원회가 열리기 이전까지 안건은 공개하지 않는 것이 금융위의 규정이지만 23일 부터 증선위 안건으로 오르지 못했다는 내용이 나오기 시작했고, 실제로 현대증권과 오릭스에 대한 내용은 언급되지 않았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아직 관련 서류에 대한 검토가 마무리되지 않았으며, 해당 내용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확실한 문제가 있어 심사가 미뤄지고 있다는 점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반면 통상적인 대주주 적격성 심사에 걸리는 기간이 1달 가량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오릭스의 현대증권 인수에 문제점이 발견된 것이 아니냐는 의문에 힘이 실릴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조성되고 있다.


    이미 현대증권측은 새 주인 오릭스와 함께 회사를 꾸려갈 이사진을 선임할 임시 주주총회 준비도 일찌감치 끝마친 상황이지만 증선위가 안건 자체를 올리지 않고 있어 임시주총 역시 계속해서 미루고 있다.


    지난 10일 현대증권은 임시 이사회를 열고 새 이사진을 선임할 임시 주주총회 날짜를 16일에서 내달 12일로 연기했다고 공시했다. 당시 현대증권의 임시 주주총회 연기는 두 번째로, 당초 오릭스는 지난달 24일 임시 주주총회를 통해 김기범 전 대우증권 사장 등의 경영진 선임을 확정하려 했지만 대주주 적격 심사가 지연되면서 16일로 연기한 바 있다.


    하지만 23일에도 증선위의 대주주 적격 심사가 안건 자체로 올라오지 못하게 되면서 내달 12일 예정된 현대증권의 임시주총 역시 개최 의미를 잃게 됐다. 현대증권의 임시주총은 오릭스에 대한 금융당국의 대주주 변경 승인을 전제로 신임 경영진의 선임이 목적이다.


    결국 업계에서는 이미 수 차례 제기돼 왔던 '파킹딜'(지분 매각 이후 일정 기간이 지나 다시 되사오는 거래)에 대한 의혹을 다시 꺼내고 있다. 현대증권이 오릭스와 사실상 대출이나 다름없는 계약이라는 것.


    현대증권이나 오릭스 측은 이미 파킹딜 논란에 대해 부인했고, 금융위 측에서도 심사 지연에 대한 부분이 파킹딜 때문은 아니라고 거듭 밝히고 있다.


    그러나 현대그룹이 현대증권 보유를 지속하기 위해 파는 모양새만 취하고 실제로는 현대증권을 매각하지 않는 것이라는 의문은 꾸준하게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이 문제는 국정감사에서도 제기됐다.


    지난 15일 김기식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3년 내 팔면 우선매수권을 청구할 수 있고 5년 경과시에는 콜옵션(조기매수청구권)이 붙어있어, 현대상선이 콜옵션 조건으로 오릭스 PEF에 참여해 일시적으로 지분을 파킹시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현대증권 지분 22.6%에 대한 대금 6600억원 중 오릭스PE가 투자한 자기자본은 1300억원에 불과하다는 점을 문제삼았다.


    또 "현대증권 주가가 1만9000원을 넘어가면 콜옵션을 행사해 지분을 되사는 조건인데, 현대증권 주가는 최근 5년 동안 이 가격에 도달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가능성이 없을 것"이라며 "현대그룹 지배권의 유지를 위해 파는 모양새만 취하고 실제로는 팔지 않는 파킹딜로 적격성 심사를 엄격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진웅섭 금감원장이 "현대증권의 파킹딜 논란을 인지하고 있으며, 이 문제와 관련해 면밀히 검토하고 있다"고 답하며 파킹딜에 대한 의혹은 더욱 커지게 됐다.

    파킹딜 논란과 관련해 오릭스 측은 "금감원에서도 검토 초기부터 심도있게 모든 계약서 및 여러가지 의견서를 검토한 끝에 이미 파킹딜이 아닌 것으로 결론을 낸 것으로 알고 있다"며 "파킹딜에 대한 검토는 금감원 입장에서 매우 중요한 이슈이기 때문에 검토 초반에 상당히 많은 공을 들였고 결론이 난지도 한참 지났음에도 아직까지 논란이 되고 있는 점이 안타깝다"고 밝히며 금융위의 증선위 일정지연은 파킹딜 의혹과 무관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종걸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는 일본계 자금의 금융권 진출에 대해서도 강력한 반대 입장을 나타내고 있다.


    이 대표는 "일본에서는 대부업체가 증권사를 인수한다는 것은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며 "현대증권 매각은 특혜성"이라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해 오릭스 측은 "기업을 상대로 한 여신 업무만 영위하고 있을 뿐, 개인을 상대로 한 여신은 전혀 하지 않고 있다"며 "오릭스 및 오릭스 그룹의 어떠한 회사도 일본의 대부업체에 해당하는 회사는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일본계 자금이 자국 규제를 피해 한국시장으로 눈을 돌려 시장을 장악하며 저축은행에 이어 국내 굴지의 증권사까지 인수하게 될 경우 한국의 금융영토 침범이 가속화될 것이라는 부정적인 여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오릭스가 현대증권을 인수하면 현대저축은행, 현대자산운용까지 인수하게 되는 것으로, IB(투자은행)업계에서 순식간에 힘을 갖운 금융그룹이 된다"며 "시중은행을 제외한 2금융권 부터는 사실상 일본 등 해외발 자금에 영토를 내주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현대증권의 매각작업은 시간이 지날수록 인수 과정에 있어 부정적인 여론이 우세하고, 인수 이후 전망 역시 희망보다는 우려가 높아지면서 향후 결과에 따른 책임의 키를 쥐고 있는 금융당국 역시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현재도 현대증권의 대주주 적격성에 대한 국회발 비판은 지속되고 있어 금융당국의 고민은 깊어질 수 밖에 없다. 이에 따라 "서류검토가 늦어지고 있다"는 당국의 되풀이되는 해명 역시 힘을 잃어가는 모양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일본계 자금의 '한국 공습'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극에 달해 있고 이와 맞물려 파킹딜 의혹도 끊이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금융당국이 인수를 승인했다가 어느 순간 역풍을 맞을지 모른다는 공포심도 결정을 미루는 요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10월 중 증선위는 두차례 계획돼 있다. 금융위 관계자는 "통상적으로 2주에 한번씩 증선위가 열리는 점을 감안하면 10월 7일과 21일을 전후해 개최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현대증권의 대주주 적격성심사 역시 다음 증선위를 기다릴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맞게 됐다.


    일각에서는 국정감사가 마무리 되고 여론이 가라앉은 이후 최종적인 결정이 내려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