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릭스, '일본계 자금' 거부감만 남기고 퇴장, 향후 국내 사업확장도 차질 전망현대證, 한순간 주인 잃은 신세 전락…내년 계획 수립 등 표류 불가피현대그룹, 현대증권 매각 통한 재무구조 개선 차질
  • 일본 오릭스가 현대증권 인수를 포기함에 따라 새 주인이 될 준비를 하던 오릭스와 새 주인을 기다리던 현대증권, 매각을 통해 자금난 해소를 노리던 현대그룹(현대상선) 모두 상처만 남게 됐다.

     

    지난 1월 30일 오릭스 프라이빗에쿼티(PE)가 현대증권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지 약 9개월 만에 현대증권 매각은 원점으로 돌아가게 된 것.

     
    20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지난 19일 오릭스그룹은 현대증권 주식 인수계약 종결기한 종료로 인한 계약 연장 여부를 논의한 결과 인수작업을 중단하고, 현대그룹 측에 계약 해제를 통보했다.

     

    현대증권 매각 주체인 현대상선 역시 전일 오릭스와의 거래종결이 이뤄지지 못해 지난 6월 체결한 주식매매계약이 효력을 상실했다고 공시했다.


    이르면 8월 중 결정날 것으로 예상됐던 오릭스의 현대증권 인수가 계속해서 지연된 끝에 결국 '없던 일'로 끝나게 됐다.

     

    결국 이번 매각작업 무산으로 인수 주체인 오릭스, 인수 대상인 현대증권, 매각 주체인 현대그룹 모두 타격을 입게 됐다.

     

    우선 현대증권 인수를 통해 한국 금융영토 확장을 노렸던 오릭스는 당분간 국내 증권업은 비롯해 타 금융권 업무영역 확장에도 제동이 걸릴 가능성이 높아졌다.


    자신들의 의지를 떠나 9개월 동안 진행했던 인수전이 불발됨에 따라 이미지에 오점을 남기게 됐고, '일본계 자금'이라는 부정적 이미지만 남게 됐다. 오릭스는 대부업을 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같은 논란이 불거진 상태에서 현대증권 인수작업에서 중도 하차함에 따라 향후 국내 사업영역 확장을 추진할 시 걸림돌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지분 매각 이후 일정 기간이 지나 다시 되사오는 거래를 말하는 '파킹딜'논란도 오릭스를 괴롭혀왔다. 금융당국과 현대그룹, 오릭스 모두 파킹딜 논란을 부인했지만 파킹딜 이슈는 국정감사 기간과 맞물려 정치 이슈로 번지며 오릭스에 대한 여론악화에 정점을 찍었다.

    오릭스측은 '현대증권 주식매매계약 해제 관련 공식 입장'을 통해 "사실과 다른 부분이 왜곡돼 보도돼온 바, 본건 거래 클로징 이후에도 일본계 기업의 한국 증권사 인수에 대한 악의적이고 배타적인 비난여론으로 인해 악영향이 있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완전히 종식시킬 수 없었다"고 밝혔다.


    현대증권은 주인을 잃었다. 이에 따라 경영공백이 불가피하게 됐고, 직원들만 불안에 처하게 됐다.


    업계 한 관계자는 현재 현대증권의 상황에 대해 "이미 팔겠다고 결심한 주인(현대상선)은 마음이 떠났고, 사기로 했던 새 주인(오릭스)은 현대증권을 포기한 상황에서 당분간은 주인 잃은 미아 신세가 될 것"이라고 표현했다.


    실제로 현대증권은 지난 6월 김기범 전 대우증권사장이 현대증권 신임 대표에 내정된 이후 기존 경영진은 자연스럽게 실질적인 경영 및 사업에서 손을 떼기 시작해 현재는 이미 사실상 CEO 공백 상태를 보내고 있다.


    임기 만료 시한만 기다리고 있는 윤경은 사장이 새로운 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입장도 아니고, 김기범 사장 역시 공식적으로 주총과 이사회 승인이 이뤄지지 못한 상황에서 업무지시는 물론 보고 역시 자유롭게 받지 못해 시간만 보내왔다.


    내년 사업계획을 수립해야 할 4분기를 보내고 있는 상황에서 새 주인만을 기다려왔던 현대증권은 순식간에 주인을 잃고 표류할 처지에 놓이게 됐다.


    금융당국과 증권업계 모두 현재 KDB대우증권 인수전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또 다른 주인 찾기에도 물리적 시간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와 관련해 현대증권 측은 "회사는 시스템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임직원들은 평소대로 업무를 하면 된다"며 "오릭스가 손을 떼기로 했다는 소식이 나왔지만 큰 동요는 없다"고 말했다. 또 "윤경은 현 대표는 현재도 업무를 수행하고 있으며 현재 체제가 유지될 것"이라고 말했다.


    재무구조 자구안 이행이 시급한 현대그룹도 비상이 걸렸다. 오릭스 측이 지난 19일 돌연 현대증권 인수 포기를 선언했기 때문에 현대로서는 뚜렷한 대안이 없다.


    지난 2013년 12월 3조3000억원 규모의 자구안을 발표하고 자산 매각을 진행해 온 현대그룹은 마지막 자구안으로 현대증권 주식(22.56%)을 오릭스에 6475억원에 매각키로 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이 중 산업은행 대출 상환과, 현대상선이 후순위 출자한 금액에 돌리고 남은 금액은 약 2500억원 가량으로 현대그룹 자금수혈에 꼭 필요한 금액이었다.


    업계는 현대그룹이 현대증권을 당장 팔지 못한다고 해서 재무구조에 곧바로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현대상선의 적자가 지속돼 영업실적 회복이 늦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자구안 계획달성은 어려워지고 있다. 해운시장 침체로 3분기 실적에 대한 기대감도 이미 사라졌다.


    이에 따라 현대그룹은 산업은행과 후속 자구안 등 대책 마련에 나서는 한편 현대상선은 만기가 정해지지 않고, 투자자에게 이자만 지급하는 채권인 영구채를 3000억원 규모로 발행할 계획이다. 다만 최근 들어 주요 기업들이 회사채 발행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현대상선의 영구채 발행이 성공적으로 진행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현대증권 매각이 무산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전일 현대상선 주가는 전 거래일 대비 7.07% 하락한 7230원에 거래를 마감했다.

    현대그룹 관계자는 "최근 현대상선이 1500억원 규모의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발행했고, 현대증권 매각 실패로 산업은행에 빌린 돈을 갚기 위해 영구채 발행도 추진 중인 상황으로, 자구안의 90% 이상을 달성한 상태"라며 "업계의 우려 만큼 그룹 재무구조 개선에 큰 차질을 빚고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투자자들의 손실도 커지고 있다. 지난 4월 주당 1만2350원을 찍었던(장중, 4월16일) 현대증권 주가는 19일 7560원으로 거래를 마치며 6개월 여 만에 40%에 이르는 하락세를 보였다. 매각이슈에 기대감을 갖고 있던 투자자들은 주가가 하락한 만큼 불안감도 높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