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 조차 희미했던 1993년, 'S/W 인재육성 천명'... "세상의 흐름 20년 전 이미 꿰뚫어"조동근 교수 "제조업에서 소프트웨어로…이 회장 혜안 글로벌 삼성 키워내"
  • ▲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뉴데일리경제DB.
    ▲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뉴데일리경제DB.


    20년 전 소프트웨어(SW) 역량 강화를 주문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선견지명(先見之明)이 흙 속의 진주처럼 빛나고 있다.

    지금은 시간이 워낙 많이 흐른데다 이 회장의 이뤄낸 수많은 업적들에 뭍혀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지만 그는 삼성에 소프트웨어라는 씨앗을 처음 뿌린 장본인이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1일 "소프트웨어에 대한 개념조차 희미한 1993년, 이건희 회장은 관련 엔지니어 육성을 천명했다"면서 "세상의 흐름을 20년 전에 이미 꿰뚫어본 셈"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90년대 초반을 뒤흔든 여러 화젯거리 중에서 소프트웨어는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주제가 아니었다. 제조업 혁신을 구호로 내걸고 바쁘게 공장을 돌리는 데만 혈안이 돼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분위기 탓에 이 회장의 선경지명 역시 큰 공감대를 얻진 못했다. 하지만 이 회장의 식견이 옳았다. 현재 소프트웨어가 모든 산업을 빨아드리는 블랙홀처럼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 교수는 "중국의 성장으로 제조업의 미래는 한없이 어두운 실정"이라면서 "반면 소프트웨어는 여러 플랫폼들과 엮어 엄청난 고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신산업"이라고 설명했다.

    제조업의 위기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아무리 좋은 제품과 디자인을 개발해도 일부 중국 기업의 베끼기에는 당해낼 도리가 없는 상황이다. 중국이 손을 뻗치면 기를 펴지 못하는 게 우리 제조업의 현주소다.

    결국 제조업에서 소프트웨어로 무게 중심을 이동시키려 했던 이 회장의 예상이 그대로 맞아떨어진 것이다. 삼성도 이 회장의 지시를 받들어 발 빠르게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

    지난해 기준 삼성에는 모두 4만여명의 소프트웨어 기술자들이 일하고 있다. 국내에 2만1000명, 해외에 1만9000명이 근무를 서고 있다. 삼성전자의 소프트웨어 혁신에 밑거름 역할을 할 서울 우면동 R&D 캠퍼스도 지난달 말 문을 연 상태다.

    조 교수는 "이 회장의 말을 되새긴 삼성이 소프트웨어 중심의 플랫폼사업에 힘을 주고 있다"면서 "스마트폰이라는 플랫폼 위에 삼성페이와 같은 소프트웨어를 결합시킨 것처럼 비슷한 시도들이 앞으로도 더 많이 이뤄져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밖에도 이 회장의 미래를 내다보는 통찰력은 두고두고 회자되고 있다. 급성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병원에 입원한 지 500일이 넘었지만 사업의 진수를 보여준 그의 행보는 여전히 경영자들의 교과서로 쓰이고 있다.

    이건희 회장은 지난 1993년 6월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핵심 경영진 200여명을 긴급 소집, 신경영을 선언했다. 당시 이 회장은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꾸라"는 어록을 남겼다.

    양보다는 질적 성장을 강조한 신경영 선언은 23년이 지난 지금까지 삼성을 글로벌 IT 기업의 강자로 이끄는 주춧돌로 남아있다. 이 회장 취임 28주년인 1일을 맞아 그의 혜안을 하나씩 곱씹어 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