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그룹이 오해에서 비롯된 해묵은 '등기이사 등재 논란'을 털어내고 지배구조 세계화에 나선다.
삼성그룹은 11일 삼성전자와 삼성물산, 삼성SDS, 제일기획, 호텔 신라 등 모두 11개 계열사들이 일제히 주주총회를 연다고 밝혔다.
삼성그룹의 계열사들은 이번 주주총회에서 정관을 일부 고쳐 그동안 대표이사가 맡아왔던 이사회 의장의 자격을 등기 이사로 확대할 예정이다.
이미 대표이사와 이사회 의장을 분리한 삼성생명 등 금융계열사들도 이사회 의장 자격을 사외이사로 넓힐 계획이다.
이사회의 독립성을 높이고 경영에 주주 목소리가 더 많이 반영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취지다.
특히 OECD(경제협력개발기구)가 제시한 '기업 지배구조 권고안'을 따른다는 의미도 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권고안에 따르면 이사회 의장은 회사 최고 경영자(CEO)에 오를 수 없다.
CEO가 의장을 겸하면 본인이 결정한 경영 판단을 스스로 평가해야 하는 부작용이 뒤따를 수 있다는 게 OECD의 판단이다. 다만 권고안이다 보니 강제성은 없다.
국내 기업 대부분은 이 권고안을 따르지 않고 있다. 권고안과 같은 지배구조가 기업 실적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가 아직 진행된 바 없기 때문이다.
전삼현 숭실대 법학과 교수는 "국내 기업 가운데 의장 자격에 사외이사까지 포함시키도록 이사회 규정을 손질 한 것은 삼성이 처음일 것"이라며 "지배구조 선진화 차원에서 다른 기업에 모범이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
이와 함께 삼성그룹은 주주총회 때마다 불거지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등기이사 등재 문제에서도 한결 자유로워질 전망이다.
일각에서는 이 부회장이 등기이사에 오르지 않는 까닭에 대해 '책임 경영을 회피한다', '연봉 공개를 꺼린다'는 식으로 흠집을 내왔다.
하지만 이 같은 주장과 달리 등기이사와 책임 경영 사이에는 사실상 밀접한 상관관계가 없다. 이 부회장은 등기이사 여부와 무관하게 상법에 따라 등기이사와 같은 경영상 책임을 진다.
다른 재벌가 오너들 역시 등기이사에 오르지 않더라도 실질주의 원칙에 따라 경영상 책임을 모두 떠안게 된다.
연봉 공개의 경우도 최근 등기이사가 아니더라도 5억원 이상의 보수를 받는 임원에 대한 보수공개를 의무화하는 자본시장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더 이상 잡음을 낼 수 없게 됐다.
최준선 성균관대 로스쿨 교수는 "등기이사가 돼야만 책임 경영이 가능하다는 논리는 법적으로 성립되지 않는다"며 "더욱이 삼성처럼 복수의 계열사가 있다면 모든 곳에 등기이사로 등재할 수 없는 등 한계가 따를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