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자리 채워 준 동료 처우, 휴직자와 똑같이 처리하면 더 큰 불만 쏟아져""실제 현장서 억울하게 여기는 경우 드문데...외부서 긁어 부스럼"
  • ▲ 해당 사진은 기사와 무관합니다. ⓒLG유플러스.
    ▲ 해당 사진은 기사와 무관합니다. ⓒLG유플러스.


    국내 한 대기업에 다니는 인사팀장은 최근 기자와의 저녁 자리에서 "어젯밤 내내 잠을 설쳤다"며 운을 뗐다.

    "무슨 걱정이 있냐"는 질문에 그는 "회사에 육아휴직 신청자가 있는데, 내일 이 직원에게 인사상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는 내용의 서약서를 받아야 한다"고 걱정했다.

    그는 "축하를 해줘도 모자랄 판에,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한다는 게 그리 쉽지만은 않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회사에 계속 남아 있는 직원들을 생각하면 서약서를 받지 않을 수도 없는 처지라고 하소연했다.

    육아휴직 기간 동안 빈자리를 메운 동료들의 처우를 휴직자와 똑같이 처리할 경우 오히려 더 큰 불만이 쏟아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남녀고용평등법 10조에 따르면 교육과 배치, 승진 등을 결정할 때 남녀를 차별해선 안 된다. 근로기준법 6조도 남녀의 성을 이유로 차별 대우를 하지 못하도록 규정했다.

    현재 만 8세 이하 자녀를 둔 근로자는 남성, 여성 모두 최대 1년까지 육아휴직을 쓸 수 있다. 최근 관련 법이 개정돼 임신만 해도 육아휴직이 가능하다.

    한마디로 현행법은 육아휴직 제도를 눈치 보지 말고 무조건 이용하라는 식이다.

    법이 아니어도 국가적 위기로 다가온 저출산 문제를 해소해야 한다는 거대 명분을 고려하면 반대 목소리를 낼 이유가 없어 보인다.

    그런데 뒷맛이 개운치 않다. 휴직계를 낸 동료 몫까지 일한 직원들의 불평을 나쁘게 만 볼 수도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역기능을 계산하지 않은 채 순기능에만 초점을 맞춰 설계된 육아휴직 제도가 직원들 사이 이질감을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직장인 신모씨(38세·남)는 "입사 동기인 여직원이 1년간 육아휴직을 다녀왔는데, 이 기간에 배 가까이 더 일했다"며 "동기라고 해도 복귀 후 같은 처후를 받는다면 명백한 역차별"이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직원 역시 "육아휴직을 낸 사람도 큰 틀에선 근로자"라며 "경력 단절이 일어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 때문에, 이에 따른 불이익은 감수하는 게 맞다"고 주장했다.

    결국 상당수 회사들은 역차별을 걱정하는 직원들을 위해 '불이익 감수' 서약서를 육아휴직자들에게 내밀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

    이런 가운데 최근 한 종편이 나서 '노-노' 간 갈등을 더욱 부추겼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 계열사가 육아휴직 신청 직원들에게 '(경력 단절에 따른) 불이익을 감수하라'는 내용의 각서를 수년간 종용해왔다고 보도한 것이다.

    마치 회사가 직원들을 상대로 이른바 '갑질'을 행사한 것처럼 사건을 부정적으로 묘사했다.

    하지만 당시 보도와 달리 기업 내 현장 상황은 완전 딴판이다. 오히려 육아휴직에 따른 순기능보다 역기능으로 인한 갈등의 골이 더욱 깊어지는 모양새다.

    B기업 홍보팀 한 관계자는 "팀 내 여직원이 3명인데, 돌아가며 육아휴직을 내면서 3년째 동료들이 업무를 나눠 처리하고 있다"면서 "사람을 뽑으면 되는 것 아니냐고들 쉽게 이야기 하지만, 다시 돌아올 직원이 있는 자리에는 그 어느 회사도 직원 충원을 신청할 수 없다"고 하소연했다.

    이어 그는 "육아휴직으로 1년의 공백이 생겼다면, 당연히 1년의 경력이 줄어든다"며 "이는 사회적 합의로 강제할 수 있는 게 아닌 자연스러운 현상인 만큼, 불이익을 줬다는 인식 자체를 가져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서울 시내 한 노무사는 "갈수록 
    육아휴직을 다녀오는 비율이 높아지고 있고, 그 기간 동안 경력 단절 문제에 대해서도 서로가 암묵적으로 인정하는 분위기"라며 "실제 현장에서는 억울하게 여기는 경우가 드문데도, 언론 등 외부에서 '긁어 부스럼'을 만드는 것 같다"고 아쉬워했다.

    그는 또 "이 같은 보도가 되레 육아휴직자와 남아 있는 동료 간 갈등을 조장할 수 있다"며 "육아휴직의 역기능 문제는 우리 사회가 함께 풀어야 할 숙제"라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