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협, 고용 세습도 모자라 정치시위까지 인정… 근로자 권익 향상은 이미 '뒷전'바른사회 "경영권 침해·노조 기득권·과다 복지 내려놔야 노동개혁 가능" 지적
-
-
-
-
▲ 해당 사진은 기사와 무관합니다. ⓒ뉴데일리.
현대판 음서 제도로 불리는 '고용 세습'도 모자라, '정치 시위'에 참여해도 회사에 근무를 한 것으로 인정해 주는 황당한 회사가 있어 빈축을 사고 있다.
부모는 물론 고모와 고모부가 사망할 경우, 1년 뒤 휴가를 주기도 한다. 사회 통념에 비춰볼 때 과도한 복지 혜택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29일 국내 대기업 소속 A노동조합(노조)의 단체협약 문서에 따르면, 노조는 회사와 합의를 거쳐 근무시간 중에도 이른바 '노조활동'을 벌일 수 있다. 이때 회사는 직원이 자리를 비운 시간에 대해 정상적으로 근무한 것과 같은 처우를 보장해야 한다.
단체협약은 노조와 사용자(회사)가 체결하는 자치적 노동법규를 말한다. 문제는 단체협약에서 정한 노조의 활동 범위가 지나치게 넓다는 점이다.
A노조의 단체협약은 '상급단체 회의나 각종 사회기관이 진행하는 행사'에 참가해도 근무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적시했다.
노조는 크게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으로 나뉜다. 이들 양대 노총은 산업별로 노조를 한 데 묶어 산별노조라는 조직을 산하에 두고 있다. 각 기업별 노조는 산별노조 아래 지회라는 이름으로 하부조직을 이룬다.
A노조의 상급단체라고 하면 한국·민주노총 또는 산별노조가 된다. 즉 A노조에 가입한 노조원은 단체협약에 따라 민주노총과 산별노조가 주관하는 집회나 시위에 나가더라도 회사일을 본 것처럼 인정받을 수 있다.
단체협약 속 '각종 사회기관의 행사'라는 문구도 논란거리다. 사회기관이라는 두루뭉술한 표현 탓에, 노조원들이 정치 시위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이 열렸기 때문이다.
결국 단체협약이 회사일과 무관하고, 노조의 기본 목표인 근로자 권익 향상과도 동떨어진 활동을 부추기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노조의 정치·사회 활동은 아직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부분이다. 이런 가운데 단체협약의 이 같은 조항은 사회 갈등만 일으킬 수 있다.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최근 민주노총 사무실을 찾아 "노조가 사회문제에 너무 집착하면 근로자 권익 보호는 상당히 소외될 수 있다"고 우려한 바 있다.
한술 더 떠 A노조는 유례없는 복지제도도 만들었다.
부모와 배우자에 더해 배우자 부모 사망 1주기에도 휴가를 이틀씩 주도록 한 것이다. 더구나 고모와 고모부,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사망한 지 1년이 되는 날에도 하루씩 휴가를 쓸 수 있도록 했다.
청원휴가라고 해서 개인 연차에서도 삭감되지 않는다. 이 회사 직원 외 대다수 직장인에게는 생소한 제도다.
특히 이 회사는 말 많고 탈 많았던 '고용 세습' 조항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직원을 신규로 채용할 때 정년퇴직자와 장기근속자, 재직 중 사망자, 업무상 재해나 개인 신병으로 불가피하게 퇴직한 노조원의 직계가족을 우선 뽑도록 하는 내용이다.
노조의 기득권 유지 장치도 단체협약에 들어있다.
노조를 여러 개 둘 수 있다는 의미의 '복수노조'를 허용한 노동법을 어기고, 자신들이 속한 노조만 인정해야 한다는 식의 불법 조항을 포함시킨 것이다. 근로자의 노조 선택권을 박탈했다고 해석할 수 있다.
회사가 노조 간부를 다른 부서로 배치할 때도, 노조의 협의와 노조 간부 본의 허락을 받도록 하는 등 인사권까지 깊숙이 간여하고 있다. A노조의 단체협약은 다음달 31일까지 유효하다.
박주희 바른사회시민회의 실장은 "노조의 기득권 유지에 활용되는 단체협약이 존재하는 한 진정한 노동개혁은 어려울 것"이라며 "경영권 침해나 과다 복지 조항의 경우 기업의 신규 채용까지 막을 수 있다"고 염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