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업 2强 재편 대수술 예고됐으나…'맹탕' 경제 챙길 사람도 콘트롤타워도 부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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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한 각오로 한계기업의 과감한 구조조정이 필요하다."2015년 10월 7일.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경제자문회의에서 처음으로 구조조정을 언급했다. 이 발언 이후 철강, 조선 등 구조적 불황을 겪는 업종에 대해 정부 주도의 구조조정이 이뤄질 것이란 관측이 나왔다.특히 조선 빅3(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가 산업 재편으로 현 정권 내에서 정상화될 것이라는 기대감도 터져나왔다.◇ 산업 구조조정 1년 기다렸건만정확히 1년 뒤인 지난달 31일 발표된 조선업 경쟁력 강화방안은 '구조조정'으로 보기 힘들다.핵심 현안으로 꼽혔던 조선 빅3 체제 개편 내용은 발표에 쏙 빠졌다. 대우조선해양을 공공 발주 등으로 살아 남겨 향후 민영화를 시킨다는 계획만 포함됐다. 민영화 시기와 같은 구체적인 로드맵도 제시하지 못했다.정부는 수주절벽에 대응하기 위해 2020년까지 250척 이상, 11조원 규모의 공공발주를 추진한다고 밝혔다. 공공선박 발주로 대우조선의 생명을 연장하고, 사업 재편은 인력감축으로 갈음했다.정부안이 발표되자 구조조정안이 각 조선사가 채권단에게 제출한 '자구안'에도 못미친다는 평가가 나왔다.정치권에서는 "밑 빠진 독에 또 물을 붓겠다는 것", "근본적 대책없이 정부의 자금지원에 의존한 방안을 내놨다" 등의 지적이 쏟아졌다.논란이 확대되자 이튿날 대우조선해양의 채권단인 산업은행 이동걸 회장은 기자간담회를 자청 "대우조선해양을 정리하는 것은 더 큰 사회적 비용을 초래할 수 있다"면서 "법정관리로 갈 때 57조~60조의 비용이 들 것"이라고 했다.즉 정부와 채권단이 대우조선 구조조정을 어정쩡한 미봉책으로 끝맺은 데는 대우조선 퇴출이 몰고 올 실업대란과 사회적 비판을 의식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최순실 파문에 힘잃은 정부정부는 구조조정에 관해 1년 넘게 논의를 진행해 왔으나 뚜렷한 대책은 내놓지 못하고 이 문제를 차기 정부로 떠넘기게 됐다.이를 두고 김성식 국민의당 정책위의장은 "경제부처가 내 임기 중에만 터지지 말라는 심정으로 폭탄 돌리기를 하는 것이나 다른없다"고 했다.정부가 이처럼 무기력한 구조조정 대책을 내놓은 데는 최순실 파문에 따른 정책 동력 약화도 한몫 한 것으로 보인다.한 정부 인사는 "당초 구조조정이 2강(强) 체제로 재편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대세였는데 어느 순간 대우조선과 함께 가는 쪽으로 기울었다"고 말했다.덩치가 큰 대형 조선사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빅딜을 단행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주도권을 쥐고 산업 재편을 진두지휘 해야하는데 그럴 만한 힘도, 시간도 없어진 상황이다.박 대통령은 올해를 구조조정을 위한 골든타임이라고 수차례 언급해왔다. 내년부터는 대선 정국이 펼쳐져 사실상 정부 주도의 산업 구조조정이나 핵심 정책을 추진하기 어렵다.하지만 최순실 파문으로 대통령의 리더십은 붕괴됐고 레임덕은 턱밑까지 쫓아왔다. 빨라진 대선시계는 현 정부의 정책 추진을 가로막고 서 있다.한 정부 관계자는 "구조조정은 시장이 믿고 따를 수 있는 책임있는 주체가 나서 각 단계별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야한다"면서 "그 역할을 지금 정부가 할 수 있겠느냐"고 했다.박근혜 대통령은 2일 경제부총리로 구조조정 전문가인 임종룡 금융위원장을 내정했지만 현 정부 내 추가적인 구조조정안 발표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