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대림, 각자 장점 내세워 최장 현수교 프로젝트 수주"기업간·민관 협력 모색, 연간 해외수주 긍정적"
  • ▲ 쌍용건설과 현대건설이 지난해 수주한 싱가포르 도심지하철 TEL308공구 조감도. ⓒ쌍용건설
    ▲ 쌍용건설과 현대건설이 지난해 수주한 싱가포르 도심지하철 TEL308공구 조감도. ⓒ쌍용건설


    건설업계가 컨소시엄 카드를 앞세워 수주절벽을 겪고 있는 해외사업 불황 극복에 나서고 있다. 한 때 저가수주로 '제 살 깎기'식 과당경쟁을 펼쳤던 업계가 손을 맞잡으면서 국제유가 반등과 함께 수주시장 분위기도 개선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7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SK건설과 대림산업 컨소는 총 사업비 3조5000억원 규모 터키 다르다넬스해협 현수교(차나칼레 현수교) 프로젝트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본 프로젝트는 터키 차나칼레주 랍세키와 겔리볼루를 연결하는 다리를 짓는 사업이다. 주탑간 거리가 2023m로, 완공시 일본 고베 아카시대교(1991m)를 제치고 세계에서 가장 긴 현수교가 된다.

    수주전에는 한국·일본·이탈리아·터키 등의 기업이 결성한 4개 컨소가 뛰어들어 경쟁을 펼쳤다. 특히 일본 아베 총리는 '영업팀장'을 자처하며 수주 지원활동을 펼쳤다. 2013년과 2015년 터키를 방문하고, 지난해 뉴욕 유엔회의 때는 양국 정상회담을 갖고 총력전을 펼쳤다. 입찰 마감 직전에는 이시이 국토교통상을 현지로 급파, 수주활동을 전폭 지원하기도 했다.

    SK건설이 이스탄불 유라시아 해저터널을 건설하면서 구축한 현지 네트워크와 대림산업이 이순신대교 공사 때 쌓은 시공능력이 시너지 효과를 낸 것이 수주 성공 비결로 꼽힌다. 또 짧은 양허기간(교량사업 운영기간)도 비교우위에 있었다. SK-대림 컨소가 제시한 양허기간은 194개월로, 일본보다 20개월이나 짧다.

    뿐만 아니라 정부는 대림산업이 진행한 예비타당성 조사에 4억원을 지원했고, 한국수출입은행과 한국무역보험공사가 건설자금을 저리로 빌려주기로 하는 등 정부의 지원사격도 주효했다.

    해외건설협회 현 관계자는 "SK건설과 대림산업이 서로의 장점을 살려 협력했고, 정부의 지원까지 더해져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이라며 "해외건설 수주에 있어 모범적인 사례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건설사들의 협업사례는 또 있다. 지난해 초 쌍용건설(지분 75%)은 현대건설과 함께 싱가포르 육상교통청에서 발주한 도심지하철 TEL308공구를 2억5200만달러에 수주했다. 해당 프로젝트 입찰공고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양사의 경쟁이 불 보듯 뻔해 보였으나, 양사는 협업을 하면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에 조인트벤처(JV) 형태로 방향을 잡았다.

    쌍용건설은 최고난도 지하철 공사로 평가받는 싱가포르 도심지하철 921공구에서 1600만인시 무재해를 달성하고 싱가포르 육상교통청의 무한한 신뢰를 받고 있다. 또 현대건설은 싱가포르 현지에 최첨단 터널굴착기계인 TBM(터널보링머신)을 보유하고 있고 TBM공법의 기술력도 세계적인 수준으로 정평이 나 있다.

    양사의 판단은 적중했다. 해당 공사 입찰에는 중국업체 2곳과 스페인, 호주, 싱가포르 등에서 총 7개 건설사 및 컨소가 참여했다. 양사가 적어낸 금액은 최저가격이 아닌 3위의 가격이었지만, 시공능력 등 비가격 부문에서 높은 점수를 받아 타국 경쟁사들을 따돌리고 수주에 성공할 수 있었다.

    이 밖에 대우건설과 한화건설이 현지 건설사와 공동으로 시공하는 사우디아라비아 신도시 프로젝트(약 20조원 규모)도 올 상반기 중 본계약을 맺을 것으로 보인다. 아직 MOU 수준이지만, 10년간 주택 10만가구를 짓는 프로젝트로, 국내 건설사의 해외공사 최대 규모 수주 기록이 될 전망이다.

    대형건설 A사 관계자는 "축적돼 있는 건설 노하우가 집적되면 엄청난 잠재력이 생긴다"며 "아이템 발굴부터 협상·기획·시공·사후관리 등 해외건설의 전 단계에 걸쳐 정부의 지원과 경쟁력 있는 회사간 협업이 필요해지는 단계가 오고 있다"고 말했다.

    건설산업연구원 관계자는 "최근 기업들이 수익성 확보에 초점이 맞춰진 기업 전략을 세웠고, 경쟁보다는 협업을 통해 손해를 방지하는 방향으로 선회했다"며 "이는 3~4년 전 과당경쟁으로 일부 기업들이 '어닝쇼크'를 맞는 등의 경험에 의한 학습효과"라고 진단했다.

    정부도 해외건설 수주액을 끌어올리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해외건설 수주에 있어 정부와 공기업의 역할이 중요해지고 있는 점을 고려, 상반기 중 해외건설 지원기구를 설립할 예정이다. 특히 부가가치가 높은 민관협력 투자개발형 사업(PPP)에 공을 들인다는 방침이다.

    이에 앞서 지난달 국토교통부는 한국철도시설공단과 한국철도공사(코레일), 한국철도기술연구원을 비롯해 현대로템, KT, 현대중공업, 효성, LS산전, LS전선, 삼표레일웨이, 대아티아이 등 한국의 대표적인 철도기업들로 구성되는 '말싱고속철 상부 사업단'을 출범시켰다.

    말싱고속철 사업은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와 싱가포르 사이 고속철도 사업으로, 2013년 2월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가 합의한 뒤 추진되고 있다. 총 150억달러를 투입해 350㎞의 철도를 건설, 국가간 고속철을 놓는 프로젝트다. 양국은 올 하반기에 사업제안요청서를 공고하고, 이르면 내년 하반기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 사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국토부는 그동안 이 사업 수주를 위해 6차례에 걸쳐 국토부 장·차관이 현지에서 지원활동을 펼쳤으며 11차례에 걸쳐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 고위인사 방한 초청행사를 진행했다.

    건설업계와 정부가 힘을 모으자 민간시장에서도 수주가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미래에셋대우는 올해 해외건설 수주 규모를 520억달러로 예상했고, 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도 지난해보다 20%가량 늘어난 330억달러 규모로 전망했다.

    건설협회 관계자는 "수주절벽에서 탈피하기 위해 민관이 힘을 합해 노력하고 있는 것이 첫 번째 긍정 요인"이라며 "유가가 점차 오르면서 중동국가에서 발주하는 사업이 늘어날 것이고, 국내건설사들의 수주액도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고 기대했다.

    대형건설 B사 관계자는 "총리뿐만 아니라 외교력을 총동원하는 일본의 노력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며 "우리 정부와 유관 공기업들도 취약한 금융 지원과 세제 혜택을 늘리는 방안을 찾기에 팔을 더 걷어붙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해외건설 수주액은 400억달러 규모의 UAE 원전 공사를 수주한 2010년 715억달러로 정점을 찍은 이후 2014년까지 600억달러대를 유지했다. 하지만 '수주 텃밭'인 중동국가들이 저유가 여파로 건설공사 발주를 줄이면서 2015년 461억달러로 200억달러 이상 급감했다. 지난해 해외건설 수주액은 281억달러로, 2006년(164억달러) 이후 최저치에 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