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집중감시업종 선정해 일벌백계… 기술유출도 제재·조사시효 연장
  • ▲ 공정거래위.ⓒ연합뉴스
    ▲ 공정거래위.ⓒ연합뉴스

    공정거래위원회가 대기업의 중소기업 기술탈취를 막고자 신고에 의존하지 않고 적극적인 직권조사를 벌여나가기로 했다. 해마다 집중감시업종을 정해 기술유용 적발에 나선다.

    상당수 대기업이 공정거래 협약평가 우수기업으로 선정돼 수년간 직권조사를 면제받고 있는 만큼 협약기준을 고쳐 기술탈취에 대해선 평가 우수기업도 예외 없이 조사를 받게 할 방침이다.

    첫 타깃은 내년 기계·자동차 업종이다.

    ◇하도급계약 빌미로 기술자료 받아 유용… 공동 특허 요구도

    공정위와 더불어민주당은 8일 오전 10시 국회의원회관 제2세미나실에서 열린 당정 협의에서 이런 내용을 담은 '대·중소기업 간 상생협력을 위한 기술유용행위 근절대책'을 논의했다.

    공정위에 따르면 대-중소기업 간 기술자료 요구·유용은 여전한 실정이다. 지난해 서면실태조사 결과 기술자료를 요구한 원사업자 비율은 2.1%(88개사)로 조사됐다. 중소벤처기업부가 지난 2월 파악한 중소기업 기술보호 실태조사에서도 최근 3년간 기술유출 피해경험이 있다고 답한 중소기업 비율은 3.5%(52개사)로 나타났다.

    대기업이 협력사인 중소기업의 제품 설계도 등 기술자료를 요구한 뒤 해당 자료를 다른 업체에 넘겨 같은 부품을 만들게 하는 수법으로 납품업체를 다원화하고 납품단가를 낮추는 게 대표적인 피해사례다.

    대기업이 수급사업자(중소하도급업체)의 세부 원가 정보를 요구하고 1~2% 최소한의 영업이익만 보장하는 수준에서 단가를 책정하는 사례도 확인됐다.

    대기업이 허위 하도급계약을 미끼로 수급사업자의 도면 등을 요구한 뒤 얻어낸 기술자료를 유용해 비슷한 제품을 만들거나, 중소기업이 독자 개발한 기술에 대해 공동 특허출원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공정위 관계자는 "기술유용은 중소기업의 자생력뿐 아니라 우리 경제의 성장을 방해하는 반사회적 행위"라며 "그동안 3배 손해배상제도 도입 등의 노력에도 법 집행이 신고에 의존하고, 법망이 촘촘하지 못해 사각지대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전담TF 만들어 매년 집중감시업종 직권조사

    공정위는 당사자를 특정하기 쉬운 기술자료의 특성상 수급사업자가 신고를 꺼리고 거래 단절 등의 2차 피해 우려가 있는 만큼 선제적인 직권조사를 벌일 방침이다. 매년 집중감시업종을 정해 조사에 나선다. 내년 기계·자동차, 후년 전기·전자·화학, 2020년 소프트웨어 등이 예고됐다.

    대기업의 기술자료 요구 여부만 묻던 서면실태조사도 유용행위 발생 여부, 피해 규모 등을 추가로 조사해 혐의업체 파악에 활용한다.

    걸림돌은 적잖은 대기업이 공정거래 협약제도 우수기업으로 선정돼 수년간 직권조사를 면제받는 혜택을 본다는 점이다. 기술유용 혐의가 있어도 조사대상에서 빠지는 모순이 있다.

    공정위 관계자는 "지난해 협약평가 대상 기업 133개사 중 49%인 66개사가 직권조사 면제 대상"이라며 "기업 규모를 고려하면 90%쯤이 조사대상에서 빠진다고 보면 된다"고 부연했다.

    공정위는 협약평가 우수기업도 기술자료 유용과 관련해선 조사를 받도록 올해 말까지 협약기준을 개정할 계획이다.

    전문성을 요하는 만큼 조사는 기술유용사건 전담조직(TF)을 신설하고, 기술심사자문위원회도 설치한다.

    공정위 관계자는 "일단 TF를 운용하고 필요하면 기술유용관리과 신설을 행정안전부와 논의할 필요가 있다"며 "우선 이공계 출신 기술전문 인력을 집중 배치해 대응해나가겠다"고 밝혔다.

    기술자문위는 전기·전자, 기계, 자동차 등 5개 분과로 나누고 대학교수,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등 국책연구기관 연구원 등으로 구성한다.

    법 위반을 적발하면 일벌백계한다는 방침이다. 기술유용은 법 위반의 경중을 따지지 않고 정액 과징금(최고 5억원)을 부과하고 고발한다. '3배 이내'로 돼 있는 3배 손해배상제도의 배상액은 '3배'로 일괄 적용하는 방안도 공정위 내 법 집행 체계 개선 TF에서 논의할 예정이다.

    편법·우회적인 불공정행위를 막고자 법·제도의 사각지대도 없앤다.

    기술침해 금지행위에 기술자료의 요구·유용뿐 아니라 유출하는 행위도 포함한다.

    중소기업의 기술개발과 적정 단가 보장을 위해 수급사업자의 원가명세 등 경영정보를 요구하지 못하게 하도급법을 손질한다.

    중소기업이 독자 개발한 원천기술에 대기업이 정당한 사유 없이 공동특허를 요구하는 행위도 금지한다.

    기술유용 조사시효는 현행 납품 후 3년에서 7년으로 연장한다. 납품 이후 사후관리 과정에서 기술유용이 이뤄지거나 은밀하게 이뤄져 뒤늦게 드러나는 경우 중소업체를 보호하기 위해서다.

    거래 전 협상단계에서 발생하는 기술유용에 대해선 공정거래법 적용을 위한 판단 기준을 완화한다. 사업활동방해 조항의 '기술을 부당하게 이용해 사업활동이 심히 곤란하게 하는 행위' 문구 중 '심히'(정도가 지나치게)를 '상당히'(적지 아니하게)로 고쳐 법 적용을 강화한다.

    영세 중소기업의 기술을 두텁게 보호하려고 하도급법상 기술자료의 범위도 확대한다. 2015년 개정한 부정경쟁방지법상 영업비밀 요건과 같이 비밀 유지를 위해 기울인 노력의 정도를 '상당한 노력'에서 '합리적 노력'으로 고친다.

    공정위 관계자는 "이번 대책으로 기술유용은 억제되고 중소기업은 실효성 있는 피해구제가 가능할 것"이라며 "중·장기적으로는 중소기업의 기술개발 유인 효과로 산업경쟁력이 높아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