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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적십자 산하 병원에서 간호사가 임의로 담당 의사의 ID를 이용해 처방전을 발행해오다 적발됐다.
7일 대한적십자에 따르면 산하 병원의 김모 간호사(4급·수간호사)가 지난 1월까지 1년간 담당 의사 ID로 자신의 모친에 대해 대리처방을 한 사실을 적발, 의료법 위반 혐의로 고발 조치했다고 밝혔다.
김모 간호사는 담당의사의 허락 후 내시경실 의사의 ID로 처방을 변경하기도 했다.
김씨 외에도 구모 간호사(4급·수간호사), 이모 간호사(4급·수간호사) 역시 환자 처방전을 변경하거나 스스로 대리처방을 내리기도 하고, 퇴직의사의 부친에 대해 대리처방을 내렸다. 김씨와 차이가 있다면 의사의 지시와 허락이 있었다는 점이다.
현행 의료법상 의사 본인이 아닌 간호사 등이 임의로 처방하면 이는 엄연한 불법이다.
여기에는 '의료업에 종사하고 직접 진찰하거나 검안한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가 아니면 진단서·검안서·증명서 또는 처방전을 작성해 환자에게 교부하거나 발송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의사나 치과의사는 환자에게 의약품을 투여할 필요가 있다고 인정하면 '약사법'에 따라 자신이 직접 의약품을 조제할 수 있는 경우가 아니면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처방전을 작성해 환자에게 내주거나 발송해야 한다'고 명시됐다.
의사가 아닌 간호사, 간호조무사 등이 처방전을 작성하거나 발행하는 행위는 5년 이하 징역이나 5000만원 이하의 벌금과 행정처분 등을 받는다.
그럼에도 간호사에 의한 대리처방 문제는 지속적으로 수면위에 떠오르고 있다.
최근 전공의 폭행 사건의 피해자로 알려진 전북대병원 A전공의는 원내 문제를 폭로하면서 대리처방 문제를 거론하기도 했다.A전공의는 처방시스템의 의사 ID와 패스워드로 보이는 표가 진열된 사진을 공개하면서 "의사 본인의 ID와 패스워드까지 공개해 게시한 이유는 무엇이겠냐"고 지적했다.
순천향대천안병원도 대리처방 논란의 한가운데 선 바 있다. 지난 8월 간호사에 의한 원내 대리처방을 지적하는 언론보도 이후 관계당국의 수사를 받았다.
의료계는 대리처방의 원인을 의료전달체계의 문제로 지목하고 있다. 일부 대학병원과 간호사의 일탈처럼 비춰지고 있지만 결국 왜곡된 의료전달체계로 인한 구조적 문제라는 지적이다.
의료윤리연구회 이명진 초대회장(의사평론가)은 "대리처방 문제가 잇따라 불거지는 병원들은 종합병원급 이상의 대형 대학병원"이라면서 "큰병원들에 1차의료기관처럼 환자가 몰리고, 하루에도 80명이상의 진료를 봐야 하는 현재의 전달체계 상황 속에서 발생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어 "의사 역시 잘못된 관행을 거부하고, 법에 따라 처방해야 했지만 그러기엔 환경이 의사들을 코너로 몰고가고 있고, 의사는 그런 환경에 익숙해지고 있는 것"이라면서 "전달체계의 문제가 근본적 원인"이라고 개선을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