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삼성SDI 보유 '물산' 주식 404만주 추가 매각 지시'신뢰보호-소급효금지' 원칙 위반… "2년 만에 법 해석 뒤짚어""정치적 입맞 맞춘 결정 논란… 외국인 투자자 신뢰도 하락 우려"
  • ▲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뉴데일리DB
    ▲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뉴데일리DB


    공정거래위원회가 2015년 완료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과 관련해 삼성물산 주식을 갖고 있는 삼성SDI가 404만주(약 5155억원)를 추가 매각해야한다는 결정을 내리면서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삼성SDI는 당시 공정위의 유권해석에 따라 삼성물산 주식 500만주를 매각한 바 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지난 21일 '합병 관련 신규 순환출자금지 제도 법 집행 가이드라인' 변경 브리핑에서 '삼성SDI는 새로운 기준에 따라 내년 3분기 안에 삼성물산 주식 404만주를 추가로 매각해야한다'는 뜻을 밝혔다. 지난 정권에서 일했던 공정위가 유권해석 과정에서 오류를 범해 비판을 무릅쓰고 가이드라인 일부를 변경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

    공정위의 이같은 판단에 재계는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공정위가 같은 법에 대한 해석을 2년 만에 손바닥 뒤집듯 바꾸면서 신뢰보호 원칙과 소급효금지 원칙을 위반했다는 지적이다. 더욱이 '적폐 청산'을 앞세운 정권에 맞춰 '고무줄 잣대'를 제시하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온다.

    시간을 거슬러 가면 이렇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은 2015년 5월 26일 합병 결의가 공시되면서 알려졌다. 양사는 합병으로 인한 시너지 효과를 앞세워 합병 필요성을 강조했고 시장 평가는 긍정적이었다.

    다만 공시 하루 뒤인 27일,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가 삼성물산 주주로 합병에 반대 의사를 표명하면서 논란이 시작됐다. 엘리엇은 "합병안이 명백히 공정하지 않아 삼성물산 주주들의 이익이 축소될 수 있다"는 이유로 합병을 반대했다.

    엘리엇이 보유한 삼성물산 지분은 7.12% 수준으로, 엘리엇은 6월 9일 법원에 주주총회 소집통지 및 결의금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다. 7월 1일 법원이 가처분 신청을 기각하면서 삼성물산은 한 숨을 돌렸지만, 이틀 뒤인 3일 세계 최대 의결권 자문사인 ISS가 합병에 반대 의견을 내면서 논란은 증폭됐다.

    법원은 삼성물산의 손을 들어줬다. 삼성물산 자사주 매각금지 가처분 신청은 결국 기각됐고, 최대 주주인 국민연금이 투자위를 열어 합병 찬성을 결정하면서 합병은 급물살을 탔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이 17일 각각 임시 주총을 열어 합병 안건을 가결하면서 논란은 사그라들었고, 9월 1일 양사가 공식 합병하면서 논란은 종결됐다.


  • ▲ 자료사진. ⓒ뉴데일리DB
    ▲ 자료사진. ⓒ뉴데일리DB


그런데 전혀 다른 곳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2014년 7월 개정된 공정거래법이 순환출자를 금지하고 있어, 삼성물산 합병이 위법 논란에 휩싸인 것이다.

삼성은 합병이 진행되는 2015년 6월, 로펌 등에 적법성 여부를 문의했다. 그러나 로펌은 '해당 건은 순환출자가 단순화되는 것일 뿐 공정거래법상 문제가 없다'는 해석을 내놨다. 그해 9월 합병을 마무리한 삼성은 공정위로부터 순환출자 관련 자료요청을 받았고 주식 매각을 위한 협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삼성의 순환출자 고리는 총 10개로 삼성SDI를 중심으로 한 고리 6개, 삼성전기를 필두로 한 3개의 고리가 존재했다. 이 가운데 삼성물산이 제일모직의 주식을 갖고 있던 고리는 총 3개로, 삼성은 합병으로 해당 순환출자 고리가 자연스럽게 해소되는 것으로 판단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경우 순환고리상 인접하게 붙어있고, 양사가 합병할 경우 존속법인이 제일모직으로 결정돼 출자고리가 단순화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정위의 생각은 달랐다. 존속법인인 제일모직이 소속된 고리와 소멸법인인 삼성물산이 소속된 고리에 다른 잣대를 들이댔다. 출자 고리에 따라 추가된 계열 출자분을 다르게 해석한 셈이다. 공정위는 삼성SDI가 소멸법인인 구 삼성물산의 주식을 반납하고 새롭게 교부받은 404만주와 제일모직 지분 반납주 500만주를 포함한 904만주를 매각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삼성은 이의를 제기했다. 기존 고리 내에 소멸법인이 있는 것을 지배력 및 기존 출자강화로 볼 수 없다고 강조했다. 또 붙어있는 고리가 합쳐지는 것은 합병이 아니라고 덧붙였다.

공정위와 삼성은 이같은 내용을 바탕으로 법리적인 토론을 시작했고, 공정위는 12월 24일 전원회의를 거쳐 '합병 관련 신규 순환출자 금지 제도 법 집행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가이드라인에는 삼성SDI가 소멸되는 구 삼성물산의 주식을 반납하고 받은 주식 404만주를 제외한 제일모직 지분 반납에 따른 주식 500만주를 매각해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공정위는 고리가 사라지거나 단순화되는 것은 제외했지만, 보유지분이 늘어나는 것은 고리가 강화되는 것으로 해석했다. 그리고 추가되는 출자분 가운데 규모가 큰 주식을 처분하도록 결론 내렸다. 

삼성은 공정위의 판단에 동의하진 않았다. 지분 매각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삼성은 내부회의를 거쳐 순환출자를 해소하겠다는 의지로 500만주 처분을 결정했다. 그렇게 모든 절차는 마무리됐다.


  •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뉴데일리DB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뉴데일리DB


  • 그럼에도 공정위는 다시 한번 판단 기준을 바꾸며 논란을 증폭시켰다. 공정위는 과거 500만주 처분 지시에 대해 '삼성의 성공적인 로비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으로 공익을 보호하기 위해 지침을 변경하는 것이 옳다'고 변경 이유를 설명했다. 더욱이 신뢰보호 원칙을 훼손한 건 인정하면서도 소급효금지 원칙에는 위배되지 않는다는 자신감을 보였다. 

    재계는 공정위의 판단에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특히 '공정위가 정권을 등에 업고 정치적인 결정을 내렸다'는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여기에 2년 만에 지침을 뒤집으면서 스스로 신뢰성을 내팽겨쳤다고 꼬집었다.

    재계 한 관계자는 "정부기관이 정권에 따라 정책 원칙과 기준을 바꾸면 정부에 대한 신뢰도와 권위는 자연스럽게 무너진다. 특히 외국인 투자자들이 갖는 신뢰도는 급격히 하락할 수 있다"며 "이번 결정에 대한 논란은 꽤 오래갈 것으로 보인다. 삼성이 법적 대응에 나설 경우 법원의 판단에 따라 논란은 확산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삼성은 해당 사안에 대해 말을 아끼며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이재용 부회장의 재판이 진행중이고 정부의 구체적인 시정 명령이 하달되지 않아 향후 입장을 밝히겠다는 태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