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제품 되레 발목… 홍순만 前사장 퇴임 후 추진동력 잃어
  • ▲ 레일버스.ⓒ연합뉴스
    ▲ 레일버스.ⓒ연합뉴스

    한국철도공사(코레일)가 쪼그라드는 철도 공익서비스(PSO) 예산과 벽지 노선 운행 등 공공성 강화에 대한 해법으로 야심 차게 준비했던 '레일버스'가 차량기지 내 미니버스로 전락해 사장되고 있다.

    한국철도기술연구원장을 지낸 홍순만 전 코레일 사장이 추진했으나 국가 연구·개발(R&D) 과제로 선정되지 못했고, 시제품을 공개할 즈음 홍 전 사장이 갑자기 물러나면서 이후 사업추진 동력을 잃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25일 코레일과 철도연에 따르면 지난해 코레일이 시제품을 선보이고 본격적으로 개발사업을 추진했던 레일버스가 천덕꾸러기가 돼 차량기지에 방치되고 있다.

    코레일 한 관계자는 "레일버스는 철도기준에 맞게 승인된 열차가 아니어서 바깥 영업선로에 나갈 수 없다"며 "구내(차량기지)에서만 움직일 수 있고, 가끔 시동 걸어 관리하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코레일은 지난해 8월 듀얼모드를 지원해 도로와 철도를 함께 달릴 수 있는 레일버스 개발을 추진하겠다며 시제품을 공개했다.

    레일버스는 일반 미니버스에 '가이드 휠'을 장착한 특수 경량 철도차량이다. 평소에는 도로를 달리다 선로에서는 보조바퀴를 이용해 궤도를 운행할 수 있다.

  • ▲ 레일버스 가이드 휠.ⓒ연합뉴스
    ▲ 레일버스 가이드 휠.ⓒ연합뉴스

    승객 25~35명을 태우고 도로와 궤도에서 시속 80㎞ 속도로 운행이 가능하다. 코레일은 필요하면 레일버스 2~3량을 연결해 한 번에 75~105명을 태울 수 있게 기술개발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코레일은 레일버스를 이용객이 적은 벽지 노선에 투입하면 운영비를 줄이고 열차운행 횟수는 늘리는 등 두 마리 토끼를 잡을 것으로 기대했다.

    정선선에 레일버스를 도입하면 열차 운행횟수가 하루 편도 2회에서 13회로 6.5배 늘어나고 운영비용은 28%, 유지보수 비용은 58% 각각 줄어들 거로 예상했다.

    관광상품으로도 활용할 계획이었다. 서울~강릉 간 고속철도와 연계해 진부역에서 정선까지 레일버스로 수송하는 상품을 만들면 지역경제와 관광 활성화에 이바지할 수 있다는 전망이었다.

    코레일은 철도연과 협력해 레일버스의 안전성 검증과 추가 기술개발을 마친 후 이르면 내년 말부터 정선선 등에 투입할 계획이었다. 이를 위해 국가 R&D를 통해 차량을 안전하게 개발한다는 구상이었다.

    그러나 레일버스는 국가 R&D 과제로 선정되지 못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올해 수립한 철도기술연구사업에 4가지 사업이 있고 그 아래 세부과제들이 있으나 레일버스는 포함되지 않았다"고 했다.

    철도연 관계자는 "국가 R&D로 추진하려고 시도했으나 선정되지 못했고 예산을 배정받지 못해 연구·개발이 중단된 상태"라고 전했다.

    레일버스가 국가 R&D 선정에서 탈락한 이유는 확인되지 않았다. 코레일 내에서도 잊혀 담당자를 찾기도 쉽지 않은 상태다.

    코레일 관계자는 "철도연의 협조를 받아 공동으로 연구·개발했으나 개발비를 지원받지 못했고 지금은 사업추진팀도 없어졌다"고 말했다.

    다른 코레일 관계자는 "국가 R&D로 재추진한다는 계획도 없는 거로 안다"고 덧붙였다.

    일각에서는 의욕이 앞섰던 홍 전 사장이 너무 앞서갔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국토교통과학기술진흥원 한 관계자는 "국가 R&D로 선정되려면 수백 가지 아이템과 경쟁해야 한다"며 "기술개발의 필요성과 정부 지원이 필요한 당위성이 있어야 하는데 언론에 시제품까지 공개한 상태였다면 양산단계를 앞둔 것으로 간주해 연구·개발비를 타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정부의 PSO 보전예산은 삭감됐고, 벽지 노선 운행 등 철도 공공성 강화를 외치는 목소리는 커지는 상황에서 코레일이 해법으로 레일버스를 추진했으나 설레발이 지나쳐 시제품까지 내놓으면서 R&D 지원의 필요성이 떨어졌다는 것이다.

    레일버스 시제품 공개 사흘 전 홍 전 사장이 임기를 21개월이나 남기고 돌연 사임하면서 국가 R&D 과제 선정을 위한 추진동력을 잃은 것도 레일버스 사장의 한 원인으로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