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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간 공석이던 공공기관장 자리가 속속 채워지고 있는 가운데, 신임 CEO들의 첫 발걸음이 노동조합으로 향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 아래서 일자리 창출과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근로시간단축 등 산적한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선 노조의 협조가 필수적이란 판단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노조가 반발하면 3년 임기 내내 정상적인 경영이 어려울 수 있다는 우려도 한몫한 것으로 보인다.
30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지난 19일 취임한 김낙순 한국마사회장이 가장 먼저 찾은 곳은 다름아닌 노조 사무실이었다. 자신의 취임식 보다도 앞섰다. 역대 회장 중 첫 업무로 노조 사무실을 방문한 것은 것이 이번이 처음 있는 일이다.
김 회장이 첫 출근 장소로 노조 사무실을 택한 이유에 대해 마사회측은 "김 회장은 청년시절에 노사의 소통과 상생이 기업 발전에 얼마나 소중한 요소인지를 몸소 경험했다"며 "노조원들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여기에 더해 노조의 반발을 잠재울 필요가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실제 마사회 노조는 김 회장의 내정설이 불거진 지난해 말부터 "최소한 전문성이나 업무 연관성 등은 고려해야 한다"며 선임을 반대해 왔다.
김 회장은 천안농고를 졸업했다는 것 외엔 말 산업이나 축산 분야와 연관성이 전혀 없는 인물이다. 더욱이 지난 5월 대통령 선거 과정에선 박원순 서울시장과 문재인 캠프에서 활동했다는 이력때문에 캠코더(캠프·코드·더불어민주당)' 인사라는 비난이 끊이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김 회장은 정면돌파로 노조 사무실을 찾아 노조의 마음을 어느정도 돌려놓는 데 성공했다. 노조 입장이 '반대'에서 '긍정적'으로 급선회한 것이다.
김 회장은 취임사를 통해 "조직원 간 신뢰와 배려의 문화구축과 공정한 인사로 조직의 신뢰를 지켜나가겠다"며 "이를 통해 조직의 생산성을 높이고, 모든 분야에서 업무가 투명하게 처리되도록 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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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일 한국가스공사 사장도 부임 후 첫 미션이 '노조 설득'이었다. 지난 8일 선임된 정 사장은 노조의 벽에 부딪쳐 취임식은커녕 보름 넘게 사무실로 출근도 하지 못한 채 본사 인근 중앙연수교육원에서 업무를 봐야만 했다.
가스공사 노조가 정 사장의 출근을 저지한 이유는 산업통상자원부 시절 가스 직도입을 추진했다는 전력 때문이다. 가스공사의 공공성이 훼손될 우려가 있다고 본 것이다. 그러다 정 사장이 3차례 노조와의 만남을 갖고 합의를 이룬 뒤 지난 23일 저녁부터 겨우 출근했다.
이 외에 정지원 한국거래소 이사장, 은성수 한국수출입은행장 등도 비슷한 홍역을 치른 뒤 노조를 설득한 끝에 정상 업무에 복귀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