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피에스넷 자금수혈 위해 유상증자 실시… 1심서 무죄 판결“신동빈 회장, 롯데기공 ‘ATM 제조사’로 전환 지시”
  • ▲ 황각규 롯데지주 부회장이 11일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롯데 경영비리’ 항소심 8차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정상윤 기자
    ▲ 황각규 롯데지주 부회장이 11일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롯데 경영비리’ 항소심 8차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정상윤 기자
    신동빈 롯데 회장이 검찰이 제기한 롯데피에스넷 유상증자 의혹을 일축했다. 롯데피에스넷 유상증자는 경영실패를 은폐하기 위한 ‘꼼수’가 아닌 자금투입을 위한 ‘한수’였다는 반박이다.

    11일 서울고법 형사8부(부장판사 강승준)는 경영비리 혐의로 기소된 신동빈 회장에 대한 항소심 공판을 진행했다. 뇌물공여 및 경영비리 혐의를 받고 있는 신 회장의 항소심은 이날까지 총 8차례 열렸다.

    앞선 7차례의 공판은 뇌물공여 관련으로 진행됐고, 이날 8차 공판부터는 롯데 경영비리 건 재판이 시작됐다. 이날 재판에는 신동빈 회장을 비롯해 황각규 롯데지주 부회장과 소진세 롯데지주 사장, 강현구 롯데홈쇼핑 고문 등도 피고인으로 출석했다.

    검찰은 지난 2015년 4개월간 롯데그룹을 대대적으로 수사했다. 당시 검찰은 롯데 정책본부에서 1톤 트럭 11대 분량의 문서를 압수했고, 400여명의 임직원을 700회 가량 소환해 조사했다. 재계는 당시 검찰의 롯데 수사를 두고 ‘건국 이래 최대·최장 검찰조사’라고 평가했다.

    이 기간 검찰이 롯데에서 발견한 불법행위는 롯데피에스넷 유상증자와 롯데기공 끼워넣기 등이다. 검찰은 신동빈 회장이 지난 2008년 인수한 피에스넷이 적자를 거듭하자, 이를 은폐하기 위해 3차례의 유상증자를 실시했다고 주장하며 배임 혐의로 기소했다. 

    당시 신동빈 회장이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과 함께 경영권 능력에 관해 검증을 받던 시기여서, 사업실패를 숨기려 했다고 검찰은 보고 있다. 실패가 알려지면 신격호 명예회장으로부터 신동빈 회장이 질책을 받는 등 경영권 분쟁에서 불리한 위치에 설 가능성이 높았다는 것. 

    검찰은 “롯데피에스넷 유상증자 과정에서 신동빈 회장에 금전적인 이익은 없었다”며 “단 피에스넷 인수 실패가 신격호 명예회장으로부터 경영권을 물려받는 데 장애가 될 수 있어 정책본부 주도로 유상증자를 실시한 것”이라고 말했다.

    신동빈 회장 측 변호인단은 검찰의 주장이 ‘사실’과 다르다고 강하게 반박했다. 롯데피에스넷 유상증자는 자금부족으로 경영상 어려움을 겪고있는 재무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경영상 판단이라는 것.

    변호인단은 “신동빈 회장은 피에스넷 유상증자 실시에 앞서 회사 자금상황이 어려운 것을 듣고 청산과 매각, 합병 등을 검토할 것을 지시했다”며 “경영실패를 은폐하려 했다면 청산과 매각 등을 지시하지 않고, 유상증자를 최대한 빠르게 실시하라고 지시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롯데피에스넷의 유상증자에는 코리아세븐과 롯데닷컴, 롯데정보통신 등이 참여했다. 검찰은 이 계열사들이 인터넷은행과 현금자동입출금기(ATM) 사업을 추진하던 롯데피에스넷과 사업 연관성이 없다고 주장한다. 신동빈 회장과 정책본부의 계획에 따라 유상증자에 나섰다는 것.

    롯데 측은 검찰의 주장에 계열사 3곳이 롯데피에스넷과 밀접한 사업 관련성이 있다고 반박했다. 코리아세븐은 편의점 ‘세븐일레븐’을 운영하고 있다. 세븐일레븐에는 다른 편의점과 차별화된 ATM이 설치돼, 소비자 유인효과가 뚜렷했다고 밝혔다.

    롯데닷컴과 롯데정보통신도 마찬가지다. 롯데닷컴은 온라인 회원을 다수 보유하고 있다. 롯데그룹은 이 회원을 인터넷은행 가입자로 흡수하는 전략을 세웠다. 롯데정보통신은 지난 2002년부터 ATM 사업을 검토했고, 피에스넷이 세븐일레븐에 납품한 ATM에 여러 프로그램을 공급해 수입을 올렸다.

    롯데 측은 “1심 재판부는 계열사 3곳의 유상증자 참여를 피에스넷의 성장에 따른 기대보상과 시너지 추구 관계라고 판결했다”며 “당시 80여개의 계열사 중 인터넷은행과 업무연관성이 가장 높은 계열사가 유상증자에 참여한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 ▲ 강현구 롯데홈쇼핑 고문(왼쪽부터)과 황각규 롯데지주 부회장, 소진세 사장이 11일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롯데 경영비리’ 항소심 8차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정상윤 기자
    ▲ 강현구 롯데홈쇼핑 고문(왼쪽부터)과 황각규 롯데지주 부회장, 소진세 사장이 11일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롯데 경영비리’ 항소심 8차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정상윤 기자
    검찰은 롯데피에스넷 유상증자와 함께 1심 판결에서 무죄가 선고된 ‘롯데기공 끼워넣기’ 카드도 재차 꺼내들었다. 롯데피에스넷의 ATM 구매과정에 롯데기공을 끼워넣어 약 39억원의 이익을 몰아줬다는 의심이다. 1심 재판부는 ‘경영상 판단’이라며 무죄를 선고했다.

    롯데 측 변호인단은 원심에서 무죄로 판결난 사안을 다시 거론하는 것에 불쾌감을 나타냈다. 왜곡된 진술로 시작된 의혹이 재판부 판단으로 결론이 난 사안인데, 재차 혐의 입증에 나서는 것을 납득하기 어렵다는 것.

    롯데 측은 “신동빈 회장은 롯데기공을 ATM 제조사로 변화시켜야 한다고 지시했다”며 “검찰은 신동빈 회장의 지시가 끼워넣기라는 논리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삼일회계법인의 컨설팅 결과에 따라 롯데기공을 제조 전문업체로 전환하려 했던 것인데 이를 문제 삼는 것을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며 “롯데의 회의자료에는 신동빈 회장이 피에스넷에 롯데기공이 ATM을 직접 생산해 납품할 것이라고 명확히 기재돼 있다”고 덧붙였다.

    이날 공판을 마치며 변호인단은 신동빈 회장에 대한 검찰의 배임 혐의 주장에 재판부가 정확한 판단을 해줄 것을 간청했다.

    변호인단은 “검찰은 2015년 신동빈 회장을 타깃으로 광범위한 수사를 벌였다”며 “그러나 수사 과정에서 불법행위가 적발되지 않으니 몇몇 롯데에 부정적인 생각을 가진 이들의 진술에 의존해 프레임을 구성했다. 재판부가 관련사안을 면밀히 확인해 현명한 판결을 내려주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한편, 오는 18일 진행될 항소심 9차 공판은 롯데시네마 매점 운영과 서미경씨의 딸과 신영자 전 롯데장학재단 이사장에게 지급된 ‘공짜급여’ 건이 심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