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업계 '초미세공정' 경쟁 속 글로벌 '극자외선노광장비' 독점 기업 관심 집중장비 납품, 유지, 보수 등 '乙' 위치 불구, ASML 협업 부서 인재 유출 잇따라
  • 반도체업계가 10나노미터 이하 초미세공정 경쟁에 본격 뛰어들며 전세계 유일 극자외선노광장비(EUV)를 생산하는 네덜란드 장비업체 ASML이 승승장구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기업의 인재들도 이 같은 ASML의 성장세를 지켜보며 이직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8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최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반도체 인재들이 네덜란드 반도체 장비업체 ASML로 이직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통상 반도체 장비업체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같은 반도체 제조사에 장비를 납품하고 유지·보수 등의 일을 맡기 때문에 이른바 '을'의 위치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자사의 장비를 반도체 제조사들이 도입하게 하기 위한 업계간 경쟁도 치열하다. 이런 이유로 반도체 제조사 종사자가 장비업체에 근무하기를 희망하는 경우는 드물다. 

    하지만 ASML의 경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인재들이 대표적으로 이직을 원하는 곳 중 하나로 꼽히고 있어 주목된다. 실제로 각 사에서 ASML과 협업을 하는 부서를 중심으로 인재 스카우트도 이뤄지고 있고 자발적으로 이직에 도전하는 경우도 많아졌다.

    ASML이 이처럼 국내 반도체 인재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는데는 아무래도 회사의 경쟁력과 성장성에 방점이 찍힌다. 최근 몇 년 사이 반도체업계가 가파른 성장세를 이어온 것 이상으로 성장하고 있는 곳이 ASML이기 때문이다.

    ASML은 네덜란드에 본사를 둔 노광장비 전문 기업이다. 반도체 생산공정 중 노광은 빛을 이용해 반도체의 원재료인 웨이퍼에 회로 패턴을 새기는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반도체 크기를 미세화할 수 있는 결정적인 기술 차이가 발생한다는 점에서 반도체업체 간 경쟁이 심화되는 것이기도 하다.

    이미 반도체업체들의 수년 간의 노력으로 10나노 수준까지의 미세공정이 가능케 됐지만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초미세공정 도입이 업계의 최대 화두다.

    이 초미세공정에서 ASML이 해법의 키를 쥐고 있다. 7나노 이하 미세공정이 가능한 '극자외선노광장비(EUV)' 기술을 유일하게 보유한 곳이 ASML이다. 현재 삼성전자는 시스템 반도체 생산에서 활용하던 EUV 장비를 D램 생산에 적용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고 SK하이닉스도 신설하는 M16 공장에 EUV를 도입하기 위한 작업에 착수했다.

    ASML이 생산하는 EUV는 올해 기준으로 20대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내년에는 이보다 조금 늘어난 30대, 2020년에는 40대 정도 생산될 것으로 관측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외에도 TSMC, 인텔, 마이크론, 글로벌파운드리 등이 ASML의 EUV 장비를 도입하고 싶어해 벌써부터 물밑 경쟁을 벌일 정도다.

    독보적인 장비로 고객사를 쥐락펴락 하는 만큼 ASML과 고객사의 관계는 다른 반도체 장비업체들과는 상당히 다르다는 평가다. 반도체 제조사가 고객사라기 보다는 파트너사라는 인식이 더 강할 수 밖에 없는 구조다. 반도체 제조사에서 ASML로 이직을 시도하는 이들도 이 같은 구조에 만족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는 후문이다.

    ASML의 연봉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과 비슷하거나 약간 낮은 수준으로 알려졌다. 이직자들이 단순히 연봉을 이유로 옮기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이직자들은 처우보다는 ASML이 이른바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이 우수한 직장이라는 점에 높은 점수를 준다. 유럽계 기업이라 기업 분위기가 자유롭고 근무 형태도 훨씬 유연하다는 게 이직자들이 공통적으로 꼽는 장점이다.

    업계 관계자는 "기존에도 리소그래피 전문 기업으로 장비업계에서 위치를 공고히 하고 있던 ASML이 최근 EUV로 더욱 주가가 높아졌다"며 "국내에서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의 반도체 인재들을 흡수하며 인재 육성에도 공을 들이는 등 시장 지배력 확대에 나선 모습"이라고 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