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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째 이어져 온 밥솥업계 소송은 언제쯤 끝이 날까. 업계 라이벌 쿠쿠전자와 쿠첸이 ‘분리형 커버’ 소송을 두고 좀처럼 입장을 좁히지 못하고 있다. 양 사는 지난 2013년부터 법원을 오가며 다툼을 이어왔다.
쿠쿠와 쿠첸은 이달 20일 특허법원에서 변론기일을 갖는다. 양 사는 지난해 11월, 올해 4월 등 여러 차례에 걸쳐 변론을 진행했다. 이번 재판은 지난해 6월 서울중앙지방법원의 판결의 후속 차원이다. 당시 법원은 쿠첸이 특허 침해의 대가로 쿠쿠에게 35억 6000만원을 배상해야한다고 판결했다.
양 측은 나란히 항소 했다. 쿠쿠는 35억원의 배상액이 적다는 입장이며, 쿠첸은 배상액이 과도하다는 주장이다. 특허법원에서 입장차를 좁히지 못할 경우, 해당 사건은 대법원까지 올라갈 것으로 보인다.
◇ 6년째 으르렁… ‘분리형 커버’가 뭐길래
소송 쟁점은 밥솥 뚜껑에 달린 ‘분리형 커버’ 기술이다. 분리형 커버는 밥솥 뚜껑에 달린 쇠판과 패킹을 분리할 수 있는 기술로, 오래전 제품인 일체형 커버와 달리 손세척이 쉽다.
기술 핵심은 분리형 커버에 달린 안전장치다. 분리형 제품은 일반 사용자가 뚜껑을 탈착해야 한다는 점에서 일체형에 비해 안전장치가 까다롭다. 커버를 제대로 장착하지 못하면 밥이 끓어 넘치거나, 취사에 필요한 적정 압력을 유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소송의 역사는 6년 전인 201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8년부터 분리형 커버를 사용해 온 쿠쿠는 2013년 6월 쿠첸에 특허 침해 소송을 제기했다. 한 달 뒤엔 쿠첸이 특허 무효 소송을 냈으며, 치열한 다툼 끝에 2016년 10월 대법원은 쿠쿠의 손을 들어줬다.
현재 진행 중인 사건은 앞선 재판을 바탕으로 쿠쿠가 쿠첸에 낸 손해배상 소송이다. 쿠쿠는 2015년 1월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쿠첸의 보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냈다. 쿠쿠 측이 주장하는 보상액은 100억원 규모다. 이에 서울중앙지법은 지난해 6월 쿠첸이 쿠쿠에 35억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으며, 양 측은 보상 규모를 두고 다툼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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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분한 보상 이뤄져야” vs “보상 규모 과도”
쿠쿠 관계자는 “소송 당시 130여 건의 쿠첸 제품에 자사 분리형 커버 기술이 적용된 것으로 파악했다”면서 “쿠첸은 35억원의 배상액이 과도하다는 입장이지만, 당시 기술적 우위와 피해 등을 감안하면 보상 규모가 충분치 않다”고 말했다.
이어 “2010년대 초반 쿠쿠의 모든 마케팅 포인트는 분리형 커버였으며, 2위 업체 쿠첸과의 격차를 벌린 핵심기술”이라며 “이를 위해 엄청난 개발비와 마케팅 예산을 투입했으며, 지난 시간 동안 쿠첸이 누린 편승효과를 충분히 보상해야한다”고 덧붙였다.
쿠첸 측은 소송 원인이 됐던 기술을 모두 대체했다는 주장이다. 이에 향후 영업과 생산 활동엔 지장이 없으며, 추후 소송 결과를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쿠첸 관계자는 “현재 소송의 원인이 됐던 기술을 타 기술로 완벽히 대체했으며, 소송으로 인한 영업상 어려움은 없을 것”이라며 “추후 재판부의 판단 등 소송 결과를 지켜볼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 햇반에 뺏긴 시장… "‘1위 타이틀’ 감정싸움 불과”
가전업계는 양 사의 다툼에 회의적인 시각을 내비치고 있다. 소송의 원인이 된 기술이 오래된 데다가, 몇 없는 업계 동업자 간 소송을 이어오는 것 자체가 소모전에 불과하다는 의견이다. 소송 자체가 특허 보장의 의미보단 ‘업계 1위, 원조’ 타이틀 수성을 위한 감정싸움일 것이라는 관점도 있다.
가전업계 관계자는 “기술 개발과 상용화가 오래 전 일임에도 양 사가 여전히 다투는 것은 업계 1위, 원조 타이틀을 위한 기싸움일 것”이라며 “영업 현장에서는 이 같은 프레임으로 경쟁사를 견제하는 것이 효과적이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양 사가 밥솥에 기반해 사업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양보가 쉽지 않은 것은 이해하지만, 동업자 의식이 부족한 점은 아쉽다”면서 “오랜 기간 동안 양 사의 감정의 골이 깊어 이번 소송도 쉽게 마무리하진 못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실제 밥솥시장은 5000억대에서 정체중인 상태로 햇반을 필두로 한 즉석밥 시장 7000억에도 밀리고 있다.
나란히 지난 70년대부터 사업을 시작한 두 회사는 프리미엄 제품 출시, 해외진출, 사업다각화 등 다양한 방면에서 같은 다른 모습을 띈 채 경쟁을 벌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