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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력공사(이하 한전) 경영진들이 배임죄로 피소될 것을 우려해 임원 배상책임 보상한도를 인상한 가운데 실제 피소가 이뤄지면서 보험사들은 막대한 보험금 지급 부담을 지게 될 전망이다. 한전은 문재인 정부 출범 후 탈원전을 선언한 2017년 임원 배상 책임보험 한도를 500억원에서 1000억원으로 올렸으며 올해 4월 보험을 갱신했다.
19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한전이 가입한 임원배상책임보험 보험료는 6억2500만원이며 보상한도는 1000억원 수준이다.
일반보험은 통상 간사사를 중심으로 주요 손보사들이 일정비율 만큼 분담해 인수하고 있다. KB손해보험은 보험계약의 50%를 보유한 간사사로 가장 많은 부담을 떠안을 것으로 보인다. 이를테면 소송규모의 50%를 KB손보가 부담해야하는 것이다.
이외에도 컨소시엄 형태로 롯데손보(17%), 메리츠화재(11%), DB손해보험(11%), 현대해상(11%)이 참여한 상태다.
임원배상책임보험은 사장 등 임원이 업무 수행 중 배임, 횡령 등의 사유로 주주 등에게 손해배상을 할 경우 손해배상금과 소송비용 등을 지급하는 상품이다.
한전은 앞서 전력 수요가 많아지는 7~8월 전기요금을 월 1만원 정도 할인해주는 주택용 전기요금 누진제 개편안을 이사회에서 통과시켰다. 개편안이 시행되면 전국 1600만 가구가 전기요금을 할인받게 되지만 한전이 부담해야 할 비용은 2847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한전은 최근 대형 법무법인에 여름철 전기요금을 할인해주는 누진제 개편안을 이사회에서 의결할 경우 배임에 해당하는지 여부와 임원 배상 책임 보험으로 처리할 수 있는지 여부를 물어본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누진제 완화로 임원 배임 관련 줄소송이 예상되면서 보험업계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보험업계 한 관계자는 “적자로 경영 상황이 계속 좋지 않은 상황에서 누진제 완화로 한전이 추가 부담을 지면서 배임죄 논란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며 “임원배상책임보험 컨소시엄에 참여한 보험사들도 보험금 지급 부담을 안게 됐다”고 말했다.
일부 소액 주주들은 김종갑 한전 사장 등 경영진을 업무상 배임 혐의로 형사 고발한 상태다.
일각에선 한전이 정부가 탈(脫)원전 선언을 한 후인 2017년 10월부터 보험 보상 한도를 기존 500억원에서 1000억원으로 올린 것은 배임죄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고 있다.
보험사들은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탈원전 정책으로 한전이 적자를 겪고 있는 상황에서도 보험 갱신은 불가피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규모가 큰 계약인데다 정부 기관에서 한번 맺은 계약을 손해가 예상된다는 이유로 털어낼 수 없기 때문이다. 정부 정책이나 규제에 따라 상황이 달라지는 보험사 입장에선 정부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이에 따라 KB손보는 갱신에 앞서 재보험율을 높이는 방식으로 대응에 나섰다. 일반적으로 손보사들은 위험부담을 줄이기 위해 재보험에 드는데 KB손보의 임원배상책임보험 재보험율은 70% 수준이다. 예를 들어 피해액이 100억원이라면 KB손보는 30억원만 떠안게 된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배상책임보험이 1년 계약이고 규모가 있기 때문에 계속해서 이어가는 경우가 많다”며 “한번 거래를 하면 화재보험 등 다른 보험 상품 계약 체결로 이어질 수 있어 손해가 예상되더라도 감내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보험사 한 계자는 “혹시 모를 손실에 대비해 재보험에 가입했으며, 이번 갱신 과정에선 재보험율을 높이는 방식으로 위험 부담을 줄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