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여 번의 시도 끝에 탄생한 'BBT-877'… 1.5조 규모 기술수출 '잭팟'"글로벌 임상 3상 실패는 흔한 일… 실패 통해 신약개발 성공률 높여야"
  • ▲ 이대연 레고켐바이오사이언스 이사급 연구위원(박사)은 지난달 30일 대전 본사에서 본지와 만났다. ⓒ정상윤 기자
    ▲ 이대연 레고켐바이오사이언스 이사급 연구위원(박사)은 지난달 30일 대전 본사에서 본지와 만났다. ⓒ정상윤 기자

    "신약개발의 어려운 점은 앞일을 예측할 수는 있지만 확신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실험실에서 아무리 열심히 만들어도 한참 뒤인 임상 3상에서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공이 어디로 튈지 모르니까 변수를 최대한 줄이려고 노력하는 점이 연구자로서의 재미다."

    항섬유화제 'BBT-877'을 개발한 이대연 레고켐바이오사이언스(이하 레고켐바이오) 이사급 연구위원(박사)은 최근 대전 본사에서 본지와 진행한 인터뷰를 통해 신약 개발 과정의 어려움과 기대감을 함께 털어놨다.

    이 박사는 지난 2007년에 조영락 전무(개발본부장)의 권유로 레고켐바이오에 입사했다. 레고켐바이오가 설립된 2006년으로부터 1년이 지난 시점임을 감안하면, 창립 초기 멤버인 셈이다.

    레고켐바이오는 파이프라인 18개 중 16개를 기술이전하거나 국내외 제약사와 공동연구하고 있는 바이오벤처다. 레고켐바이오는 다양한 항체에 대한 ADC(Antibody-Drug Conjugates·항체약물복합체) 플랫폼 기술을 적용해 다수의 파이프라인을 확보하고 있다.

    특히 지난 7월17일에는 레고켐바이오가 브릿지바이오테라퓨틱스(이하 브릿지바이오)에 기술이전한 신약후보물질 'BBT-877'로 베링거인겔하임과 약 1조 5200억원 규모의 기술이전 계약을 성사시키면서 많은 주목을 받았다.

    특발성 폐섬유증(Idiopathic Pulmonary Fibrosis, 이하 IPF) 등 간질성 폐질환을 치료하기 위해 개발된 BBT-877은 레고켐바이오가 '레고케미스트리' 기술로 발굴해 지난 2017년 300억원 규모에 브릿지바이오에 기술이전한 합성신약이다. 레고케미스트리는 약물 유사성을 가진 구조를 활용한 플랫폼 기술이다.

    ◆ 1000여 번의 시도 끝에 탄생한 'BBT-877'… 1.5조 규모 기술수출 '잭팟'

    BBT-877은 개발 초기에는 간암·위암 등 항암제를 타깃으로 개발했지만, 섬유증에 더 좋은 효과를 보일 것으로 보여 적응증을 전환하게 된 물질이다.

  • ▲ 이대연 레고켐바이오사이언스 이사급 연구위원(박사)은 지난달 30일 대전 본사에서 본지와 만났다. ⓒ정상윤 기자
    ▲ 이대연 레고켐바이오사이언스 이사급 연구위원(박사)은 지난달 30일 대전 본사에서 본지와 만났다. ⓒ정상윤 기자
    이 박사는 "항암제 같은 경우 독성이 그리 큰 이슈가 되지 않지만, 항섬유제는 장기적으로 복용해야 하고 다른 약물과 함께 투약할 수 있기 때문에 안전성의 중요성이 높아진다"며 "적응증을 바꾸고 안전성에 중점을 두고 프로젝트를 진행하다 보니 개발에 시간이 많이 걸렸다"고 회고했다.

    그는 BBT-877에 '877'번이라는 숫자가 붙게 된 사연에 대해서도 공개했다. 거의 1000번에 가까운 시도 끝에 발굴해낸 신약후보물질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이 박사는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나서 877번째 화합물이 나왔다는 뜻에서 LCB17-0877(현 BBT-877)이라는 넘버링을 붙였다"며 "넘버링이 거의 1000까지 갔었지만 결론적으로는 877번째 화합물이 제일 낫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각고의 노력 끝에 탄생한 BBT-877이 지난 2017년 300억원 규모에 브릿지바이오로 기술이전 됐고, 지난 7월에는 베링거인겔하임과 약 1조 5200억원 규모의 기술수출되는 '잭팟'을 터트렸다.

    베링거인겔하임으로서는 IPF 치료제 '오페브'의 글로벌 특허가 오는 2024년에 만료되기 때문에 이를 보완할 수 있는 약이 필요한 시점이 다가오는 상황이었다. 

    이 박사는 "베링거인겔하임도 IPF를 포함한 섬유화 간질성 폐질환 분야의 확실한 포트폴리오를 구축하기 위한 의지를 갖고 있을 것"이라며 "우리가 개발한 약물이 상당히 강한 한 축을 담당할 수 있기 때문에 기술수출이 성사된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기술수출 성사 당시 이 박사는 "우리가 했던 일이 그 정도의 액수만큼 인정을 받았다는 게 매우 기뻤다"며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이 금액으로 더 좋은 신약을 많이 개발할 수 있겠구나 하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 "글로벌 임상 3상 실패는 흔한 일… 실패 통해 신약개발 성공률 높여야"

    한편으로는 기술수출 이후에 대한 걱정도 늘 안고 있다는 게 이 박사의 고백이다. 최근 업계에서 불거진 한미약품의 잇단 기술수출 계약 취소 등의 사례를 봤을 때 개발 초기 단계의 글로벌 기술수출 성과만으로 축포를 터트리는 것은 섣부르다는 게 그의 판단이다.

    이 박사는 "판매승인을 받고 팔릴 때까지 무슨 일이 발생할지 예측할 수 없다는 게 신약 개발하면서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인 것 같다"며 "우리가 최선을 다해서 좋은 약을 만든다고 해도 최종적으로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고 토로했다.

    신약 개발의 성공률은 10%도 채 되지 않는다. 미국 바이오산업협회(BIO)가 임상시험 모니터링 서비스인 바이오메드트렉커(Biomedtracker)를 통해 10여 년간(2006~2015년) 9985건의 임상시험 성공률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임상 1상부터 최종 신약 허가에 이를 가능성은 9.6%다. 더구나 후보물질 확보부터 신약 출시까지 이르는 신약 개발 성공 확률은 0.02%에 불과하다.

    이 박사는 기존의 방법론만으로 신약개발에 접근하는 것은 포화상태에 이르렀기 때문에 새로운 방법론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다. 레고켐바이오에서 주력으로 내세우고 있는 ADC 플랫폼 기술도 새로운 방법론 중 하나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ADC는 항체(Antibody)와 합성약물(Toxin)을 링커라는 연결물질을 통해 결합한 새로운 신약제조 방법으로, 항암제 치료제 분야를 주도할 것으로 전망되는 기술이다. 현재 미국의 이뮤노젠(ImmunoGen), 시애틀제네틱스(SeattleGenetics) 등 2개사가 1세대 ADC 원천기술을 확보한 상태다.

    1세대 ACD 기술의 한계를 개선한 2세대 원천기술을 조기 확보하면 높은 수익이 창출될 것으로 기대된다. 레고켐바이오는 특허 출원한 고유한 링커·단일물질로 제조하는 방법 등을 포함한 2세대 ADC 기술의 장점을 갖추고 있다.
  • ▲ 이대연 레고켐바이오사이언스 이사급 연구위원(박사)은 지난달 30일 대전 본사에서 본지와 만났다. ⓒ정상윤 기자
    ▲ 이대연 레고켐바이오사이언스 이사급 연구위원(박사)은 지난달 30일 대전 본사에서 본지와 만났다. ⓒ정상윤 기자
    최근 국내 바이오업체들이 신약개발 성공의 최종 관문인 글로벌 임상 3상에서 줄줄이 고배를 마셨다. 지난 6월 에이치엘비 쇼크, 지난달 신라젠 쇼크에 이어 지난 23일 헬릭스미스가 임상 3상에서 좌절했다. 지난 5월 코오롱티슈진의 골관절염 유전자치료제 '인보사케이주'의 미국 임상 3상이 중단된 것까지 포함하면 올 들어 네 번째다.

    이 박사는 이 같은 실패를 통해 교훈을 얻어야 신약개발 성공률을 높일 수 있다고 봤다.

    이 박사는 "글로벌 임상 3상 실패가 유독 우리나라에서만 발생하는 일은 아니라고 본다"며 "임상 3상에서 좌초되는 건 매우 흔한 일"이라고 짚었다. 이어 "이런 실패들이 쌓여서 앞으로 더 좋은 약을 만들 수 있는 자산이 될 것"이라며 "실패 사례를 통해 힌트를 얻고 점점 실패확률을 줄이는 방향으로 나아가면 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