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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국내 바이오업체들의 주가가 급등락하는 것은 투자자들이 신약개발에 대한 이해부족으로 벌어지는 현상이다. 그렇다고 신약개발의 본질이 바뀌는 것이 아니다. 신약개발의 본질은 기본적으로 사이언스다."
김용주 레고켐바이오사이언스(이하 레고켐바이오) 대표는 최근 대전 본사에서 뉴데일리와 만나 국내 제약·바이오기업에 대한 정확한 가치판단을 기반으로 한 투자가 이뤄져야 건전한 시장이 구축된다고 진단했다.
실제로 최근 일부 바이오 기업들의 주가가 널뛰기 장세를 보였다. 에이치엘비는 지난달 29일 유럽종양학회(ESMO)에서 표적 항암제 '리보세라닙'의 글로벌 임상 3상이 성공했다고 주장하면서 주가가 급등했다. 헬릭스미스도 지난 7일 당뇨병성 신경병증 치료제 '엔젠시스(VM202)'의 안전성과 유효성이 입증됐다는 임상 3-1b상 결과를 발표하면서 반등에 성공했다.
바이오 주가의 급등락 현상으로 인해 개인 투자가 과열되자 금융당국에서 이례적으로 주의를 촉구하고 나섰다.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한국거래소가 지난 17일 "바이오·제약주는 임상시험 성공 여부 등에 따라 주가가 급변할 수 있으므로 무분별한 투자는 큰 손실을 초래할 수 있다"며 "기업의 본질적 가치에 기반한 신중한 투자 판단이 필요하다"고 경고한 것이다.
김용주 대표는 "바이오기업의 주가에 나타난 급격한 변동은 근본적으로 신약개발에 대한 이해부족으로 판단된다"며 "이로 인해 바이오산업, 신약개발에 대한 신뢰도가 꺾이지 않길 바란다"고 우려의 말을 전했다.
김 대표는 신약개발에 대해 산업적인 측면과 공공적인 측면 양쪽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산업적인 측면에서는 정확한 가치판단으로 이뤄진 투자를 통해 건전한 시장이 형성돼야 하고 공공적인 측면에서는 정부가 신약개발의 토대를 잘 구축해야 된다는 것.
김 대표는 "민간기업에서는 항생제가 수익성이 낮아 개발을 잘 하지 않으려고 한다"며 "(이익이 안되더라도 중요한) 신약을 개발하는 데에는 국가가 공익적인 측면을 고려하여 기틀을 마련해 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미국의 경우 꾸준히 신약개발에 천문학적인 금액을 투입하고 있다. 지난해 기준으로 미국의 제약산업계 R&D 대비 정부 지원 비중은 37%에 이른다. 반면, 우리나라는 일본(19%)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8%에 불과했다.
그는 "미국은 정부 차원에서 지난 몇십 년간 예산을 대폭 쏟아부은 에이즈, 암 분야의 기초연구투자를 밑바탕으로 이 분야에 독보적인 위치를 유지하고 있다"며 "다른 나라가 미국을 따라가지 못하는 부분은 바로 신약개발에 대한 사회적 합의(consensus)"라고 강조했다.
김 대표는 미국의 뚝심 있는 기초연구 지원에는 사회적 합의에 의한 탑다운(top-down) 방식의 의사결정구조가 주효했다고 분석했다. 국내에서도 전문가 집단의 컨트롤타워를 구성해 정권이 바뀌어도 흔들리지 않는 의사결정체계가 구축돼야 한다는 게 김 대표의 의견이다. -
그는 "전반적으로 국내 바이오업계의 기술력이 선진국에 비해 아직 멀었지만, 부분적으로는 승부할 만한 분야가 있다"며 "ADC(Antibody-Drug Conjugates·항체약물복합체) 분야만 해도 당장 세계적인 기업들과 겨룰 수 있다"고 자신했다.
ADC는 항체(Antibody)와 합성약물(Toxin)을 링커라는 연결물질을 통해 결합한 새로운 신약제조 방법으로, 항암제 치료제 분야를 주도할 것으로 전망되는 기술이다.
레고켐바이오는 지난 11일(현지시간)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열린 '월드 ADC 어워즈 2019(World ADC Awards 2019)'에서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베스트 ADC 플랫폼 테크놀로지'(Best ADC Platform Technology)' 부문에 선정됐다. 국내 업체 최초로 2년 연속 해당 부문에 선정되면서 세계적으로 기술력을 인정받았다는 게 회사 측의 설명이다.
해당 부문은 ADC 치료제 임상개발 경험이 풍부한 이뮤노젠, ADC 테라퓨틱스 등의 전문가들이 기술의 독창성과 상업화 가능성 등에 초점을 두고 심사를 거친 끝에 선정된다. 이번에 공동 수상한 업체는 뉴욕거래소에 상장돼 있는 자임웍스(Zymeworks)다.
김 대표는 국내 바이오 업계의 발전을 위해서는 산업 생태계가 잘 구축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최근 LG화학, 유한양행, GC녹십자 등 국내 제약·바이오업체들이 보스턴에 진출하는 것도 이러한 생태계가 잘 구축됐기 때문이라는 것.
보스턴은 전 세계에서 가장 큰 '바이오 클러스터'로, 신약 개발을 위해 유수의 대학·기업·병원이 밀집해 있다. 머크, 화이자 등 2000여 개의 글로벌 제약사들은 물론이고, 하버드대학 등 세계 최고의 대학이 모여 있어 제약·바이오 분야 종사자수도 9만명에 육박한다.
김 대표는 "보스턴은 한국과 인재의 풀 자체가 다르다"며 "이처럼 전체적인 여건이 잘 마련돼 있어야 국내 바이오산업이 발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미국은 100년의 역사를 갖고 있고, 일본도 한국보다 한 세대 먼저 신약개발 분야에서 앞서갔다"며 "우리나라도 신약개발을 잘 할 수 있도록 환경을 잘 다져 놓되 시장의 일은 민간에 맡겨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