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승강기업계가 잇따라 발생한 사망 사고로 국회에서 뭇매를 맞았다. 승강기 공동수급 구조에 대한 의원들의 질타가 이어졌고, 이날 불려나온 업계 4사 대표들은 안전성 강화를 위한 시정 노력을 약속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7일 전체회의에서 승강기 근로자 사망사고와 관련한 현안질의를 진행했다.
이날 질의는 ‘승강기 공동수급 구조’를 중심으로 이뤄졌다. 통상 대형 승강기 업체는 설치를 전문으로 하는 협력업체와 팀을 이뤄 계약을 따낸다. 제품 생산은 대형 업체가, 설치와 유지보수는 중소 협력사가 맡는 구조다.
의원들은 이 구조가 불법 하도급 구조와 다를 바 없다고 지적했다. 설치와 유지보수 등 위험한 작업은 중소협력사에서 주로 담당하기 때문이다.
각 의원은 공동수급 과정에서 발생하는 불공정한 거래 환경도 지적했다. 계약에서 중소업체는 사실상 협상력을 갖지 못하고, 공사기간 단축 등 무리한 요구까지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불합리한 요구가 산재로 이어지는 것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제보에 따르면 오티스는 각 협력사에 백지상태의 계약서를 박스로 발송한다. 이를 받은 협력사는 조건도 모른 채 도장을 찍어 돌려보내야 한다”면서 “협력사는 어떤 조건으로 계약을 맺는지도 모른 채 현장에 투입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
이에 조익서 대표는 “모든 계약은 공동수급에 참여하는 협력사와의 협의를 통해 진행한다”면서 “그러나 일부 계약에서 불공정한 상황이 발생했다면 시정하겠다”고 답변했다.
현장 안전관리에 대한 지적도 이어졌다. 한정애 민주당 의원은 국내 승강기 설치현장에 쓰이는 비계(안전장치)와 해외 사례를 비교했다.
한 의원은 티센크루프·오티스·미쓰비시 본사가 있는 독일·미국·일본 사례를 제시했다. 현지에서 이들 업체는 공장에서 만든 완제품 발판 등을 안전장치로 사용한다. 작업 발판을 직접 설치해야 하는 국내와 달리 비교적 튼튼하다.
한정애 의원은 “각 회사는 본국에선 근로자가 사망하지 않을 만큼의 안전한 장치를 도입해 사용 중”이라며 “대한민국 근로자는 아무렇게나 작업하다 떨어져 죽어도 상관이 없다는 건가. 한국은 기본적인 안전조차 보장받을 수 없는 2등 국민이라는거냐”고 질타했다. -
한 의원의 발언에 4사 대표는 모두 유감을 표했다. 각 대표는 이번 질의를 계기로 현장을 점검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할 것을 약속했다. 특히 행정안전부 등 유관부처와 협의해 열악한 현장엔 해외와 비슷한 완제품 비계를 보급하겠다는 계획도 나왔다. 행안부는 내년 중 비계 보급을 완료할 계획이다.
서득현 티센크루프 대표는 “현장 사고와 관련한 지적에 대해 깊이 동감하고 있으며, 현재 설치·유지보수 협력사와 재발 방지책을 논의할 상생협력위를 운영 중”이라며 “현재 진행 중인 고용부 현장감독에도 성실히 임해 미진한 부분을 개선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송승봉 현대엘리베이터 대표는 “업계에 몸담고 있는 입장에서 이번 사망사고를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 “지적하신 모든 사항을 깊이 새겨 안전한 현장을 만드는 데 노력하겠다”고 답했다.
조익서 오티스 대표도 현장 안전에 대해 강조했다. 조 대표는 “미국에서처럼 완제품 비계를 협력사에 보급하는 등의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면서 “앞서 지적받은 불공정 거래 조건 등은 성실히 개선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통역사와 함께 참석한 요시오카 미쓰비시 대표는 안전교육 강화를 대책으로 내놨다. 요시오카 대표는 “앞으로는 탑승자뿐만 아니라 작업 기사와 협력업체의 안전향상에도 신경 쓰겠다”면서 “일례로 지난해 3월 인천에 신설한 공장에 위치한 안전교육 시설을 적극 활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편, 승강기업계의 근로자 사망 이슈는 티센크루프에서부터 촉발됐다. 지난 2년간 티센에서 총 5명의 기사가 사망했기 때문이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 2015년부터 5년간 전체 승강기 현장에서 35명의 근로자가 사망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에 지난달 11일 지방노동청 국감에 박양춘 전(前) 티센크루프 대표가 출석해 소명했지만, 바로 다음 날 경기도 평택시 현장에서 또 한 명이 목숨을 잃었다.
결국 환노위는 지난달 22일 고용노동부 국감에 서득현 티센크루프 신임 대표와 송승봉 현대엘리베이터 대표, 조익서 오티스 대표, 요시오카 준이치로 미쓰비시 대표를 증인으로 채택했다. 당시에는 서득현 대표만 출석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