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릎까지 오는 키, 동글동글한 외관. 등에는 경쾌한 민트 깃발을 꽂고, 바닥엔 바퀴 여섯 개를 달았다. 어릴 적 PC게임에 나오던 꼬마 탱크를 닮은 배달로봇. 가게를 나온 점원은 커피 두 잔을 몸체에 넣는다. 로봇은 이내 “배달 다녀올게요”라는 씩씩한 인사로 자리를 뜬다.
배달의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은 지난 25일 건국대학교에서 ‘자율주행 배달로봇’ 시범운영을 시작했다. 이번 프로젝트는 다음 달 20일까지 진행하며, 건국대와 맺은 산학협력을 바탕으로 7개월간 준비했다.
로봇 이름은 배달을 뜻하는 영단어 딜리버리(Delivery)를 딴 ‘딜리’다. 총 5대가 운행 중이며, 교내 분식점·카페·샌드위치집 세 점포의 음식을 정류소로 나른다. 정류소는 총 9곳으로 동아리방·학생회관 등 캠퍼스 내 주문이 잦은 곳에 배치돼있다.
딜리는 배달의민족 앱을 통해 부를 수 있다. 내 위치와 가까운 정류소의 QR코드를 앱에 인식하면 주문 가능한 메뉴가 뜬다. 커피 두 잔을 결제하니, 메뉴를 준비 중이라는 알림메시지가 온다.
5분 후 “딜리가 출발했어요”라는 메시지가 날아왔다. 점원이 음식을 넣고 로봇을 출발시키면 나타나는 안내다. 메시지 내 ‘위치보기’를 누르니 딜리가 움직이는 경로가 실시간으로 나타났다.
메시지를 받고 5분 후 멀리서 딜리가 보였다. 언덕길을 넘을 때는 조심조심, 내리막길에선 속도를 조절하며 다가온다. 사람이 지나갈 땐 잠깐 멈춰서 “배달 중이에요. 길 좀 비켜주세요”라는 말도 한다. 바닥과 몸체에 달린 센서가 장애물을 감지해서다.
-
정류소에 로봇이 도착하면 안내가 날아온다. 메시지상 ‘딜리를 만났어요’라는 버튼을 눌러 휴대폰 인증을 하니 몸체에 달린 문이 열린다. 보냉 칸에 담겨있어 식지 않은 커피를 수령했다.
딜리 한 대는 시간당 1~2건의 주문을 수행할 수 있다. 음식 준비 10분, 거점 복귀 시간 10분 등을 고려하면 배달 한 번에 30분이 소요된다. 최대 시속은 5.5km로, 거점에서 가장 먼 700m 거리의 정류소까지 10분이 걸린다.
한 번 배달을 나가면 두 곳까지 들를 수 있다. 1·2번으로 나뉜 배달 칸엔 음료 12잔이나 샌드위치 6개가 들어간다. 4시간 충전에 8시간 운전이 가능하며, 운영 첫날이었던 25일엔 다섯 대의 딜리가 시간당 5~6건의 주문을 처리했다.
회사 관계자는 “색다른 서비스인 만큼 운영 첫날부터 학생들의 많은 관심을 받았다”면서 “앞서 6주간 진행한 테스트상 고객 만족도는 7점 만점 중 6.2점으로, 재이용 의사도 높은 편”이라고 설명했다.
-
배달의민족은 최근 외식업과 IT기술을 결합한 ‘푸드테크’ 분야에 집중하고 있다. 이번 프로젝트는 실내배달·서빙 로봇을 잇는 세 번째 사례다. 앞선 두 로봇의 경우 상용화가 가능한 수준이며, 해당 사업들은 사내 전담팀 ‘로봇 딜리버리셀’이 담당하고 있다.
미래 외식업을 위한 연구도 한창이다. 배민은 지난 7월 미국 UCLA 산하 로봇 연구소 ‘로멜라(RoMeLa)’와 함께 요리 로봇 개발을 시작했다. 개발팀은 세계적인 로봇 공학자인 데니스 홍 캘리포니아대(UCLA) 교수가 이끈다.
‘YORI(요리)’라는 이름이 붙은 해당 프로젝트는 레스토랑과 가정에서 활용할 수 있는 요리로봇을 개발하는 게 목표다. 제조업에 쓰는 공장용 로봇팔과 달리 재료 손질, 팬 뒤집기 등 섬세한 작업이 가능한 로봇을 구현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