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 돌릴 수록 손해… 정제마진 '마이너스'국제유가 18년만에 최대 폭락… 환율도 '뚝'정유4사 1분기 1조5천억 수준 적자 가능성"코로나19 여파 직격탄… 사실상 저유가 기조 장기화"천문학적 규모 석유수입부과금 불구 정부 실질적 지원 전혀 없다 하소연
  • ▲ 19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KB국민은행 딜링룸에서 직원들이 모니터링하고 있다. ⓒ연합뉴스
    ▲ 19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KB국민은행 딜링룸에서 직원들이 모니터링하고 있다. ⓒ연합뉴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과 국제유가 급락으로 휘발유 가격이 원유 가격보다 더 낮아졌다. 코로나19 사태와 저유가 기조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이는데다 환율까지 요동치면서 정유업계가 최대 위기에 봉착했다.

    특히 천문학적인 규모의 석유수입부과금을 내면서도 국책사업에만 쓰일 뿐, 어려움에 처한 정유업계에 대한 실질적인 지원은 전혀 없는 상황으로, 수천억에서 수조원의 지원과 공적자금을 투입해 줬던 항공, 조선 등 타 업종과의 형평성 논란도 일고 있다.

    20일 업계에 따르면 싱가포르 복합정제마진은 지난 16일 배럴당 -2.48달러로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이어 전날에도 -2.33달러로 마이너스를 유지했다.

    지난해 11~12월에도 정제마진이 한 때 마이너스를 기록했지만, -1달러 이상으로 확대되진 않았다. 마이너스 정제마진은 팔수록 손해를 보는 구조라는 뜻으로, 사실상 원유 가격보다 휘발유 값이 더 싸진 것이다. 정유업계에서는 손익분기점을 배럴당 4~5달러로 보고 있다.

    주간 단위로는 3월 2주 3.7달러를 기록했다. 4주 만에 상승 반전했지만, 이는 원가 하락에 따른 일시적 착시현상에 불과했다.

    정제마진 악화는 유가와 수요가 동반 하락하면서다. 코로나19 사태로 석유 수요가 크게 줄어든 상황에서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 UAE간 유가 전쟁이 더해진 것이다. 최근 주요 산유국간 협의체인 OPEC+가 원유 감산 합의에 실패하면서 사우디 등은 증산을 앞 다퉈 실행하고 있다.

    최근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4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 원유(WTI)는 전날보다 배럴당 6.1%(1.75달러) 하락한 26.95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이란에 대한 경제제제가 해제되면서 이란산 석유가 풀릴 것으로 예상돼 과잉공급을 우려하던 2016년 2월 이후 최저 수준이다.

    두바이유의 경우 배럴당 28.26달러에 거래되면서 휘발유 가격 27.44달러보다 비싸지는 역마진 구조가 형성됐다. 국내 정유사의 두바이유 수입 비중은 전체의 80%를 넘는다.

    당분간 저유가 기조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돼 국내 정유업계의 수익성 고민은 커지고 있다. 유가가 떨어지면 재고평가손실이 급속히 증가하기 때문이다. 정유사들은 1~2개월 전에 사들인 원유가격을 원가에 반영하는데, 지금처럼 유가와 수요가 모두 감소하면 재고평가손실이 커지게 된다.

    실제 금융투자업계에서는 3월 1~2주 SK이노베이션 정유 부문의 1분기 손실을 2000억~3000억원대로 전망했다. 그러나 유가가 급락한 뒤 일주일 만에 예상손실액이 6000억~8000억원대까지 불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정유사들은 일단 공장가동률을 85~90% 수준으로 낮추는 등의 방식으로 버티고 있다.

    정유4사의 1분기 손실액이 최소 1조5000억원에서 2조원에 육박할 것이라는 전망까니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신용평가의 경우 유가가 1달러 하락할 때마다 SK이노베이션, GS칼텍스, 에쓰오일, 현대오일뱅크 등 정유4사의 합산 영업이익이 700억원 감소할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 ▲ 자료사진. 울산 SK CLX. ⓒ성재용 기자
    ▲ 자료사진. 울산 SK CLX. ⓒ성재용 기자

    여기에 환율이 급등하면서 원유 수입가격 부담까지 커지고 있다.

    전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화가치는 18일 종가보다 40원 떨어진(환율 상승) 달러당 1285.7원으로 마감했다. 종가가 1280원 선을 기록한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가 가시지 않았던 2009년 7월14일(장중 1293.0원) 이후 11년 만이다.

    통상 정유사들은 환율이 높을수록 부담인 원유 수입 분을, 환율이 높을수록 유리한 석유제품 수출로 헷지해 왔다. 하지만 지금은 코로나19 사태로 육상, 해상, 항공 등 육해공 물류가 멈춰서면서 기름 수요 자체가 줄어 고스란히 피해를 보게 됐다.

    더 큰 문제는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되더라도 정유업황이 반등할 것이라는 확신이 없다는 점이다.

    당장 수요 회복에 적잖은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유가가 반등하더라도 제품가격에 곧바로 반영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수요 부진이 지속되면 오히려 원가 부담이 가중될 수 있는 상황이다. 유가 전쟁이 장기화될 경우 과잉공급 부담 역시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일부에서는 유가가 배럴당 10달러대까지 고꾸라질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한다.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코로나19가 글로벌로 확산하면서 생기는 수요 감축 탓에 저유가 국면이 장기화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미 OPEC(석유수출국기구)은 이달 월간 석유시장보고서(MOMR)를 통해 올해 원유 수요 성장 전망치를 99.7MBPD(일 100만배럴)로, 0.9MBPD 낮춘 상태다.

    강동진 현대차증권 애널리스트는 "OPEC이 올해 원유 수요 성장 전망치를 하향 조정했다"며 "세계보건기구(WHO)의 코로나19 팬데믹 선언 및 미국과 유럽의 코로나 확진자가 증가해 추가적인 원유 수요 하향 조정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정유업계 한 관계자는 "유가가 상승할 때 제품가격이 같이 오르면 긍정적이지만, 수요 부진이 이어질 경우 제품가격은 여전히 낮게 형성돼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며 "저유가로 호황을 누렸던 2015~2016년에는 수요가 뒷받침됐기 때문에 실적이 좋을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지난해 미중 무역 분쟁, 올해 코로나19로 세계 경제가 위축된 국면인 만큼 같은 상황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며 "현재는 시장 상황을 예의주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업계 일각에서는 석유수입부과금을 인하해달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원유 관세에 추가로 내는 준조세 성격으로, 정유사들은 ℓ당 16원씩 낸다. 지난해 정유4사가 정부에 낸 석유수입부과금은 모두 1조4000억원 규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