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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인 장치산업인 정유·석유화학업계에 새 바람이 불고 있다. 상대적으로 일반 대중과는 거리가 있는 제품을 생산하다 보니 직접적인 제품 홍보에 대한 필요성이 덜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변화하는 트렌드에 맞춰 일반 대중들과의 접점을 늘리고 있다.
당장 소비자와 맞닿아 있는 제품을 선보이고 있으며 이미지 제고 차원에서 브랜드 네이밍 전략을 펼치는 한편, 변화하는 트렌드에 맞춰 흥미로운 콘텐츠를 제작하기도 한다. 주력사업과 연계된 또 다른 사업을 모색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판단인 것으로 풀이된다.
25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정유사들은 B2C시장에 관심을 쏟고 있다. 대표적인 제품은 윤활유다. 최근 정제마진 악화로 허덕이고 있는 정유업계에 있어 윤활유는 이익률이 높은 고부가 제품이다. 지난달부터 윤활유 관련 국제규격이 변경되면서 국내 정유사들 역시 친환경성을 강화한 신제품 출시에 나서고 있다.
SK루브리컨츠, 현대오일뱅크, 에쓰오일토탈윤활유 등은 미국석유협회(API)가 새롭게 지정한 'SP'규격과 국제 윤활유 표준화 및 승인위원회(ILSAC)의 새 규격 'GF-6'에 충족한 엔진오일 △SK지크(ZIC) △현대 엑스티어 울트라(HYUNDAI XTeer Ultra) △토탈 쿼츠(TOTAL QUARTZ) 9000 등을 출시했다.
두 기관은 자동차 엔진 기술, 연비, 배출가스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엔진오일 규격을 정한다. 5월부터 기존보다 연료 이상연소 및 엔진 마모 방지, 청정효과 등 친환경 기능을 대폭 강화한 기준을 발표했다.
정유업계 한 관계자는 "윤활유는 잔사유를 재처리하는 과정을 통해 만들 수 있고, 부가사업이지만 수익성이 높은 편"이라며 "윤활유를 통해 최종 소비자들과 접촉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고 말했다.
롯데정밀화학은 올 들어 요소수 마케팅을 강화하고 있다. 2018년부터 일부 경유차에 기본 장착됐던 SCR(선택적 촉매 환원)시스템이 2년이 지난 현재 대부분의 차량에 확대되고 있어서다. 과거 화물차 수요 중심이었던 시장을 대중 차량 중심으로 바꿀 수 있는 시점이기 때문이다.
이에 10ℓ 용량만 있던 기존 제품에서 3.5ℓ 용량을 새로 출시하고 6월 한 달간 국내 최초로 요소수 TV광고도 진행하는 등 마케팅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롯데정밀화학 측은 "현재 2000㏄급 이상 경유차 대부분에 SCR이 기본 탑재돼 출시되고 있는 만큼 올해 요소수 마케팅을 본격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SK종합화학의 경우 자사가 개발한 고성능 폴리에틸렌에 '넥슬렌'이라는 브랜드를, 한화토탈은 자체 생산 중인 난방유에 '하이신'이라는 이름을 각각 달고 '네이밍 마케팅'에 주력하고 있다. 독특한 제품명을 개발해 소비자들에게 보다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고민하고 있는 것이다.
합성수지 및 합성고무 등을 주력으로 생산하는 금호석유화학은 건자재 브랜드 '휴그린'으로 B2C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올해 배우 신민아를 광고 모델로 발탁, 공격적으로 TV광고도 진행 중이다. 건자재 업체가 아닌 석화업체가 별도 B2C 건자재 브랜드를 운영하는 만큼 업계에서도 관심이 높은 편이다.
이처럼 정유·석화업체들이 주력 사업에서 파생하거나 새로운 시도를 통해 진출한 B2C사업으로 최종 소비자들과의 접점을 늘리고 있다. 사업 시너지도 낼 수 있는데다 석화업종 특성상 부각 받지 못했던 기업 이미지까지 제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석화업계 한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대중과의 접점이 없었는데, B2C사업을 시작하면서 기업 이미지와 연결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며 "B2C사업을 통해 주력 사업과 연계할 수 있는 새로운 사업 기회를 모색할 수 있는 기반도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석화업계도 'A자동차에는 B사가 만든 C라는 브랜드의 플라스틱 원료가 사용돼 내구성이 월등히 뛰어나다'와 같은 목표를 향해, 아직은 불모지와 같은 B2C 마케팅에 하나둘씩 뛰어들고 있다"며 "원료나 재료 등 중간재의 브랜드도 최종 소비자의 구매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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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화학과 SK이노베이션, 삼성SDI 등 정유·석화업계 대표 주자들이 유튜브를 개설하고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한 콘텐츠를 만들어 올리는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LG화학은 공식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며 기업홍보 콘텐츠를 늘리고 있다. 단순히 딱딱한 기업홍보물을 업로드 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 속 흥미로운 주제들을 다뤄 눈길을 끌고 있다. 가령 ▲대학생 에디터 일주일 사용 영수증 파헤치기 ▲눈이 오면 세상이 조용해지는 이유 ▲향수 만들기 등 누가 보더라도 기업홍보 콘텐츠로 보기에는 다소 의아한 주제들이다.
'회사에서 몰래한 인터뷰' 콘텐츠를 보면 실제 지방사업장에서 근무하는 직원이 사소한 직장인 대상 질문에 답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영상 도중 동료가 등장하기도 하는 등 돌발 상황까지도 생생하게 담아냈다. 과거에 생각했던 기업홍보물과는 접근 방식 자체가 다른 셈이다.
SK이노베이션도 SK에너지, SK인천석유화학 등 계열사 막내 사원들 4명들로 구성된 '스키노맨(SKinnoMan)' 프로젝트로 색다른 기업홍보를 진행하고 있다. 이들은 세계 최대 가전박람회 'CES2020' 현장을 둘러본 후기를 유튜브 동영상으로 공유해 호응을 얻고 있다.
이들은 CES 전시관에 마련된 SK 부스에서 자칫 지루할 수 있는 회사와 제품 설명들을 밀레니얼 세대의 유머코드를 담아 재미있게 연출했다. 해당 영상은 10만뷰를 돌파하는 등 인기를 끌고 있다. SK이노베이션 측은 "소비자들이 궁금할만한 내용을 쉽고 재미있으면서 유익하게 전달하기 위해 고민했다"고 설명했다.삼성SDI 역시 유튜브로 젊은 층들의 관심을 얻고 있다. 지난해 8월부터 직무별 임직원들의 하루를 소개한 브이로그 영상으로 누적 조회 수 100만뷰를 찍었다.
삼성SDI는 공식 유튜브 채널을 통해 '삼성SDI 리얼면접톡'부터 입사 20년차 이상의 임직원들이 직접 면접을 보거나 직무적성검사를 풀어보는 'SDI 동년배톡', 사내식당 체험 및 행사 소개, 회사의 개선된 인프라를 보여주는 '삼성SDI 랜선집들이' 등 회사생활과 취업에 도움이 되는 다양한 콘텐츠들을 게시하고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B2C기업들과 달리 최종 소비자들과 만나기 어려운 B2B 대기업들의 기업홍보가 점차 트렌드에 맞춰 변화하는 모습"이라며 "접근하기 어려웠던 분야에 대한 쉬운 설명과 함께 직원들을 내세운 친근감 감화로 기업 이미지 제고에 긍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