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 급락-정제마진 저하 여파… 누적 영업손실 4.8조코로나19 재확산 등 비우호적 업황 여전… 회복 '부정적'전기차 배터리-모빌리티 등 포트폴리오 다각화 '드라이브'
  • ▲ SK 울산 CLX. ⓒ성재용 기자
    ▲ SK 울산 CLX. ⓒ성재용 기자
    정유업계가 사상 최악의 시기를 보내고 있다. 국제유가 하락에 따른 재고평가손실과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수요 감소로 조 단위 영업손실을 기록 중이다. 코로나19 재유행 등으로 수요가 반등할 기미가 보이지 않으면서 유가와 정제마진 역시 낮은 수준을 이어가고 있다.

    SK이노베이션, GS칼텍스, 에쓰오일, 현대오일뱅크 등 국내 정유4사는 업황 침체를 타개하기 위해 전기차 배터리, 모빌리티, 석유화학 등 비정유 부문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정유업 침체기 동안 부단히 신사업에 힘을 줬던 만큼 가시적인 실적이 기대된다.

    15일 업계에 따르면 올 들어 3분기까지 정유4사의 영업이익은 마이너스(-) 4조8073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2조7590억원의 두 배 가까운 손실을 보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이 2조2438억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했으며 GS칼텍스도 영업손실이 8676억원에 달했다. 3분기 흑자를 기록한 에쓰오일과 현대오일뱅크도 누계 기준으로는 각각 1조1808억원, 5147억원으로 '적자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정유 제품에 대한 글로벌 수요가 급격히 위축하면서 상반기에 유가가 폭락한 데 따른 재고 관련 손실이 발생했고, 정제마진이 낮은 수준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석유수출국기구(OPEC)는 11월 보고서에서 올해 전 세계 석유수요를 하루 9001만배럴로 전망했다. 지난해 하루 석유 수요 9976만배럴보다 975만배럴 낮은 수치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이 발표한 자료를 보면 올해 석유수요는 전년대비 △1분기 -5.1% △2분기 -16.5% △3분기 -7.1% 등 감소세를 벗어나지 못했다.

    유가는 지난해 연 평균 배럴당 63.5달러 수준을 기록했던 두바이유 가격이 코로나19 팬데믹이 본격화된 3~4월 급락세를 보이면서 10달러대까지 하락했다.

    이후 OPEC+(OPEC 및 비회원 10개 산유국 협의체)의 역대 최대 규모인 하루 970만배럴 감산 합의와 세계 각국의 경기부양책 기대감 등으로 반등했지만, 9월까지는 멕시코 등 일부 산유국의 감산 합의 이탈, 코로나19의 지속 및 재확산 우려에 따른 제한적인 경제활동 등으로 40~45달러 수준의 박스권을 유지했다.

    12월 현재 40달러 후반대로 지난해 12월에 비하면 20% 이상 낮은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 더욱이 최근 OPEC+가 소폭 증산에 합의하면서 유가가 다시 요동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낮은 수준의 유가는 정유업계 수익을 가늠하는 핵심 지표인 정제마진에 악영향을 미쳤다.

    지난해 9월3주 배럴당 10.1달러까지 치솟았던 주간 정제마진은 미중 무역 갈등 심화와 유가 급락, 코로나19 팬데믹이 겹치면서 10월3주 2.8달러 이후 올해 12월2주 0.5달러까지 61주간 손익분기점을 넘기지 못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배럴당 4~5달러 정도를 손익분기점으로 여기고 있다. 지난 61주간 4달러 이상 기록한 시기는 2월2주가 유일하다. 사실상 1년 넘게 밑진 장사를 한 셈이다.

    게다가 전문가들은 저유가 기조와 낮은 정제마진이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각국 정부가 코로나발 경제 타격을 완화하기 위해 경기 부양 카드를 꺼내들고, 영국·캐나다·미국 등 본격적인 일반 백신 접종이 시작됐지만, 코로나19가 재확산되면서 국내외 석유수요 회복이 더디기 때문이다.

    한상원 대신증권 연구원은 "낮아진 설비 가동률과 높아진 제품 재고를 감안하면 유의미한 정제마진 개선은 2021년 하반기에나 가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에너지연구원의 경우 OPEC+의 감산 규모 축소와 누적된 재고 부담으로 내년 상반기 두바이유 가격은 배럴당 45달러 내외에서 형성될 것으로 전망했다.
  • ▲ 유가 = 두바이유 기준. 자료 = Petronet, IEA 등. ⓒ한국기업평가
    ▲ 유가 = 두바이유 기준. 자료 = Petronet, IEA 등. ⓒ한국기업평가
    이에 정유사들은 비정유 부문을 늘려가면서 사업 재편에 나서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의 경우 그룹 차원의 미래 먹거리로 점찍은 전기차 배터리 사업에 대한 기대감이 주목된다.

    국내 최대 정유사 이미지를 과감히 탈피하면서까지 후발주자로 출발했던 전기차 배터리 사업은 올해 세계 6위 수준까지 끌어올렸으며 사업 성장에 따라 사업부 분사를 검토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다만 LG화학과 미국에서 벌이고 있는 배터리 영업비밀 침해 소송전과 공격적인 투자에 따른 재무건전성 저하 등은 해결해야 하는 과제로 남아있다.

    GS칼텍스는 최근 미래형 주유소 브랜드 '에너지플러스'를 론칭하고 전기차, 수소차로 대변되는 미래차 시대에 대응하고 있다. 기존 주유소에서 한 발 나아가 전기·수소차 충전, 자동차 공유 등 모빌리티 인프라를 더하고 드론 배송, 편의점 등 생활편의시설도 결합했다.

    이를 위해 LG화학, 현대자동차, 카카오모빌리티, 롯데렌탈 등과 잇달아 MOU를 체결했으며 10월에는 베트남 세차업체에 20억원을 지분투자하는 등 사업 확장에 나서고 있다.

    2분기와 3분기에 정유4사 중 유일하게 흑자를 기록한 현대오일뱅크는 올해 초 1조3000억원을 투자해 SK네트웍스 주유소 302곳을 인수하면서 주유소 인프라 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동시에 내년 완공을 앞둔 올레핀 HPC공장에 대한 기대감도 높다. 자회사 현대케미칼을 통해 원유 정제부산물을 활용, 석유화학제품 생산성을 높이는 프로젝트다. 투자비용 회수까지 적잖은 시간이 소요되겠지만, 대규모 투자가 단행된 만큼 고수익을 내겠다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에쓰오일은 해외에서 처음으로 윤활유를 생산하는 등 윤활유 및 윤활기유 부문을 강화하고 있다.

    9월 인도의 윤활유 1위 기업인 걸프오일윤활유와 파트너십을 맺고 에쓰오일의 자사 윤활유 브랜드 'S-OIL SEVEN'을 인도 현지에서 직접 제조 및 판매하고 있다. 이를 통해 윤활기유 사업에서만 3분기 누적 3161억원의 영업이익을 내면서 최악의 상황을 면하기도 했다.

    다만 7조원 규모의 석유화학 프로젝트의 경우 업황 불확실성이 높아지고 있는 만큼 투자비를 줄여서 계획대로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프로젝트가 본궤도에 오르기까지 기간이 남은 만큼 실적을 개선하고 자금조달 방안도 마련할 것으로 보인다.

    업계 한 관계자는 "코로나19 재확산 기조가 전 세계적으로 이어지면서 내년에도 정유업황을 장담하기 어렵다"며 "내년에는 각 사별로 추진하고 있는 비정유 부문 신사업에 대한 기사적인 성과를 내야하는 시기로 꼽힌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