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차등의결권 제도 도입 추진, 주당 10개까지 의결권 허용 상장 이후 3년간 유예기간 후 보통주 전환 '반쪽자리' 제도 지적 시민단체 "재벌 세습의 제도화 우려"…전문가 "투자자 보호 고려해야"
  • 쿠팡의 미국 상장 추진으로 차등의결권(복수의결권)을 둘러싼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비상장회사의 차등의결권을 허용하는 법안 처리가 속도를 내고 있는 가운데 상장 후 소멸 기간을 두는 것은 경영권 유지가 어려운 만큼 한계점으로 지적된다. 

    23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쿠팡은 지난 12일(현지시간) 뉴욕증권거래소 상장을 위한 신고서를 제출했다. 미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상장신고서에는 주식을 클래스A 보통주와 클래스B 보통주로 나누고, 쿠팡 창업자인 김범석 이사회 의장이 보유한 클래스B 주식에 일반 주식인 클래스A의 29배에 해당하는 차등의결권을 부여했다.

    차등의결권은 창업주나 경영인이 보유한 주식 1주에 다수의 의결권을 부여해 지배주주의 지배력을 강화하는 수단 중 하나다. 

    쿠팡의 미국 증시행 배경으로 차등의결권이 자리잡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시장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정부의 벤처기업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 일부개정안의 입법 가능성을 높였다는 시각이다. 

    더불어민주당은 비상장 벤처기업 창업 경영주의 보유 주식에 다수의 의결권을 부여하는 차등의결권 제도를 추진 중이다. 이를 위해 국회에 '벤처기업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 개정안을 제출한 상태다.

    정부안은 비상장 벤처기업에 한해서 주당 10개까지 의결권을 허용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대규모 투자 유치로 창업주의 보유 지분이 30%에 미치지 못할 경우에는 최대 10년까지 복수의결권 주식을 발행할 수 있도록 했다. 다만 상장 이후에는 3년간 유예기간을 두고 보통주로 전환해야 한다. 

    국내 약 360만개 중소기업 중 정부 벤처인증을 받은 비상장 업체는 3만9000개(1%)로 추산된다. 사실상 적용 범위가 좁을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입법 가능성은 높아졌으나 상장 후 경영권을 유지할 수 없는 점도 우려 요인이다. 

    양일우 삼성증권 연구원은 "정부의 입법안대로 상장 이후 3년 안에 창업자의 차등의결권이 소멸되는 방식이라면, 소멸 시점에 창업자의 경영권 확보 여부가 이슈화돼 차등의결권을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될 가능성이 높다"며 "한국에서 사업을 하더라도 상장은 해외에서 하는 경우가 지속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우리나라 상법 369조에서는 '의결권은 1주마다 1개로 한다'고 정해 주주 평등의 원칙을 규정하고 있다. 1962년 상법 제정 이후 58년간 유지되고 있는 기본 원칙에 따라 차등의결권 주식 발행이 제한된다. 

    차등의결권 제도를 찬성하거나 추진하는 배경에는 적대적 M&A에 대한 경영권 방어 및 기업의 효율적 운영 차원이다. 창업 초기 안정적 투자 환경을 제공해 성장 잠재력을 갖춘 벤처기업의 성장수단으로서 긍정적인 효과가 크다는 시각이다.

    반면 벤처캐피탈 등 모험자본의 주주로서의 지위를 약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오히려 신규 투자가 위축돼 장기 자금조달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등 시민단체는 재벌 세습의 제도화를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며 반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적은 자본으로 기업을 지배할 수 있는 등 소유와 지배의 괴리를 증대시키는 수단 중 하나가 될 것이란 지적이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의 기업지배구조를 감안해 진행하되 투자자의 보호와 자본시장의 경직성 극복에 주안점을 둬야 한다는 전문가 제언도 나온다. 

    박정국 동아대학교 경영학과 부교수는 작년 5월 한국비교사법학회가 발간한 '차등의결권제도의 도입에 관한 고찰'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통해 "비상장 벤처기업에 차등의결권을 부여하겠다는 정부의 정책은 혁신 기업에 대한 투자와 성장을 통해서 경제의 활력을 제고하겠다는 취지로 해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차등의결권제도의 도입을 위해서는 반드시 우리나라 기업지배구조의 후진성과 소수주주의 보호에 대한 열등성을 고려해야 할 것”이라며 "지배주주의 사적 이익의 추구가 영구화 되지 못하도록 기존 주주의 보호방안과 편법적 이용의 통제장치에 관한 근거규정도 충분히 마련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