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품설명 단축 위해 비대면 가입 유도…최대 1시간 소요투자손실로 민원‧분쟁조정땐 은행원이 불완전판매 책임질지도"금소법, 규제를 위한 규제" 지적…은행원 실적평가도 애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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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융소비자보호법(금소법)이 시행 100일을 넘겼으나 은행 영업현장에서는 변칙영업 등 부작용이 속출하고 직원들의 불만이 터져나오고 있다. 

    금소법이 진정 금융소비자들을 위한 법인지, ‘규제를 위한 규제’는 아닌지 우려가 커지고 있다. 

    6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우리·하나 등 주요 시중은행 영업점에서는 금융상품 가입을 희망하는 고객들에게 상품 설명시간 단축을 위한 비대면 상품가입 권유가 크게 늘었다. 

    금소법 시행 이후 영업점에서 상품 가입을 하려면 종전보다 몇 배의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비교적 간단한 예‧적금은 평소 5분이면 가입할 수 있었으나 현재는 가입 권유 확인서, 예금 거래 신청서, 예금성 상품 계약서 등 작성이 필요한 문서가 늘어 30분 가량이 소요된다.

    펀드 등 손실 가능성이 있는 투자상품 가입은 더 복잡하다. 투자성향 분석 문항도 늘고 설명시간도 길어졌다. 펀드 가입에만 꼬박 1시간이 걸리는 게 현실이다. 

    한 시중은행 직원은 “금소법으로 상품설명시간이 늘자 불만을 표출하는 고객들도 늘어나고 있다”며 “은행권에 페이퍼리스 바람까지 불면서 상품가입에 필요한 출력물이 부족한 경우도 있어 영업점 방문 고객에게 모바일로 상품을 가입하라고 권유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은행원들이 고객 스마트폰을 보며 비대면 가입절차를 안내하고 진행하는 식인데 대면 영업인지 비대면 영업인지 구분이 모호하다”며 “이런 식으로 비대면 상품에 가입한 고객이 향후 손실 등으로 민원이나 분쟁조정이 발생할 경우 상품가입 과정 등에 대한 불완전판매 책임소재가 불분명할 수 있어 불안해하는 직원들이 있다”고 말했다. 

    무늬만 비대면인 상품가입이 늘어나는 사이 시중은행의 온라인 상품판매 비중은 크게 늘었다. 금소법 시행 직후인 지난 4월 4대 시중은행의 금융상품 온라인 판매 비중은 70%를 넘겼다. 일각에서는 비대면 판매 급증에 허수도 섞여 있을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은행 영업점의 대면과 비대면영업의 경계가 모호해지면서 은행직원들의 실적평가도 애매해졌다. 

    은행 직원의 권유로 비대면 가입을 했는데 비대면 상품가입 과정에서 권유직원을 선택할 수 없어 은행직원들의 실적평가에 투명하게 반영이 되지 않는 것이다.  

    때문에 하나은행의 일부 지점에서는 비대면 상품 가입을 유도한 직원들의 실적을 수기로 책정해 직원실적평가에 반영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하나은행의 한 관계자는 “불완전판매를 막고 금융소비자 권익을 보호하겠다는 취지로 도입한 금소법이 오히려 비대면 가입을 유도하는 촉매제가 됐다”며 “게다가 비대면 가입을 직원들의 실적에 투명하게 반영하기 어려운 애매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금융소비자가 절차적 불편을 겪고, 비대면 가입을 유도하는 행태를 감안할 때 금소법이 ‘규제를 위한 규제’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고 경고한다.

    비대면 가입은 대면가입에서 가능한 쌍방향 소통이 불가능해 상품에 대한 이해가 오히려 부족한 경우가 많다. 적합성원칙이나 설명의무 규제 적용과 준수 여부도 판단하기 어렵다.

    이규복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온라인 비대면 판매 채널과 전통적인 대면판매 채널의 차이를 충분히 반영하되 규제 수준에서는 차이가 발생하지 않도록 디지털 금융에 대한 규제 체계를 만들어갈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